경제·금융

커지는 WTO 개도국 지위 포기 압력에 농업계 '부글부글'

미국 요구 시한 앞두고 국내서 “실익 없다” 발언
농식품부 “신중히 검토 중”이라지만 불확실성 확대
새 협상 때 쌀 관세화나 직접보조금 타격 불가피
  • 등록 2019-09-06 오전 12:00:00

    수정 2019-09-06 오전 12:00:00

경기도 이천시 한 논에서 농민이 벼를 베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세종=이데일리 이명철 김형욱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국 이기주의가 우리나라의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 논란으로 불똥이 튀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는 실익이 크지 않다며 이를 포기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밝히자 농업계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산업부와 농림축산식품부의 입장은 미묘하게 엇갈린다. 개도국 지위를 포기할 경우 향후 협상 과정에서 쌀 관세나 보조금 등 타격이 불가피하기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오락가락 정부…농가 불확실성만 확대

5일 정부와 외신 등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월 무역대표부에게 한국과 중국 등이 WTO 개도국 지위에 따른 혜택을 받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10월 23일까지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개별 행동을 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시한이 다가오자 우리 정부는 초조해졌다. 미국이 개별 행동에 들어갈 경우 개도국 지위를 빌미로 통상 압박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일각에선 개도국 지위를 고집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견해가 나왔다. 산업부의 고위 관계자는 지난 4일 기자들과 만나 “전세계가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가는 상황에서 우리가 향후 WTO에서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면서 미국과 대결을 치러야 할 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미국은 중국을 타깃으로 정했는데 한국이 실익도 없는 분야에서 ‘모난 돌’ 역할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이 관계자는 “아직 결정한 것은 없지만 이전에는 농식품부 관계자들이 개도국 포기 여부를 말도 못 꺼내게 했지만 요즘은 대화가 좀 통하는 분위기”라며 일부 공감대를 형성했음을 시사했다.

해당 발언이 보도되자 농업계는 즉각 반발했다. 주무부처인 농식품부에 민원과 항의가 들어가자 농식품부는 개도국 지위 포기는 정해지지 않았다며 즉각 해명에 나섰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미국 의도나 개도국 지위가 어떤 영향이 있는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면서 “산업부도 일리가 있다는 입장이어서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 농업 생존 차질 우려…“실질 지원책 마련해야”

당장 농업계는 쌀 등 우리 농산물이 수입산에 밀려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새로운 WTO 협상을 체결하지 않는 이상 농업에 영향이 없다는 정부의 해명을 100% 확신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특히 한국이 개도국 지위를 잃게 되면 당장 쌀 관세화나 농축산물 직불금 지급 등에서 정부 지원이 제한받게 된다.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 때 논의한 내용을 보면 직접보조금(변동직불금) 지급 한도(AMS)는 현재 1조4900억원지만 선진국은 8195억원으로 줄이기로 했다. 쌀 관세율도 현 513%에서 393%까지 낮아진다. 한국은 쌀 개방 후 다른 쌀 수출국에 높은 관세를 매기고 보조금을 지원하며 농가 소득을 보전하고 있다. 향후 협상에서 선진국 지위를 얻으면 그만큼 농가 지원 축소가 불가피해진다.

쌀 뿐 아니라 참깨나 땅콩, 대두, 녹두 같은 밭작물도 위협받을 수 있다. 이들 밭작물도 쌀처럼 고율 관세로 저가 수입작물로부터 농가를 보호하고 있는데 개도국 포기 시 관세를 낮춰달라는 농업 대국의 압력도 커질 수 있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관계자는 “밭작물은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안 그래도 국내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는데 수입 관세까지 낮아지면 생산기반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며 “AMS 한도가 감소할 경우 축산분야에서는 송아지 생산안정제 등 다른 지원도 폐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중장기로 개도국 지위 유지가 쉽지 않은 만큼 농업인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서진교 GS&J 연구위원은 “농업의 가격리스크 대책을 수립하고 생산과 직접 연계한 지원보다 허용 보조 등의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농가는 개도국 졸업에 따른 분명한 대책을 요구해 현실적이고 실익이 큰 안전장치를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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