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리포트] 일본인 울린 게임업체 사장의 죽음

  • 등록 2015-08-03 오전 3:01:01

    수정 2015-08-03 오전 3:01:01

[도쿄(일본)=이진석 해외통신원] “명함 위의 저는 사장입니다. 하지만 머릿속은 게임 개발자, 마음은 게이머입니다.”(2005년 E3 게임쇼에서)

향년 55세. 7월 11일 담관암으로 사망한 일본 게임업체 닌텐도의 고(故) 이와타 사토루(岩田聰) 사장을 향한 일본인들의 추모 열기가 뜨겁다. 2011년 사망한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연상될 정도의 사회적 현상이다.

이와타 사장이 남긴 게임과 함께 유년시절을 보낸 일본인들은 물론 전 세계 비디오게임 마니아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한다. 미국 뉴욕의 닌텐도 월드스토어 전시장에는 애도의 뜻을 담은 그림과 글귀가 쇄도했다. 주(駐)러시아 일본대사관에는 현지인 조문객이 몰렸다. 트위터에는 고인을 기리는 해시태그 (공통된 화제를 모은 주제어) ‘ThankYouIwata’가 쏟아졌다.

이 같은 추모 열기는 이와타 사장이 단순한 기업인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고교 시절 전자계산기로 게임을 만들어 미국 휴렛팩커드(HP)사를 경악하게 만들었으며 그의 재능을 탐낸 닌텐도가 이와타의 소프트웨어 개발사를 통째로 사들였다.

닌텐도 120년 역사에서 창업자 일가가 아닌 인물로 첫 사장이 됐다는 입지전은 중요치 않다.

그를 특별하게 한 것은 게임을 향한 열정이었다. “누구나 쉽게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싶다”던 이와타의 소박한 꿈은 국민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 게임업계가 대중을 외면한 채 치열한 기술 경쟁에 집착하던 2004년 그는 단순하고 직관적인 휴대용 게임기 ‘DS’를 내놔 닌텐도의 새로운 전성기를 이끌었다. 게임기 ‘위’(Wii)는 청소년들의 전유물이던 비디오게임을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놀이문화로 이끌었다. DS와 위는 세계적으로 각각 1억대 이상이 팔렸다.

격식을 차리지 않는 온화한 인품으로 닌텐도를 이끌던 그는 고객들에게 ‘이왓치’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사랑을 받았다. 고객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놀림감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신작 발표회에서는 게임 캐릭터 분장을 하고 웃음을 안겼다. 고객에게 스스로 다가가겠다는 의미에서 양 손을 뻗는 몸짓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닌텐도 팬들에게 그는 사장이 아닌 슈퍼마리오, 포켓몬스터와 같은 친근한 캐릭터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와타는 스마트폰의 보급이 가져온 비디오게임 업계의 쇠락을 막아내진 못했다. 올해 3월 IT기업 DeNA(디앤에이)와의 모바일 게임 업무제휴식에 참석한 그는 유독 착잡하고도 초췌해 보였다. 그로서는 6월 닌텐도 주주총회가 마지막 무대였다. 1시간 동안 쏟아진 주주들의 불안과 추궁에 홀로 맞서야 했다. 몸이 암세포로 뒤덮인 뒤였다. 그는 장례식을 조용히 치러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2주 뒤 교토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이와타의 산화’에 슬퍼하는 일본인들을 보며 한국 기업인들을 떠올려봤다. 한강의 기적을 이끈 산업화의 주역들, 전 세계에 한국의 이름을 알린 뛰어난 경영자들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그들이 보국(報國)의 사명감을 갖고 이뤄낸 업적 또한 충분히 기릴 가치가 있다. 다만 이와타처럼 소비자와 함께 울고 웃는 관계를 일궈낸 한국 기업인 이름은 아직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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