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끄덕끄덕]]‘전원일기’ 신드롬과 농촌 판타지

  • 등록 2021-07-15 오전 5:50:00

    수정 2021-07-27 오전 9:17:02

[정덕현 문화평론가] 최근 <전원일기>가 화제다. 19년 전 종영한 이 드라마의 갑작스런 화제는 드라마 관계자들에게도 놀라운 일로 회자됐다. <전원일기>는 여러 케이블 채널에서 앞 다퉈 방영하고 있을 정도로 급부상했고,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에서는 인기드라마 톱10에 오를 정도로 화제가 됐다.

이미 연령대가 높은 기성세대들이 드라마 전문 케이블 채널을 통해 재방송되고 있는 <전원일기>를 찾아보는 일은 그리 새로운 일은 아니다. 장르물들 같은 요즘 드라마들이 복잡하고 전개속도도 빠른데다 지나치게 전문적이어서 적응하기가 어려운 기성세대들에게 <전원일기> 같은 옛 드라마는 마치 고향을 찾은 듯한 편안함과 익숙함으로 다가왔을 테니 말이다. 실제로 최근 드라마 전문 케이블 채널들은 이러한 기성세대들이 집에서 ‘틀어 놓는’ 채널이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이 채널을 타고 <전원일기>는 물론이고 <야인시대>나 <태조 왕건> 같은 옛 드라마들이 다시 소비되고 있다.

그런데 <전원일기>가 OTT에서 인기드라마로 급상승했다는 사실은 조금 이례적이다. 그건 OTT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의 호응이 있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어려서 부모님 옆에서 곁눈질로 보다가 최근 다시 찾아본다는 3040세대들은 물론이고, 그런 경험 자체가 전혀 없는 MZ세대들까지 이 옛 드라마에 새삼 빠져든 이유는 뭘까. 그건 현재의 드라마들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감정들과 시청 경험을 이 드라마가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복수극이 유독 많은 장르물이 대세가 된 요즘 드라마들은 유혈이 낭자하고 툭하면 죽고 죽이는 자극의 폭주기관차 같은 양상을 띠고 있다. 그래서 이런 드라마들에 피로감을 느끼는 이들은 <전원일기>가 시작할 때 등장하는 OST의 느릿한 섹소폰 연주를 듣기만 해도 편안해진다고 한다. 굉장히 집중할 필요도 없고, 마치 ‘불멍’, ‘물멍’ 하듯 멍하게 쳐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는 것. 게다가 갈등에 갈등을 쌓아 폭발시키는 드라마와 달리 <전원일기>는 ‘끝내 화해하고 마는’ 드라마다. MBC가 60주년 특집으로 마련한 <전원일기 2021>에서 김혜자는 <전원일기>의 특별함으로 끝내 “갈등의 잔해를 줍는” 드라마라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 그는 이 드라마를 ‘농촌드라마’가 아닌 ‘휴먼드라마’라고 했다.

그런데 진짜 <전원일기>에 빠져들게 되는 건, 이 드라마가 제목처럼 당대의 전원의 삶을 마치 일기처럼 담아낸 기록의 ‘희귀함’ 때문이다. 알다시피 지금의 농촌은 <전원일기> 속 양촌리와는 사뭇 달라졌다. 어르신부터 중장년 그리고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북적이고 부대끼는 농촌의 삶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급속한 도시화의 물결이 원인이었다. 그래서 이제 농촌은 어르신들만 남은 고적한 곳이거나, 이미 전원도시가 되어 농촌의 삶이 사라진 곳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농촌의 급격한 변화는 결국 2002년에 무려 23년 간 달려온 이 드라마가 종영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전원일기>는 이 현실을 반영하려 했지만 그건 이 드라마 고유의 색채를 지우는 일이었다. <전원일기>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도시화의 물결에 의해 끝을 맞이했던 <전원일기>를 다시 현재로 소환시킨 건 그래서 90년대부터 급격히 바뀐 우리네 삶이 그 편리함과 세련됨의 이면에서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아닐까싶다. 도시로 도시로 몰려가다 보니 한없이 소외되었던 농촌의 삶에 대한 그리움. 사실 이러한 그리움과 향수 그리고 시골 특유의 정서는 그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농촌을 찾아갔던 이유이기도 했다. <1박2일>부터 <사남일녀>, <청춘불패>, <풀 뜯어먹는 소리>, <삼시세끼>같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모두 농촌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이들 농촌 소재 프로그램들이 담아낸 건 도시인들의 관점에서 다뤄지는 이벤트적인 농촌 체험일 뿐, 그 곳의 진짜 삶과는 사뭇 유리되어 있었다.

이런 경향은 최근 땅끝마을 시골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드라마 <라켓소년단>에서도 발견된다. 땅끝마을 사람들의 가족 같은 정과 끈끈함이 드라마 전편에 깔려 있지만, 그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가끔 도시에서 찾아와 쓰레기를 남기고 떠나는 등산객들조차 반가워하고, 잘 찾지 않는 손녀가 보고 싶어 이제나 저제나 찾아올 날을 기다리는 그들이다. 드라마는 농촌의 따뜻함을 도시인의 판타지로서 담아내지만, 그렇다고 점점 소멸되어가는 농촌의 현실이 바뀌지는 않을게다. 전원은 우리에게 잠깐의 판타지일 순 있어도 결코 쉬운 현실의 선택일 수는 없는 어떤 곳이 되어 있으니 말이다.

<구해줘 홈즈> 같은 의뢰자들의 집을 대신 찾아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독 ‘전원주택’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는 것 역시, 도시화로 인해 바뀐 삶의 현실 속에서 우리가 ‘전원’을 이제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방송이 보여주는 백 평을 훌쩍 넘기는 정원에 텃밭까지 딸린 전원주택을 보면서 ‘맞아 저게 진짜 집이지’ 하고 빠져 들지만 그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도시인들은 결코 도시를 떠나지 않는다. 그 넓은 전원주택보다 더 비싼 좁은 평수의 도시 아파트가 어쩌다 우리들의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 직장을 위해서, 보다 나은 문화생활을 위해서 우리는 도시에 포획되어 버렸다. 빈집이 급증하는 농촌은 그래서 ‘청년 증발’, ‘지역 소멸’ 같은 흉흉한 문구들이 떠돈다.

우리에게 농촌은 점점 현실이 아닌 판타지가 되어가고 있다. 그나마 귀농귀촌인구가 늘고 있다는 뉴스들이 나오곤 하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귀농인구는 거의 없고 귀촌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 역시 이런 농촌의 현실을 말해준다. 방송은 철저히 도시인의 관점에서 농촌을 더더욱 판타지의 공간으로 그려낸다. 현실이 삭제된 판타지의 공간에 매료되어 귀농귀촌한 이들은 그래서 막상 마주한 현실 앞에서 발길을 돌리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살기 좋은 농촌의 삶을 제도적으로 만들어내지 않으면 우리에게 농촌은 <전원일기>처럼 사라져 버릴 지도 모른다. 뒤늦게 사라진 것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과 판타지로만 소비되는 그런 공간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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