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여선 작가 "요즘 적극적으로 칩거…가족·구조 문제 들여다봤죠"

4년 만 소설집 '아직 멀었다는 말' 출간
'모르는 영역' 등 8편 작품 실어
"누군가의 하루 가능한 한 섬세하게 그려내"
  • 등록 2020-04-01 오전 12:30:00

    수정 2020-04-01 오전 12:30:00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발표하는 작품마다 동료 작가와 평단의 비상한 관심을 모아온 권여선(55) 작가가 ‘아직 멀었다는 말’(문학동네)로 돌아왔다. 제47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이자 ‘소설가들이 뽑은 올해의 소설’ 1위에 선정되며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안녕 주정뱅이’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소설집이다. ‘제19회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한 ‘모르는 영역’을 포함해 ‘희박한 마음’ ‘너머’ ‘친구’ ‘전갱이의 맛’ 등 8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31일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권 작가는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시기일수록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며 “원래도 집에 잘 있는 성격이지만 요즘에는 더욱 적극적으로 명분 있게 칩거하고 있다”고 전했다.

권여선 작가는 “불행이나 가난이 운명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는 인식은 누구나 하는 것”이라며 “중요한 건 소설에서 그런 현실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의 문제다”고 강조했다(사진=문학동네).


‘가족’ 주제로 다양한 인물 들여다봐

소문난 ‘애주가’인 권 작가는 한동안 작품마다 술 마시는 장면을 등장시켰다. 각종 인터뷰에서도 술 한잔 나누며 편하게 이야기하는 형식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번 소설집에서는 새로운 변화를 감행했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술을 먹이지 말아야지 결심을 하고, 술을 안 먹는 인물들을 하이에나처럼 찾아다녔다”고 한다. 기존의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다양한 인물들의 내면을 세밀하게 들여다봤다.

“이번 소설집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주제는 ‘가족’이다. ‘모르는 영역’이나 ‘재’에서는 아버지라는 자리, 딸과 맺는 관계, 그들이 늙어가는 상황에서 드러나는 고민과 변화 등을 생각해봤다. ‘친구’에서도 혼자 아들을 키우는 엄마가 겪는 결핍, 그녀의 선한 무지와 종교적 경도, 그것이 어린 아들에게 미친 영향 등 가족관계의 문제를 그렸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들도 눈에 띈다. 치사하고 악질적인 쪼개기 계약에 진저리치면서도 계약기간을 연장함으로써 받게 되는 한달 치 월급을 포기할 수 없는 ‘너머’의 계약직 교사 이야기가 그렇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 사회의 구조는 ‘빈익빈 부익부’를 오히려 지지하는 것만 같다.

“희망 없이 살아가는 누군가의 하루하루를 가능한 한 섬세하고 생생하게 그려내려 했다. 그들의 팍팍한 일상에도 따뜻한 숨결과 작은 물결이 일렁인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그 위에 드리운 거대한 구조의 어둠을 역설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송추의 가을’에서는 한국 문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납골당’이나 ‘합장’ 등의 장례 문화를 다루기도 한다. 권 작가는 “요즘 세대들에게는 낯선 문제이지만 나이든 분들 중에는 조상이나 부모의 ‘묘’ 문제로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문제 역시 가족관계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인 것 같다”고 했다.

‘아직 멀었다는 말’…절망·희망 섞인 키워드

‘새해가 되면 소희는 스물두 살이 된다. 옥탑방 계약은 소희가 스물셋, 스물다섯, 스물일곱이 되는 6월마다 돌아온다. 2년마다 보증금을 500만원씩만 올려도 대출금 갚는 건 두 배로 늦어지고 월세를 올려도 마찬가지다.’(‘손톱’ 중)

50대인 권 작가가 가장 그리기 어려웠던 이야기는 20대 ‘소희’의 이야기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 역시 소희가 주인공인 ‘손톱’이라고 했다. 소희는 일하는 매장에서 박스를 들어올리다 박스 아래에 튀어나와 있던 굵은 고정쇠가 손톱을 뚫고 나와 손톱 절반이 뒤로 꺾이고 살이 찢기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다. 하지만 손톱의 아픔보다 소희를 더 짓누르는 건 열심히 일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대출금과 옥탑방 월세다. 일반 짬뽕보다 500원이 더 비싸다는 이유로 매운 짬봉을 포기하는 모습에서는 청년들의 고충이 느껴진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젊은 여성 인물이라 묘사하기가 조심스러웠다. 천천히 이입하고 느릿느릿 상상하고 톤을 여러 번 가다듬으며 썼다. 애착이 가는 이유는 그렇게 탄생한 ‘소희’라는 인물이 너무 소중하고 아프기 때문이다.”

제목인 ‘아직 멀었다는 말’은 아직 멀었으니까 곧 도착할 수 없다는 절망과 분명하게 그곳으로 가고 있다는 희망이 섞인 작품의 키워드와 같은 말이다. 권 작가는 “워낙 코앞에 떨어진 일밖에 못 보는 타입이라 현재는 두 달 뒤 마감인 단편소설에 집중하려 하고 있다”며 “그렇게 한편 한편 쓰다보면 한권의 책이 되고, 책이 쌓여 어떤 세계가 만들어지든 무너지든 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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