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봉이 백두봉되는 건 시간문제"..기후변화의 역습

<기후변화로 농작물 지도가 바뀐다>
대구 사과 경작지 10년새 절반 줄고 강원으로 피신
서늘하다는 강원이지만 고랭지 채소밭 줄어드는 추세
내륙에서 기르는 한라봉 더는 제주 상징 아니듯이
기온상승 적응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리스크
  • 등록 2021-07-30 오전 6:00:00

    수정 2021-07-30 오전 8:46:23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한라봉이 백두봉이 되는 건 시간문제….` 한반도 기온이 상승하면서 농작물 재배 지역이 북상하고 있다. 제주는 더는 한라봉을 독점하지 못하고 대구는 `사과의 도시`라는 교과서 내용이 바뀔 판이다. 시원한 데에서 잘 자라는 고랭지 배추조차 강원을 떠나고 있다. 농경지도 재편은 농가에 생계가 달린 문제다. 기온이 오르는 데로 사람과 땅을 옮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구·경기 떠나는 사과·인삼..서늘한 강원으로 북상

대구를 상징하는 사과 수확량 감소는 기온 상승이 부른 대표적인 사례다. 29일 통계청 자료를 보면 대구의 사과 경작지는 지난해 36헥타르(㏊)로 2010년(66㏊)부터 10년 동안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사과가 대구를 떠난 이유는 더위 탓이다.

한국 연평균 기온(기상청 자료)은 2010년대(2011~17년) 13도를 기록해 1980년대(12.2도)와 1990년대(12.6도), 2000년대(12.8%)를 거치며 상승하고 있다. 사과는 연평균 8~11도 서늘한 지역에서 자라는 북부 온대 과수다. 오르는 기온을 피해서 시원한 곳을 찾는 것은 사과의 생존이 달린 문제다.

(그래픽=김정훈 기자)
이런 흐름이 이어지면 대구에서 사과를 영원히 지우는 상황이 찾아온다. 농촌진흥청은 `2085년에 이르면 한국에서 사과를 재배할 수 있는 곳은 태백산맥 일부와 한라산 정상 정도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사과가 떠난 대구에서는 야자수가 자란다. 적도 인근이 고향인 야자수는 자생 한계 지역이 남해안 일대인데 훌쩍 올라왔다. 사과와 야자가 공존하기 어려운 대구에서 터줏대감 `능금`은 갈수록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시원한 강원은 농업계 `신도시`로 부상하고 있다. 앞서 대구에서 사과 경작지가 줄어든 기간 강원에서는 5배(104→517㏊) 늘었다. 재배 면적으로 보면 전국 8번째에서 6번째로 순위가 올랐다. 사과처럼 큰 일교차에서 잘 자라는 인삼도 최근 강원으로 몰린다. 인삼통계 자료를 보면 전국 인삼 재배면적에서 강원 비중은 2009년 11.5%에서 2019년 15.9%로 늘었다. 전국 경작지가 25% 감소한 가운데 강원은 3.4% 증가한 결과다.

대구 전역에 폭염주의보가 발효된 지난 19일 오후 대구 남구 중동교 아래 신천둔치에 식재된 야자수길을 시민이 걷고 있다.(사진=뉴시스)
10년 전만 해도 최대 인삼 산지였던 경기는 이제 강원보다 좁다. 현재 최대 재배지를 가진 충북은 매해 강원과 격차가 좁아지고 있다. KGC인삼공사가 18년간 공들여 2019년 상품화한 신품종 `선명`은 고온에 내성이 강하다. 인삼의 북상 흐름이 대세라는 걸 뒷받침하는 사례다. 김옥이 강원인삼협동조합 상무는 “강원이 충북에 이어 전국 두 번째로 인삼 재배지로 부상한 지 오래”라며 “기온이 상승하면서 상대적으로 서늘한 강원 기후가 주목받은 결과”라고 말했다.

강원 녹차도 익숙한 작물이다. 녹차는 아열대성 식물로서 전남 보성과 경남 하동, 제주 등 남쪽이 주산지다. 강원 고성군은 2004년부터 녹차 밭을 일궈서 현재까지 생산을 이어온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연구 결과를 보면, 2050년대 중부지방 대부분에서 녹차 재배가 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

물론 품종 개량과 풍랑 등 관리에 노력이 더 들지만 `남해에서 동해 최북단`까지 진출은 성공적으로 평가받는다. 강원 고성군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신규로 녹차를 기르고자 하는 농가가 있으면 지원을 아끼질 않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후변화 수혜는 착시..열대작물도 북상중

그렇다고 강원을 기온 상승 수혜지로 보기는 어렵다. 상대적으로 대구보다 시원한 것이지 절대적으로는 전보다 더워졌다. 대구와 마찬가지로 전에 있던 것을 잃고 있는데 대표적인 게 고랭지 채소다.

강원 지역의 고랭지 배추 재배면적은 지난해 4597㏊로 20년 전 1999년(7316㏊)보다 37% 줄었다. 경작지가 줄어드니 가격이 뛰었다. 고랭지 배추가 본격 출하하는 시기인 7월 기준 10㎏당 도매가격은 작년 1만240원으로 2010년(7860원)보다 30% 올랐다.

농업관측센터에서 배추를 담당하는 김다정 연구원은 “폭염과 이상 기온으로 고랭지 농업 생산량이 감소하고 출하에 차질을 빚는 정도가 늘어 경작지가 줄고 가격이 올랐다”라고 말했다.터를 잡고 시간을 투자하는 게 농사의 근본인 점을 고려하면 기후 변화는 결국엔 양날의 검이다. 십수년을 사는 사과나무나 6년을 기르는 인삼을 뽑아서 그때그때 터전을 옮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남단 지자체 제주 풍경도 예전과 다르다. 지난해 국립아열대작물 실증센터가 전남 장성군에 들어서기로 결론난 것은 상징적이다. 앞으로 아열대 작물의 주무대가 제주가 아닌 내륙이 되리라는 전망이 우세한 결과다. 실제로 제주는 패션프루트와 애플망고 등 열대 과일을 기르는 농가가 늘고 있다. 원래 아열대성 감귤과 만감류(한라봉·천혜향·레드향 등) 등이 자라던 자리였다. 이제는 내륙에서도 기르다 보니 경쟁력이 전만 못해 경작물을 바꿨다.

전남 해남군 농업기술센터 첨단하우스에서 실증재배하는 파인애플.(사진=해남군)
이밖에 전남 해남군은 올해 처음으로 시범 재배한 파인애플 재배에 성공해 가을 수확을 앞두고 있다. 이로써 아열대 작물 파인애플 주산지가 제주라는 정의는 무색해졌다.

특히 만감류 경작지 가운데 내륙 비중은 2015년 3.3%에서 2019년 3.7%로 증가 추세다. 전북 김제시와 경북 경주시는 2010년대 중반부터 만감류를 재배하기 시작해 이제 정착 단계다. 김제시 사례를 보면 현재 만감류 재배 농가 10곳이 정착해 지난해 36t을 생산했다. 김제시 아열대 작물 재배지는 25㏊에 이른다. 시는 애플망고 등 아열대 작물을 추가로 들여오고자 준비하고 있다. 제주에서 생산되는 것들이다.

이제 한라봉은 `백제봉`(김제)과 `신라봉`(경주)으로 부르는 지경이다. 중부 내륙까지 북상하는 건 시간문제다. 조만간 `고구려봉` `백두봉`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는 의미다.

김영길 김제시 농업기술센터 주무관은 “온대보다 아열대 작물을 다루는 농가와 경작지가 늘고 있다”며 “그간 주력으로 삼아온 작물은 시차를 두고 상품성이 떨어질 것으로 보여 대응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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