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극장의 적막을 깨운다. 이 아이를 시작으로 여기저기 다른 아이들도 ‘캡이 뭐냐’고 묻는다. 요즘말로 ‘짱’을 20여년 전에는 ‘캡’이라고 했는데 모르는 단어 하나에 극장이 소란스러워졌다. 이런 상황은 계속됐다. 아이들은 인물들의 목소리를 흉내내는가 하면 ‘웃기다’ ‘무섭다’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들을 즉각적으로 표현했다. 일반 상영관이었다면 ‘관크’(관람을 방해하는 행위나 관객)로 눈치 엄청 받을 법한 상황이 여기에선 오히려 자연스러워 낯설면서 흥미로웠다.
지난 16일 저녁 CGV용산아이파크몰. 유치원생 또는 초등학교 1~3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200여석의 상영관을 가득 채웠다. TV 인기 애니메이션 ‘신비아파트’ 시리즈의 극장판인 ‘신비아파트:금빛 도깨비와 비밀의 동굴’(이하 극판장 ‘신비아파트’) 시사를 보기 위해서였다.
‘신비아파트’ 시리즈는 2016년 7월부터 2017년 1월까지와 2017년 11월부터 2018년 3월까지 투니버스에서 방송된 호러 판타지 애니메이션이다. 국내 애니메이션의 경우 4~13세 어린이들을 타깃으로 시청률 2~3%면 성공으로 여기는데 이 애니메이션은 평균 5.5%, 최고 10%를 기록했다. 이 애니메이션의 메인 캐릭터인 도깨비 ‘신비’가 어린이들 사이에서 ‘초통령’급 인기를 누린다. 최근에는 뮤지컬로 만들어져 공연이 한창이다.
25일 극장판 개봉을 앞두고 ‘신비아파트’ 시리즈를 탄생시킨 CJ ENM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바주카’의 석종서 국장을 만났다. 원래 광고쟁이가 꿈이었던 그는 첫 직장인 투니버스에 취직을 하면서 애니메이션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개구리 중사 케로로’(1~3기) ‘명탐정 코난’(3~5기) 등 일본 인기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국내 현지화에 기여했고 ‘안녕 자두야’ ‘와라 편의점’ 등 토종 애니메이션을 성공시켰다.
석 국장은 “애니메이션은 글로벌로 뻗어나갈 수 있는 콘텐츠다”며 애니메이션의 해외 진출 성공 가능성을 자신했다. 그는 “영화나 드라마, 예능은 한류의 도움 없이 수출이 어렵고 현지화 작업도 쉽지 않다”며 포맷 수출에 그치는 국내 콘텐츠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애니메이션은 수용자가 캐릭터를 사람이 아닌 캐릭터 그 자체로 받아들여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며 “언어도 더빙작업으로 각 나라의 언어를 입히면 되기에 콘텐츠 그대로 수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이점에도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의 환경이 열악해 해외 진출이 가능할 정도의 역량을 키우는데 어려움이 있다. 일단 이야기 재료가 부족하고, 재료를 콘텐츠화할 기획력이 부족하다. 그것을 기획할 인력은 턱없이 모자란다. 석 국장은 “기획의 핵심 역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PD와 작가다. 시장에서 의외로 한국적 요소를 지닌 이야기가 잘 먹히는데 그것을 이야기로 풀어낼 작가들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전문 애니메이션 작가가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석 국장과 바주카는 유행에 민감한 예능 작가와 협업을 통해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이는 ‘신비아파트’ 시리즈가 다른 애니메이션과 차별화된 즐거움을 제공하는 배경이 됐다.
흔히 애니매이션을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녀로부터 직업의 소명을 찾는다. 석 국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딸을 둔 ‘딸바보 아빠’다. 딸은 그의 가장 냉철한 모니터 요원이자 조언자다. 석 국장은 “다른 어떤 수치적인 결과보다 딸이 ‘재미있다’고 말할 때가 가장 기쁘다”며 “딸과 또래의 친구들을 위한 작품을 꾸준히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