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훈의 맛있는 혁신]요술

국내 과일 주스 소비량 수년째 '내리막'
제주도선 감귤 증류주 생산·판매 나서
주류 다양화, 지역농가 보탬 '일석이조'
  • 등록 2018-12-13 오전 5:00:00

    수정 2018-12-13 오전 5:00:00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푸드비즈니스랩 소장] 술은 참으로 요망한 음식이다. 없으면 허전하고, 있으면 즐겁고, 과하면 독이 된다. 특히 연말에는 더욱 허전하고, 더욱 즐겁고, 더욱 독이 된다. 이 요망한 음식은 만드는 방법에 따라 몇 가지로 분류되는데 발효주, 증류주, 리큐르(침출주)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맥주, 와인 등은 발효주이고, 위스키, 소주 등은 증류주이며, 약주나 칵테일에서 쓰는 향을 우려낸 다양한 술들은 리큐르로 분류된다.

그런데 이 모든 술의 출발은 ‘발효’에서 시작한다. 증류주도 결국은 발효주를 증류하여 만들고, 리큐르는 증류주에 허브나 과일 등을 넣어 우려 내거나, 혹은 발효주를 증류하는 과정 중에 허브 등을 추가하여 만든다. 그러니 모든 술의 출발은 발효주이고, 발효주는 효모와 효모의 먹이인 당(糖)에서 출발한다. 자연 상태에서 가장 흔한 당은 과일의 당이다. 과일을 착즙하여 주스를 내리고 여기에 효모를 앉히면 과일 발효주가 된다. 와인이 이렇게 만들어진다.

한국은 쌀, 유럽은 과일로 술 빚어

반면에 곡물에 들어가 있는 탄수화물은 그 자체로는 발효가 되지 않는다. 탄수화물에 당화 효소가 작용하면 화학적 변이가 일어나 당류가 변화한다. 이 때 효모를 앉혀 발효를 하면 역시 술이 된다. 사람의 침 속에는 아밀라아제라는 것이 있는데 이 아밀라아제가 당화 효소의 일종이다. 입 안에 밥을 넣고 씹으면 단맛이 나는 이유가 바로 이 아밀라아제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 전에는 당화 효소를 따로 구할 수 없으니 사람이 곡물을 씹은 다음 뱉어내고 이 당화된 곡물을 발효하여 술로 만들어 먹기도 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에 나왔던 일본의 구치카미자케(口?み酒)가 그렇게 만들어진다. 우리나라 문헌에는 ‘지봉유설’에서 이 술의 제조법을 기록하고 있는데 ‘미인주(美人酒)’라고 명명하고 있다.

이렇게 과일은 착즙하여 효모만 앉혀 바로 발효하여 술을 만들고, 곡물은 당화 효소로 당화 과정을 거친 후 발효하여 술을 만든다. 맥주, 막걸리, 일본 사케 등이 이렇게 만들어진다. 당화 효소와 효모가 엉겨 붙어 있는 우리 전통의 술을 만드는 핵심 재료의 이름이 바로 ‘누룩’이다. 밥을 지어 누룩을 얹고 잘 눌러주면 당화와 발효가 함께 일어나며 막걸리가 된다. 완성된 막걸리를 가만히 두면 술덧이 가라앉는데 이 술덧을 가라앉히고 윗 술을 떠내면 청주(淸酒)가 된다. 흔히 일본에서 ‘사케’라고 부르는 발효주가 바로 이 청주다. 또한 원재료를 쌀이 아닌 보리를 써서 발효하여 술을 빚으면 맥주가 된다.

과일 농사가 잘되는 곳에는 주로 과일로 술을 빚고, 곡물 농사가 잘되는 곳에서는 주로 곡물로 술을 빚는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쌀농사를 주로 지었고, 우리의 술은 주로 과일이 아닌 쌀을 주원재료 쓴 것이었다. 쌀을 당화, 발효시켜 만든 막걸리나 청주를 알코올이 끓는점 78.3℃와 물이 끓는점 100℃사이에서 가열하면 물은 남고 알코올만 증기가 되어서 올라가다가 냉각기에서 이슬처럼 맺혀서 따로 수집할 수 있게 되는데 이걸 모은 것이 바로 증류주다. 고대 아랍의 향수 제조 기술이 그 원조다. 그런데 이 증류된 알코올이 증기가 되어 올라가면서 원재료가 갖고 있던 다양한 향미 물질을 함께 안고 넘어간다. 그래서 증류주에는 순수 알코올이 아니라 원재료의 멋진 향이 함께 녹아 있다. 이렇게 만든 것이 바로 우리의 증류식 소주다. 증류주는 높은 도수와 함께 깔끔함이 그 특징이다. 최근 국내에서 이 증류주에 대한 인기가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문배’, ‘화요’, ‘일품진로’, ‘미르’ 등과 같은 예쁜 유리병에 든 증류식 소주가 만들어 놓은 시장이다. 예쁜 병에 든 증류주는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도 좋다.

주로 곡물을 활용해 술을 담가 먹었던 우리와는 달리 유럽 지중해 인근에서는 포도, 사과 등으로 과일 발효주를 담갔고, 이를 증류주로 만들어 먹기도 하는데 이것이 브랜디(Brandy)다. 맑은 증류주를 그대로 마시기도 하고 오크통에 넣어 숙성해서 먹기도 한다. 프랑스에서 와인을 증류한 브랜디로 유명한 곳이 꼬냑(Cognac)과 알마냑(Armagnac)이고, 사과주를 증류한 브랜디로 유명한 곳이 칼바도스(Calvados)다. 레마르크의 소설 ‘개선문’에서 주인공 라비크가 늘 마시던 술이 칼바도스였다.

제주 감귤 농가가 합심해 만든 ‘신례명주’.(사진=11번가 홈페이지 캡처)
과하면 독되는 ‘요망한 술’…지역 농가 살리는 ‘요술’ 되길

서울대 푸드비즈니스 랩에서는 매년 12월에 이듬해의 음식 트렌드를 예측하고 발표하는 행사를 한다. 올해도 이 발표를 위해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해서 분석하다보니 우리나라 과일 가공과 관련한 확연한 트렌드가 하나 보였다. 사과, 감귤, 포도, 복숭아 등 우리 과일로 만든 주스들의 소비가 수년째 감소하고 있었다. 보통 과일은 상품(上品)은 생과로 판매하고 크기나 외관에 선호도가 떨어지는 과일은 주스로 가공하여 판매하는데 이제 주스를 마시는 사람들이 줄어 들고 있다. 우리 과수 농가들은 침울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제주도 서귀포 인근 신례리에 갔더니 141개 감귤 농가가 협력하여 증류주 공장을 설립하고, 크기가 너무 작거나 커서 생과로 판매할 수 없는 제주 노지 감귤로 ‘신례명주’라는 지역 명칭의 감귤 증류주를 만들고 있었다. 오크통에 2년간 숙성한 그 맛과 향이 실로 대단했다. 단단한 오크향의 끝에서 피어오르는 제주 감귤의 부드러운 터치에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지역의 과수 농가들이 서로 협동하여 할 수 있는 아주 멋있고 맛있는 비즈니스의 기회가 과일주, 특히 과일 증류주 사업일 수 있겠다 싶었다.

술이 넘치는 연말이다. 초록색 병에 든 희석식 소주 말고도 좋은 우리 술이 참 많다. 이번 연말엔 양으로 승부보지 말고 다양한 술을 시도해 보자. 양보다는 질이다. 내년에는 없으면 아쉽고, 있으면 즐겁고, 과하면 독이 되는 요망한 술이 요술을 부려 우리나라 지역 과수 농가를 살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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