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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호의 그림&스토리]<4>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개학 시즌…김홍도의 '서당'으로 본 교육 백년대계
조선 최고 화가가 포착한 18세기 교육기관 '서당'
신분차별 없는 평등한 배움 향한 바람을 실은 듯
그림 속 '회초리' 매개로 현대 체벌문제도 짚어봐
  • 등록 2021-03-05 오전 3:30:00

    수정 2021-04-08 오전 11:51:12

김홍도가 그린 ‘서당’(18세기). ‘단원풍속도첩’에 든 풍속화 25점 중 한 점이다. 원형으로 배치한 구도, 생생한 인물표정 등이 살아있는 화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종이에 수묵담채, 27×22.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혹독한 세상살이에 그림이 무슨 대수냐고 했습니다. 쫓기는 일상에 미술이 무슨 소용이냐고 했습니다. 옛 그림이고 한국미술이라면 더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는 일을 돌아보면 말입니다. 치열하지 않은 순간이 어디 있었고, 위태롭지 않은 시대가 어디 있었습니까. 한국미술은 그 척박한 세월을 함께 견뎌온 지혜였고 부단히 곧추세운 용기였습니다. 옛 그림으로 세태를 읽고 나를 세우는 법을 일러주는 손태호 미술평론가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장면,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조선부터 근현대까지 시공을 넘나들며, 시대와 호흡한 삶, 역사와 소통한 현장에서 풀어낼 ‘한국미술로 엿보는 세상이야기’ ‘한국미술로 비추는 사람이야기’입니다. 때론 따뜻한 위로로 때론 따가운 죽비로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아트인문학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편집자주>

[손태호 미술평론가] 새 학년 새 학기입니다. 새로운 교과서를 받고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날 기대감에 학생들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등교합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등교하지 못한 날이 많았는데 올해는 조금씩 대면 수업을 늘려 간다니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 아무리 온라인 수업이 괜찮다고 해도 선생님과 친구들과 어울려 공부하는 학교 수업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공부란 것은 단순한 지식전달이 아니라 선생님의 행동을 보면서 옳고 그름을 배우고,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사회성을 알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선생님 앞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상상할 때마다 떠오르는 그림이 한 점 있습니다. 단원 김홍도(1745∼1806?)의 ‘서당’입니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거의 없을 만큼 유명한 그림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유심히 보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안다고 생각하는 작품은 꼼꼼히 감상하기보다는 스치듯이 지나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번 기회에 한번 제대로 들여다보면 좋을 듯싶습니다.

보면 볼수록 새로운 느낌과 감동을 주는 그림입니다. 헐렁한 유복에 검은색 허리띠를 맨 훈장님 좌우로 아홉 명의 학생이 보입니다. 이 서당에는 모두 10명의 인물이 등장하지만 훈장님과 그 앞에 돌아앉아 눈물을 닦고 있는 아이가 그림의 주인공입니다. 이 두 사람이 중심인물이기에, 훈장님의 유생관을 진하게 그려 그곳으로 먼저 눈이 가게 한 후 벼루를 거쳐 아이의 머리로 시선이 옮겨가도록 배치했습니다. 훈장님은 조선의 시골 마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동네 서당의 지극히 평범한 모습입니다. 유생관 옆으로 머리가 삐져나왔고 수염도 다듬지 못해 덥수룩합니다.

훈장님 앞에는 서탁이 있고 그 아래에는 방금까지 아이가 읽었던 책이 놓여 있습니다. 한쪽이 접혀 있는 것으로 보아 방금까지 아이 손에 들렸던 책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 왼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습니다. 이 아이는 왜 울고 있을까요. 아마도 서탁 앞에 높인 가늘고 탄력 있어 보이는 회초리와 연관이 있을 겁니다. 무슨 잘못을 했을까요. 단서는 바닥에 놓인 책에 있습니다.

강독·제술·습자로 이뤄진 서당 교육

당시 서당의 교육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주요 서책을 읽고 외우는 ‘강독’, 문장을 익히는 ‘제술’, 여러 글씨체를 익히는 ‘습자’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과목이 강독입니다. 매일 정해진 분량을 외워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에 외우지 못하면 외울 때까지 반복을 시켰습니다. 울고 있는 아이는 그 강독이란 고개를 넘지 못했나 봅니다.

김홍도가 그린 ‘서당’ 중 그림의 주인공이라 할 ‘훈장님’과 ‘우는 아이’를 클로즈업한 디테일. 안쓰러움이 묻어나는 훈장님, 회초리를 맞기도 전에 눈물부터 보인 아이 등에서 보듯, 동그란 얼굴과 올챙이처럼 표현한 눈에 얹은 생생한 표정은 김홍도 인물 표현의 특징이다.


그런데 종아리를 맞기 전일까 맞은 후일까. 오래전부터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울고 있는 아이가 회초리를 맞기 전인지 후인지가 늘 궁금했습니다. 그 궁금증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풀렸습니다. 매를 맞기 전이란 것을요. 아이의 대님이 아직 풀리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가장 확실한 이유는 훈장님을 등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 서당에서는 전날 공부한 것을 외우는 복습이 공부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때 훈장님에게 등을 보이고 돌아앉아 암기한 내용을 소리내어 외우는데, 이를 ‘배송’(背誦)이라 합니다. 어제 배운 문장을 외워보라는 훈장님의 이야기에 아이는 뒤돌아서기 직전까지 책을 봤을 겁니다. 하지만 제대로 외우지 못했고 결국 훈장님은 종아리를 걷어라 했을 겁니다. 옆에 놓인 회초리를 보니 눈물이 안 날 수 없겠지요. 그 아이를 바라보는 훈장님의 표정에도 안쓰러움이 묻어납니다. 비록 회초리를 들 수밖에 없지만 안타까움이 컸던 것입니다.

다른 아이들의 모습도 재미있습니다. 무엇인가 답을 알려주는 듯한 아이, 고소하다는 듯이 웃고 있는 아이, 갓을 썼으니 제법 나이를 먹었을 아이, 형의 옷을 입고 왔는지 헐렁한 차림의 아이 등이 모두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습니다. 조선후기의 학자 이덕무는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서 자신이 다섯 살부터 글공부를 시작했다고 하니 맨끝 어린 학동도 그쯤 됐을 것 같습니다. 웃고 있는 아이들은 이미 테스트를 마쳤을 것이고 책을 뒤적이는 아이들은 다음 차례에 배송을 할 것입니다.

동그란 얼굴과 올챙이처럼 표현한 눈은 김홍도 인물 표현의 특징입니다. ‘단원풍속도첩’(檀園風俗圖帖)에 실린 풍속화 중 한 점인 이 그림의 탁월함은 구성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둥그렇게 둘러앉아 자칫 답답할 수 있는 구도를, 훈장님 왼쪽과 갓 쓴 학동 사이, 또 좌측 하단에 여백으로 벌려놓아 시원스럽게 소통하도록 했습니다. 그런 효과를 높이기 위해 회초리의 방향도 그 흐름의 방향과 일치하게 그린 것입니다.

지금은 학교에서 모든 체벌을 금지하고 있지만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선생님의 회초리는 필수적인 훈육도구였습니다. 조선시대 유학자라면 달달 외웠던 ‘사서삼경’ 중 하나인 ‘서경’의 ‘순전’에는 “회초리로 교육의 형벌로 삼는다”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훈장님의 회초리는 사회로부터 인정받은 것이란 뜻입니다.

서양 풍속화에도 등장하는 ‘회초리’

선생님의 체벌은 동양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서양도 다를 바 없었습니다. 17세기 네덜란드 대표화가인 얀 스테인(Jan Steen·1626∼1679)이 그린 ‘마을 학교’(The Village School)는 시골 학교의 평범한 교실 풍경을 그린 작품입니다. 그림 속에서 선생님은 작은 방망이 같은 도구로 아이의 손을 때리고 있고 아이는 눈물을 훔치고 있습니다. 바닥에는 망쳐버린 시험지가 구겨진 채 내동댕이쳐져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의 시선도 맞고 있는 아이 손에 모여 있고 그 아픔을 표정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재치 있는 화풍으로 렘브란트(1606∼1669)에 버금가는 명망을 얻은 얀 스테인은 초기에 성서의 고전적 주제로 그림을 그리다가 후기에는 개성 있는 인물화로 재미있는 작품을 많이 탄생시킨 화가입니다. 이 그림도 보는 순간 바로 어떤 상황인지는 물론 인물들의 심리까지 잘 묘사한 뛰어난 작품으로 꼽힙니다.

17세기 네덜란드 풍속화가 얀 스테인의 ‘마을 학교’(The Village School·1665). 농민이나 중산층의 생활 정경을 위트와 해학으로 그려냈던 작품들 중 하나다. 110.5×80.2㎝, 아일랜드국립미술관 소장.


그런데 동서양을 막론한 그림 속에 나타난 선생님의 체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체벌은 그 선한 목적에도 불구하고 폭력적인 방식이란 점에서 자유로울 순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학교가 체벌을 금지하기로 했을 겁니다. 하지만 왕왕 들리는 현실은 아닌가 봅니다. 여전히 아이들에게 체벌 이상의 폭력이 가해지고 있다는 것인데요. 특히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의사표현이 부족한 어린아이에게 훈육을 빙자한 학대가 자주 발생하는가 봅니다. 교육기관뿐만 아니라 안온해야 할 가정에서조차 단순 학대를 넘어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끔찍한 뉴스도 자주 듣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김홍도가 바라는 ‘서당’의 모습은…

조선시대 서당은 서원과 달리 신분이 낮은 아이들도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양반의 아이들과 평민의 아이들이 같은 서당에 다니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평민의 아이들만 다니는 서당도 있었습니다. 백범 김구도 어릴 적에는 양반집 아이들이 다니는 서당에 갈 수 없어 평범한 농가 아이들이 다니는 서당을 다녔다고 했습니다. 김홍도의 ‘서당’에서는 갓을 쓴 양반집 아이와 평민집 아이가 같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중인 출신인 김홍도가 바라는 ‘서당’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비록 회초리가 등장하지만 폭력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차별 없고 평등한 교육환경. 이것이 대한민국의 미래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 전제가 있다면 아동학대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꽃으로도 때려서는 안 될 일입니다. 새 학년 새 학기에 더구나 어렵게 다시 학교에 나가게 된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그 바람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 단원풍속도첩

조선후기 단원 김홍도가 그린 풍속화를 묶은 화첩이다. 노동과 휴식, 취미와 놀이 등 당시 서민의 일상을 포착한 그림 25점으로 한 권을 엮었다. 기와 이기, 주막, 새참, 무동, 씨름, 쟁기질, 서당, 대장간, 점보기, 윷놀이, 그림 감상, 타작, 편자 박기, 활쏘기, 담배 썰기, 자리 짜기, 신행, 행상, 나룻배, 우물가, 길쌈, 고기 잡이, 노상과안, 장터길, 빨래터 등. 현장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듯한 생생한 표현력이 특징이다. 공 들여 그리지 않고, 각 장면에 가장 어울리는 기법으로 최소화한 묘사·채색 덕인데. 일체의 배경도 생략한 채, 덜 그리고 덜 칠해서 소재 자체를 돋보이게 한 영리한 그리기를 한 셈이다. 다양한 구도 역시 당시로선 ‘파격’이다. ‘서당’에서 보이는 원형구도 외에도 X자, 대각선, 사다리꼴 등으로 진짜 삶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배치했다. 무심한 듯 간단하게 작업한 듯하지만 인물의 표정은 물론, 자세와 방향까지 치밀하게 계산한 ‘명작 모음집’이다. 제작연도는 정확치 않고 18세기로만 전해진다. 27×22.7㎝. 1970년 보물 제527호로 지정됐다.

△손태호 미술평론가는…

30대 중반 도망치고 싶던 때가 있었다. 세상살이가 버겁고 고달파서. 막막하던 그 시절, 늘 그렇듯 삶의 퍼즐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풀렸다. 그즈음 눈에 띈 옛 그림이 우연이었고 그 흔적을 좇아 미술관·고서화점 등을 누비고 다닌 게 필연이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찍힌 인장 ‘장무상망’(長毋相忘·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을 보고 어째서 ‘그림이 삶, 삶이 그림’이라 하는지 깨달았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과학도의 길은 그날로 접혔다. 동국대 대학원 미술학과로 진학해 석·박사학위를 받은 뒤 한국미술 전문가가 됐다. 조선회화·불교미술에 기둥을 세우고 그 안에 스민 상징 같은 ‘옛 그림’은 거울로 곁에 뒀다. 지금은 한국문화예술조형연구소 학술이사로 있으면서 이론·현장을 연결한 연구, 인물·지리·역사를 융합한 글과 강연에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 ‘조선불상의 탄생’(한국학술정보·2020), ‘다시 활시위를 당기다’(아트북스·2017), ‘나를 세우는 옛 그림’(아트북스·20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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