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싸는 韓산업 두뇌]②끝 모를 SK-LG 인력유출 갈등…韓 인재관리 구멍

배터리 소송전 혼란 틈타 中 인재 빼가기 기승
기업 대응만으론 인력유출 막기 한계
배터리 핵심 인력 `부르는 게 몸값`
日제재 속 반도체 인력관리도 비상
“정부, 인재 처우개선 등 로드맵 만들어야”
  • 등록 2019-07-15 오전 5:35:00

    수정 2019-07-15 오전 9:47:04

산업통상자원부가 이달 초 LG화학, SK이노베이션 등 배터리업계 인사 관련 부서에 인력유출 관련 ‘워닝’(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전기차 배터리(2차전지) 영업비밀 침해 여부를 놓고 맞소송 중인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 갈등이 해외 인력 유출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최근 들어 중국 배터리사는 물론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두 회사의 소송전을 틈타 한국 인력 빼가기를 시도하고 있어서다. 급기야 정부부처가 나서 국내 배터리사들에 인력 유출 워닝(Warning·경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업계는 뒷북 조치라는 반응이 많다.

배터리 제조업체 C사의 한 고위임원은 “중국의 인력 빼가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3~4년간 중국 등 해외로의 인력유출이 심각한 수준”이라며 “기업의 처우 개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배터리 산업은 미래 성장 동력’이라는 말만 앞세우지 말고 국가 차원의 각종 인센티브와 지원책 등을 마련해야 글로벌 시장에서 제대로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인재 유출이 사실상 기술 경쟁력 유출로까지 연결된다며 허술한 인재 관리가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차질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매년 공개하는 두뇌유출지표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10점 만점에 4.00점으로 조사대상 63개국 중 43위를 기록했다. 인재 유입보다 유출이 많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의 두뇌 유출 추이를 보면 1996년 37개국 중 6위로 양호했던 반면 2014년 60개국 중 37위, 2016년 61개국 중 46위, 2017년 63개국 중 54위로 악화해 하위권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이 같은 부실한 인재 관리 시스템은 고급인력의 탈한국을 불러왔다. 전기차 배터리만 해도 국내인력에 보내는 러브콜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산업이 팽창하고 있는 가운데 적합한 인력은 한정돼 있어서다. 그러다 보니 스카우트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한 국내 배터리사의 경우 연구팀 인력 8명이 한꺼번에 신생 중국업체로 이직한 일을 겪었다. 지난해 말에는 삼성SDI 전무가 애플의 배터리 개발 부문 글로벌 대표로 이직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공개채용방식이 아닌 헤드헌터를 통해 제안이 와 인력단속에 나섰다”며 “중국 내 상위권에 있는 전기차 배터리 업체 연구인력의 절반이 한국 기업 출신이라든가, 배터리 전문가의 경우 ‘부르는 게 몸값’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라고 말했다. 국내 배터리 부장급 연봉은 1억원 수준인데, 중국 CATL은 약 3억원 안팎의 연봉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LG와 SK의 법정분쟁이 장기화할 경우 중국과 일본 등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D사 고위 관계자는 “소니 등 소형 배터리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던 일본 기업들은 10년 전부터 핵심 인력들이 중국 기업으로 이탈하면서 기술 경쟁력을 잃어 중국에 쫓기는 신세가 됐다”고 귀띔했다.

LG화학은 지난 4월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자사의 인력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배터리 영업비밀을 빼갔다며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델라웨어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SK이노베이션 역시 근거 없는 소송이라며 국내 법원에 맞소송을 냈다. ITC 소송은 내년 6월5일 예비판결, 10월5일께 최종판결이 내려질 예정이며 국내 소송은 현재까지 재판날짜가 잡히지 않은 상태다.

반도체 업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업계에서는 2017년에만 국내 반도체 인력 1300여명이 중국으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업계 역시 수년째 이어진 불황에 전문 인력들이 사라지고 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한국 조선업 핵심 연구인력(석사급 이상)이 2013년 1370명에서 2016년 723명으로 급감했다. 원전 분야는 생태계가 망가질 정도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의 여파로 국내 원전 전문인력이 무더기로 떠나면서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전격기술 등에서 최근 2년간 260여명이 퇴직했다. 이들 중에는 프랑스, 미국, 아랍에미리트(UAE) 등 경쟁국가로 취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재 유출을 막으려면 국가 차원에서 장기적 안목을 갖고, 인력 로드맵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해외 다른 국가들은 기술 유출 방지와 인재 처우 개선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서다.

미국은 지적재산권을 국익의 핵심으로 보고, 국립연구원 소속 내 연구가 외국 정부 프로그램과 관련이 있는지 보고하게 한다. 만약 이를 어길 경우는 법적 책임을 묻고 있다. 또 NIW(우수인력유치제도)를 통해 화학, 기술, 공학, 수학 분야 우수 인재에 대해 노동허가를 면제하고 가족 영주권을 부여하고 있다.

중국 역시 자국의 배터리 산업 보호를 위해 대규모 인력 투자는 물론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2008년엔 해외 유학파 고급 인재 유치를 목표로 천인계획을 발표한 뒤 가족 영주권 부여, 정착금 지급, 면세혜택 등의 기회를 제공한 바 있다. 싱가포르도 글로벌 인재 유치를 위해 임대주택 및 사원공간 등을 제공한다. 일본은 학술진흥회, 독일은 훔볼트재단 등 민관 합동으로 움직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민관 합동 대응이 허술하고, 인력 유출 방지는 물론 인재 유치에 대한 로드맵이 안 보인다는 지적이 많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 한국의 인재 관리는 제조업 부흥기인 산업화시기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며 “인재 관리에도 선진화 방안이 필요하다. 기업에 전적으로 맡기기엔 한계가 있다. 정부는 좀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인력양성 정책의 큰 틀을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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