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2011년 8월 11일 일요일. 팀 쿡은 스티브 잡스로부터 자신의 집으로 와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당시 잡스는 췌장암으로 요양 중이었다. 갑작스러운 전화에 놀란 쿡이 언제 가면 되느냐고 묻자 잡스는 “지금 당장!”이라고 답했다. 그날 쿡은 잡스로부터 예상치 못한 제안을 받았다. 애플의 다음 CEO를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6주 뒤인 2011년 10월 5일 잡스가 세상을 떠났다. 모든 언론과 분석가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애플의 내리막길을 예견했다. 이유가 있었다. 애플의 새 CEO 쿡은 잡스와 달리 좀처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제품발표회에서도 인상적인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인 적 없는 베일에 가린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잡스 사후 8년이 지난 지금 예언은 잘못된 것으로 판명됐다. 2019년 현재 애플은 세계 최초로 시가총액 1조달러를 돌파한 기업이 됐다. 주가는 2011년보다 무려 3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애플 전문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애플의 ‘반전’을 이해하기 위해선 잡스가 왜 쿡을 다음 CEO로 지목했는지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혁신’에 목숨을 걸었던 잡스가 ‘안정’과 ‘실리’에 탁월한 모범생 쿡을 후임자로 확신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쿡을 비롯해 조너선 아이브, 그레그 조스위악, 리사 잭슨 등 애플 주요 임원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애플의 조용한 천재’ 쿡의 생애를 찬찬히 살핀다. 미국 남부 시골 앨라배마에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오번대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하고 IBM에서 경험을 쌓은 뒤 IE와 컴팩을 거쳐 애플에 들어오기까지 쿡의 개인적인 일화와 경력의 모든 순간을 한 편의 영화처럼 생생하게 펼쳐낸다.
특히 애플이 쿡을 만나 겪은 변화에 주목한다. 잡스가 디자인과 제품에서 선택과 집중을 강조하는 동안 쿡은 이전까지 ‘개판’이었던 공급망 관리에서 실력을 발휘했다. 쿡은 애플 합류 이후 7개월 만에 재고를 30일치에서 6일치로 줄였고 세계 최초로 아웃소싱을 본격화한 공급망 관리로 애플을 ‘흑자 전환’의 길로 이끌었다. 지금 애플의 성공이 쿡에게 따른 ‘천운’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쿡의 애플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애플의 임직원들만큼은 쿡을 완벽하게 확신하고 있다”고 말한다. 비판에서도 성공을 이어가는 쿡의 경영철학이 궁금한 이에게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