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갈아보자 vs 갈아봤자' 선거사…'4·15 표심' 여기서 읽는다

일민미술관 '새일꾼 1948∼2020' 전
선관위 협업 73년 대한민국 선거사 총망라
'1948 5·10선거'부터 '2020 4·15총선'까지
포스터·선거물 등 소장사료 400여점 축으로
작가 21개팀 선거문화 재해석 영상·설치 등
  • 등록 2020-04-06 오전 12:20:00

    수정 2020-04-06 오전 2:29:11

1956년 ‘제3·4대 정·부통령선거’ 때 나붙었던 구호 ‘가러봤자(갈아봤자) 더못산다’. 집권당인 자유당에서 출마한 이승만·이기붕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민주당의 신익희·장면 후보가 내세운 구호 ‘못살겠다 갈아보자’를 받아친 맞불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못살겠다 갈아보자’ vs ‘가러봤자 더못산다’

1956년 5월 15일 제3·4대 정·부통령선거. 대한민국 선거사에 ‘영롱하게’ 남을 구호가 이때 등장한다. 민주당 후보로 나선 신익희·장면이 내세운 ‘못살겠다 갈아보자’다. 자유당의 이승만·이기붕 후보의 맞불은 이랬더랬다. ‘가러봤자(갈아봤자) 더못산다’. 민심은 어디에 솔깃했을까. 결론은 애매하게 났다. 집권당에 치열하게 덤볐던 신익희 후보가 선거를 열흘 앞두고 유세 중 급서하면서 이승만이 ‘어거지로’ 3대 대통령에 당선되는 걸로. 반면 4대 부통령 자리는 이기붕을 누른 장면에게로 돌아갔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자유당의 패배라 한다. 이승만의 득표율(52%)이 4년 전보다 22%나 떨어졌던 터. 이미 민심은 이승만을 떠나고 있었던 거다.

1948년 ‘5·10 제헌국회의원선거’에 나선 이승만 후보 선전물. 해방 후 대한민국 제헌국회를 구성하기 위해 실시한 첫 선거에 이승만은 동대문구갑 선거구에 출마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못살겠다 갈아보자’가 대폭발한 건 4년 뒤였다. 1960년 3월 15일 제4·5대 정·부통령선거. 역사상 최악의 ‘부정선거’가 자행됐던 때다. 이승만 자유당 후보와 맞붙은 조병옥 민주당 후보가 신병치료차 미국에 건너간 틈을 타 5월 예정 선거를 두 달 앞당기면서 서막은 올랐다. 서둘러 귀국하던 조병옥 후보가 또 급서하면서 단일후보 이승만은 ‘그냥’ 4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하지 못했다. 끝내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앉히려는 온갖 부정행위가 들끓었던 것. 이는 결국 올해 60주년을 맞는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선거는 역사다. 대한민국의 선거는 특히 그랬다. 소소하게는 한 사람의 인생을 뒤바꿨고, 거대하게는 나라 전체의 운명을 뒤집었다. 그 절절한 드라마, 그 광대한 흐름을 압축해 내보인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민미술관이 만만치 않은 그 시도를 해봤다. 미술관에 선거판을 들인 ‘새일꾼 1948∼2020: 여러분의 대표를 뽑아 국회로 보내시오’ 전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제작한 다양한 선거홍보포스터. ‘공명선거’ ‘바른투표’ ‘민주사회’ ‘나라운명’ ‘주권행사’ ‘기권없이’ 등이 단골 키워드로 들어가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1948년 5·10 제헌국회의원선거’부터 ‘2020년 4·15 제21대 국회의원선거’까지. 장장 73년간 이어진 ‘대한민국 선거사’가 소재면서 주제다. 골격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기록보존연구소의 협업을 받은 400여점의 선거사료로 세웠다. 사실 이게 전부라면 싱거울 뻔한 자리였을 터. 분위기를 띄운 건 천경우·이미정·안규철·최하늘·놀공·일상의실천·정윤선 등 개인·단체 21개 팀 작가군이다. ‘애국자가 누구냐’를 찾고, ‘한 표 얻으려 팔도강산’을 헤매며, ‘지금 대단히 OOO한 투표가 진행’되는 현장을 급습해, ‘선거 24시’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본 영상·설치·게임·음악작품 등을 세우고 매달고 돌린다.

△‘경제vs민주’…선거홍보·벽보로 되짚은 73년

‘투표는 애국민의 의무, 기권은 국민의 수치’(1948·5·10선거). 대한민국 첫 선거는 ‘의무와 수치’로 운을 뗐다. 이제는 사라진 중앙청을 향해 두건을 두르고 쪽진 머리를 한 군중이 투표용지를 들고 달려가는 그림에는 ‘총선거로 독립문은 열린다’는 문구까지 넣어 중앙정부 수립을 향한 염원을 담았더랬다. 이 포스터를 신호로 전시는 73년 선거역사의 씨줄과 날줄을 촘촘히 짜놓는다.

1948년 ‘5·10 제헌국회의원선거’ 공식 포스터다. 이제는 사라진 중앙청을 향해 투표용지를 들고 달려가는 군중을 그린 그림에 ‘총선거로 독립문은 열린다’는 문구까지 넣어 중앙정부 수립을 향한 염원을 담았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사연 많은 선거벽보물에 역시 ‘구경거리’가 많다. 후보자 얼굴·이름을 대문짝만하게 박은 선거벽보를 전시장 벽면 가득 도배한 ‘1960∼1980년대 7∼12대 국회의원선거후보자 선거벽보’ 80점으로 정점을 찍는데. 굳이 이 시기여야 한 이유가 있단다. ‘경제개발 vs 민주화’의 극적인 대립. 대한민국 선거에서 이만큼 맹렬한 다툼을 만든 어젠다가 없었다는 거다. ‘번영과 통일 위해 공화당을 밀어주자’(1973·9대)와 ‘숨통 막혀 못살겠다 강압정치 물리치자’(1985·12대)의 물고 물리는 싸움이랄까.

1967년부터 1985년까지 치렀던 ‘제7∼12대 국회의원선거후보자 선거벽보’. 대한민국 선거사에서 ‘경제개발 vs 민주화’란의 어젠다가 맹렬히 대립했던 때다. 80점을 선별해 전시장 벽면에 그대로 옮겨붙였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부정선거의 기억’도 간과할 수 없다. 일러스트를 곁들인 사진·증언기록 한 토막을 보자. “1958년 5월 20일 개표시간에 집에서 자고 있는데 참모가 깨우며 큰일났다는 거야. 개표장으로 뛰어가 보니 희한한 광경이 벌어지지 않았겠어. 개표 참관인은 모두 코를 골며 자고 있고 뒷마당에서는 투표용지가 불타고 있고.” 제헌의원과 5·6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정래(1899∼1989)가 폭로한 ‘진실’은 이랬다. 여당에서 수면제 넣은 닭죽을 야식으로 제공해 참관인들을 작정하고 재웠던 거라고. 4대 국회의원선거의 ‘웃픈’ 기억이란다.

결국 ‘부정트라우마’는 선거 때마다 작용한 듯하다. 절정은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였다. 당시 구로구을에서 이송하던 우편투표함을 부정투표함이라 여겼던 시민들이 막아서면서 개표를 못한 사건. 전시는 바로 그 ‘우편투표함’을 한쪽에 옮겨다 놨다. 누군가 올라타 뚜껑이 찌그러진 채 칠까지 다 벗겨진 연두색 ‘역사’를.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 때 사용했던 ‘구로구을 투표함’. 당시 서울 구로구을에서 이송하던 우편투표함을 부정투표함이라 여겼던 시민들이 막아서면서 개표를 못한 사건의 바로 그 투포함이다. 이후 2016년까지 이 함은 열리지 못했다. 위로 당시 시민들이 올라탄 채 투표함을 ‘지키던’ 자료사진, 투표함에서 절단한 자물쇠가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64년 묵은 ‘못살겠다 갈아보자’를 갈아야 할 때

대통령선거만 19번. 중복을 포함해 118명에 달하는 후보들의 ‘과격하고 달콤했던 구호’만 추려도 맥락은 잡힌다. 64년 묵은 ‘못살겠다 갈아보자’(1956·신익희)는 신호탄에 불과했다. ‘군정으로 병든 나라 민정으로 바로잡자’(1963·윤보선), ‘여러분의 명랑한 생활과 편리한 살림을 위해 황소처럼 힘차게 일하겠읍니다’(1967·박정희), ‘논도 갈고 밭도 갈고 대통령도 갈아보자’(1971·김대중), ‘이제는 안정입니다’(1987·노태우), ‘경제대통령 통일대통령’(1992·정주영) 등등. 작가 ‘일상의실천’ 팀이 여기에 착안했다. 선거벽보에 박힌, 400여개의 선언 속 단어를 수집한 뒤 레터프레스로 집자해 인쇄할 수 있게 한 ‘이상국가: 유토피아’(2020)다. ‘국민’ ‘뿌리뽑자’ ‘깨끗한’ ‘가자!’ ‘약속’ 등. 눈치챘겠지만 ‘이 단어들로 찾아갈 수 있는 나라는 (아직) 없다’가 테마일 터.

작가 일상의실천 팀이 제작한 설치작품 ‘이상국가: 유토피아’(2020). 역대 대통령선거에서 뽑아낸 구호·공약 중 400여개 단어를 수집, 벽면에 나열하고 앞에는 레터프레스기를 설치했다. 단어와 문구를 뽑아 관람객이 직접 벽보를 제작할 수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일상의실천 팀이 문자로 그 공허한 세상을 보였다면 작가 안규철은 색으로 드러냈다. 역대 대통령선거 벽보에서 얼굴·구호 등을 다 지우고 색만 남겨 ‘그림’으로 바꾼 작업이다. 어찌됐을까. 요란한 소리가 빠진 벽보는 변별력도 없고 특색도 없는 ‘단색의 추상화’로 남더란 거다. 장밋빛 현혹이 빠진 밍밍한 모노크롬 ‘69개의 약속’(2020)으로.

씁쓸한 선거역사가 묵직하지만, 튀는 아이디어를 입힌 ‘선거예술’을 골라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정윤선이 과거 ‘막걸리선거’ ‘체육관선거’를 설치작품으로 꾸민 ‘광화문체육관: 부정의 추억’(2020), 미혼모·트랜스젠더·외국인노동자가 국회로 가는 꿈을 꾼 최하늘의 ‘한국몽’(2020) 등. 작가 OOO(본명 정세원)이 그린 삽화에 작가 조은하가 영상을 입혀 꼬집은 ‘애국자가 누구냐’(2020)는 내내 숙제처럼 떠돈다. ‘내가 바로 애국자’ ‘나야말로 애국자’ ‘내가 진짜 애국자’ ‘사실 애국자는 나’로 나눈 4컷 만화. 아흐레 뒤로 다가온 ‘4·15총선’의 다채로운 후보들을 이 ‘4지’에 끼워 넣을 타임이 아닌가. 전시는 6월 21일까지.

작가 최하늘의 설치작품 ‘한국몽’ 중 부분(2020). 미혼모·트랜스젠더·외국인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가 국회로 가는 그날을 꿈꾸며 제작한 조각상을 세웠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4컷 만화 영상 ‘애국자가 누구냐’(2020). 작가 OOO(본명 정세원)이 그린 삽화에 작가 조은하가 영상을 입혔다. 가벼운 유머처럼 보이지만 대단히 중요한 문제를 다뤘다. 선거에 나온 후보를 4어디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갈렸고 또 갈릴 테니까(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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