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대선 TV토론이 판세 바꿀 수 있을까

  • 등록 2022-01-24 오전 6:15:00

    수정 2022-01-24 오전 6:15:00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역사상 최초의 대선 TV토론은 1960년에 있었던 닉슨 대 케네디의 토론이었다. 당시 젊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줬던 케네디가, 상대적으로 나이 먹고 초조한 느낌을 줬던 닉슨을 압도했었다는 평가가 많았고, 그래서 케네디가 당선될 수 있었다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이는 사실에 근거한 분석은 아니다. 역사상 최초의 대선 후보 TV토론 직후에 있었던 토론을 평가하는 여론조사를 보면, 케네디가 잘했다는 평가는 30%, 닉슨이 잘했다는 평가는 29%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를 보면, 토론에서 케네디가 압도적으로 우위였다는 주장은 무리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케네디가 당선되기는 했지만, 이를 두고 대선 승리와 토론의 연계성을 주장하기에는 근거가 희박하다.

TV토론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던 후보가 낙선한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가 2016년 힐러리 클린턴 대 도날드 트럼프의 TV토론이다. 두 사람의 첫 번째 TV토론은 8440만 명이 시청함으로써 미국의 역대 대선 TV토론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었다. 이 토론의 승자는 힐러리 클린턴이었다. 토론 직후 실시된 토론 평가 여론조사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잘했다는 응답자는 62%에 달했고, 트럼프가 잘했다는 응답자는 27%에 불과했다. 2차와 3차 토론에서도 힐러리는 트럼프를 압도했다. 만일 TV토론이 대선 당락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면, 당연히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됐어야 했다. 하지만 결과는 트럼프의 승리였다.

만일 어떤 요소가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 때는, 대부분 그 요소에 의해 결과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해당 요소가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선후보 TV토론이 대선에 중대한 영향력을 미친다고 주장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은 미국에만 존재할까?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17대 대선의 경우, 첫 TV토론이 있었던 2007년 12월 6일 직후 토론 평가에 대한 여론조사는 없었지만, 중앙일보 여론조사팀이 실시한 12월 6일과 7일의 대선후보 지지율 조사를 비교해 보면, 12월 6일 조사에 비해 7일 조사에서, 이명박 후보는 2.3%포인트 지지율이 증가한 반면, 이회창 후보는 0.8%포인트 감소했고, 정동영 후보는 1.7%포인트 지지율이 증가했다. 오차 범위를 감안하면, 지지율 변동이 아주 미미했던 것이다. 18대 대선도 마찬가지다. 당시 첫 대선후보 TV토론 직전인 2012년 12월 3일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박근혜 후보는 46%, 문재인 후보는 43%의 지지율을 각각 기록했는데, 토론 직후인 12월 4일과 5일의 여론조사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46%의 지지율을, 문재인 후보가 41%의 지지율을 각각 기록했다. 역시 오차범위 내의 근소한 변동만이 나타났을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TV토론이 대선에 영향을 주는 정도는 미미하다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대선의 여론조사를 보면, TV토론을 보고 난 이후 지지 후보를 결정하겠다는 응답이 많다는 점을 들어, 토론의 영향력이 지대할 것이라는 주장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여론조사 문항 중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문항의 경우에는, 응답자들이 ‘정답’을 맞추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선거에서 투표할 것인가 하는 문항에 대해서, 응답자 중 상당수는 ‘당연히’ 투표를 하겠다고 응답한다. 그것이 ‘민주 시민’으로서의 ‘정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투표 의향이 있다고 응답하는 비율은 매번 80%를 훌쩍 넘지만, 실제 투표율은 이에 한참 못 미친다. ‘토론’이나 ‘정책’을 보고 투표하겠다는 응답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답하는 것이 민주 시민으로서의 당연한 사고(思考)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종류의 설문에 대한 여론조사는 유권자들의 실제 생각보다는 ‘당위론’을 보여주는 성향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대선후보 양자 토론은 설 직전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아마도 토론을 통해 설 민심을 잡으려는 계산이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토론의 영향력이 그다지 크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전략이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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