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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귀국한 뒤 19일까지 약 3주간 인사청문회 준비 등에 몰입했던 그가 체험한 한은은 생각했던 곳보다 더 경직되고 보수적인 곳이었다. 이 총재는 한은을 ‘대한민국 최고의 싱크탱크’로 만들기 위해 연구조사에 대한 성과 평가, 내부 경쟁, 외부 소통 등 크게 3가지 키워드를 강조했다. 한은은 조사·공보 업무 등을 강화하기 위한 조직개편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창용 총재 책상 앞에는 전임인 이주열 총재가 2020년부터 맥킨지, 머서코리아 등 컨설팅 업체 두 곳을 거쳐 만든 조직진단 및 조직개편안이 놓여 있다. 이창용 총재는 “1~2개월 사이에 내부 사람과 얘기해서 (직원들도) 공감할 수 있는 개선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머서코리아의 조직개편안에는 한은의 조사연구를 강화하고 조사역부터 임원까지 5단계의 직급을 3단계로 압축하고 역할에 따라 직무급제를 도입, 수시·다면 평가를 강화하는 방안이 담겨 있다. 이 총재는 머서코리아의 조직개편안을 기반으로 하되 자신만의 색깔을 입힐 가능성이 높다.
우선적으로 ‘내 연구 성과를 바깥으로 홍보하라’가 한은 직원들에게 주어진 KPI(핵심성과 지표)가 될 전망이다. 한은은 이를 위해 조사·공보 업무를 강화하는 내용의 조직개편안을 마련하고 있다.
예컨대 한은은 거리두기를 완화할 때 사적 모임 인원을 확대할 것이냐, 영업시간을 연장할 것이냐를 두고 영업시간 연장이 더 소상공인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연구해놓고도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추후 관련 연구가 외부로 공개된 이후에야 보건당국이 이를 토대로 거리두기를 완화할 때 영업시간 연장을 우선 고려했다는 후문이다. 이런 연구 성과가 더 빨리 공개됐다면 보건당국의 의사 결정에도 도움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본인이 한 역할에 대해 크레딧(credit, 성과 인정)이 명확하게 주워져서 직급과 관계 없이 자기가 한 리서치(연구)에 대해 평가를 받고 크레딧을 받음으로써 더 열심히 하는 문화를 만들겠다”며 “젊은 직원을 중심으로 본인이 한 리서치나 연구가 외부로 나가는 데 너무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문제를 우선 해결해 한은 직원으로서 자기가 한 업적에 자부심을 느끼게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인사에 대한 관심도 높다. 외부 출신 수장들이 조직 장악을 위해 흔히 하는 것이 ‘발탁 인사’다. 이 총재 체제에서도 발탁 인사가 있을지 주목된다. 다만 이 총재는 청문회에서 “내부적으로도 경쟁이 있어야 할 것 같다”며 인사에 있어 내부 경쟁 체제를 도입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 총재가 8년간 국제통화기금(IMF)에 있었던 만큼 IMF식 경쟁 체제 도입이 예상된다. IMF에서는 국장급 인사를 선임할 때 5명 정도 후보군을 놓고 이들을 상대로 각각 면접을 본 후 면접우수자를 발탁하는 데 이 총재가 이런 방식을 한은에 접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이 총재가 개혁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임기 4년 내에 성과를 내기 어렵다”며 “일단 개혁을 한다면 욕을 먹게 돼 있고 개혁에 따른 성과는 그 다음 총재가 보게 돼 있어 개혁도 천천히 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