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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어리석은 대화다. 몇 시간 더, 얼마나 더 일찍 일어나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순간적인 집중력, 암기의 효율성, 이해의 몰입. 모든 과정은 양으로 버티기 보다 질로 승부 했을 때 가능성이 높았다. 절대적인 양으로 이길 수 있다면, 이 세상 승부는 너무 싱거워진다.
△‘먼저 편성’, 효과 있을까
일요일 예능프로그램의 편성학개론이 대략 이런 수준처럼 보인다. “저 방송사 이번 주엔 몇 시부터 방송해?” “5분 앞당긴다고? 우린 10분 앞당겨 그럼” 등의 사고가 효율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일요일 예능프로그램을 즐기려는 시청자 중 오후 4시부터 TV 앞에 앉아 내가 원하는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채널에 맞춰 기다리는 이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그렇지 않을 터. 보다가 리모컨을 돌릴 수도 있는 일이고 5분, 10분 늦게 시청을 시작하는 일도 태반일 터다.
그렇다면 5분, 10분 앞당겨 시청자들을 선점하겠다는 방송 3사의 논리는 ‘본방 사수’를 기다리고 있는 시청자들이 안기는 방송 초반 ‘순간 시청률 상승’을 노리겠다는 뜻일까. 그 잠깐의 수치로 평균시청률 전체를 올리겠다는 전략이 얼마나 통할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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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다른 경쟁 프로그램이 끝났을 때, 여전히 방송 중인 ‘늘리기 편성’이다. 한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좌우하는 가장 큰 승부처는 ‘머리’보다 ‘꼬리’에 있다는 것. 지상파 3사 드라마국에서 편성을 두고 전체적인 시간을 72분으로 정해두는 룰에 합의한 것도 이 같은 논리 때문이다.
지난주 MBC ‘일밤’은 ‘아빠 어디가’를 6분여 먼저 시작한 것에 질타가 쏟아졌지만 사실상 ‘진짜 사나이’를 늘려 방송해 전체적인 시간을 확장시켜 시청률 상승에 효과를 봤다. 시청률 1위를 뺏어오진 못 했지만 한 자릿수 시청률에서 두자릿수로 올라서는 효과가 나타난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웬만한 영화보다 긴 러닝타임으로 예능프로그램을 지켜봐야 하는 시청자들의 피로감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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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민망한 것은 시간과 시청률, 재미와 충성도 등의 인과 관계가 모두 하나로 통한다는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시청자들은 알고 있다는 부분이다. MBC와 SBS가 한 목소리로 올초 KBS의 변칙편성을 주장하며 ‘해피선데이’의 시청률 1위 결과를 깎아내리고 있지만 콘텐츠 자체경쟁력이 높아진 점이 큰 몫을 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꾸준히 새로운 게스트를 섭외하고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 집중하며 매회 다른 감동을 전하려 노력한 점이 시청자에게 통하기도 했다. ‘1박2일’ 또한 시즌2을 맞은 후 부진을 겪으며 시청자들에게 갖은 지적을 들어온 프로그램이다. 제작진의 센스,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진정성이 빛을 낸 결과 시청률 1위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는 분석이 보다 설득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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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우울한 편성학개론을 더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광고’다. 브라질 월드컵 중계로 인한 수백억의 적자 때문에 광고는 더욱 치열해지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고민을 안 할 수 없는 입장이 아닌 만큼 일요일 예능프로그램을 연출하고, 편집하는 제작진 입장에서도 겪는 고통이 심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광고 수익을 위해 편성 시간을 앞당기고 늘리는 등 출혈을 감행하고 있는 것은 ‘지금이 아니면 흐름을 뺏긴다’는 절박함 때문이기도 하다. “‘아빠 어디가’가 요즘 재미있어진 것 같더라”, “‘룸메이트’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등의 입소문이 나고 긍정적인 분위기로 변화를 이끌어오는 그 ‘분위기의 흐름’을 가져와야 하기 때문에 시청자 선점에 열을 올린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관계자는 “요즘 주중 예능프로그램의 광고 시장도 침체 돼 있고 드라마 시장도 예전 같지 못하다. 때문에 방송 3사가 승부를 걸 광고 시장 파이가 주말 예능프로그램에 쏠려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놓치면 1년 뒤에도 흐름을 뺏길 수 있다는 절박함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경쟁이 더 치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 예능국 PD는 “수익과 콘텐츠, 시청률과 시청자 만족감 등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있어 충족돼야 하는 가치들이 다 같은 지점을 바라볼 수 없다. 콘텐츠의 질적 향상이 우선돼야 하지만 그 여유가 부족한 현실이 힘든 것은 다들 마찬가지다. 일단은 주어진 환경 내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 뿐”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