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호국의 달, 순직 소방관 선배들을 떠올리며

  • 등록 2022-06-27 오전 6:30:00

    수정 2022-06-27 오전 6:30:00

[이흥교 소방청장] 1950년8월10일. 한국전쟁 포항지구 전투 당시 해군 경비부 포항기지 사령부에 급수지원 출동 중이던 27세 소방원은 북한군에 의해 숨을 거뒀다. 차갑게 식어가던 그는 마을이장에게 발견돼 인근 묘지에 가매장 됐다. 20년 후 묘소 일대 부지개발 계획에 따라 유해는 화장됐고 산골(散骨) 조치했다. 고(故) 손진명 소방원. 비로소 70여 년 만에 그의 이름 석 자를 국립현충원에 새기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손 소방원은 전사자로서의 순직 공로를 인정받아 1961년 국가유공자로 지정됐고 2002년 소방충혼탑에 위패를 봉안했다. 고인의 배우자는 그동안 남편이 국가유공자였음을 확인하는 유공자 명패에 의지해 그리움을 달래왔다. 집 앞의 문턱을 지키던 명패의 이름은 이제 모두의 기억으로 번지고 가슴에 새겨지기 위한 채비를 시작했다.

남편의 이름이 현충원 묘비에 새겨지고 이를 찾는 이들이 먼저 간 선배의 숭고했던 헌신과 희생을 기억하겠다고 하니 고인의 배우자는 왠지 모르게 벅차고 뭉클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며 연신 눈물을 훔친다. 수십 년간 마음에 담아 온 그 그리움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지금까지 확인된 전사 소방공무원과 의용소방대원은 총 58위. 이 가운데 56위는 국립현충원에 모셨고 1위는 현재 추진 중인 손 소방원이다. 그리고 1위는 고(故) 김사림 소방사로 개인 선영에 모셔졌다. 국립현충원에 모신 56위 가운데 한 분이 고(故) 김영근 소방사다. 6·25 전쟁 당시 춘천소방서 소속 소방관으로 군·경 합동작전 중 적탄의 포격에 전사한 김 소방사는 2006년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김 소방사의 동생이 국립묘지 안장을 원하는 탄원서를 냈고 강원도 춘천 우두산 묘비의 주인이 6·25 때 전사한 김 소방사임이 확인됐다. 이후 대전현충원 등과 협의를 거쳐 국립묘지 안장을 확정했다.

그날 이후 우리가 지나친 선배들의 넋이 또 있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 시작된 ‘선배 소방관 묘역찾기’은 전국으로 확산했다. 우리는 유가족을 수소문하며 혹여 예우에 부족한 점은 없는지, 지원사업 중 개선해야 할 부분은 어떤 부분인지 묻고 또 물으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그 해답을 찾아가고 있다. 또 먼저 우리 곁을 떠난 순직 소방공무원 선배, 동료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자 ‘순직 소방관 추모 백서’ 제작도 마무리 단계에 있다.

한 분 한 분이 살아낸 고귀한 인생의 궤적과 소방공무원으로서의 남다른 삶을 조명하고 기리고자 한다. 순직 소방공무원에 대한 예우가 점차 체계화하는 가운데 순직 소방공무원의 국립묘지 안장 대상자를 확대하는 ‘국립묘지법 개정안’도 발의돼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모자람 없는 예우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도 우리가 해야 할 도리이며 유가족의 슬픔을 조금이나마 덜어 드릴 길이라 생각한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선배 소방관들이 걸어온 길을 상기해 본다. 소방의 정체성도, 체제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던 오래전 선배들의 희생도 우리가 기억하고 이어가야 할 소명이다. 그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소방이 가능하다. 6만여 명의 후배들은 다양한 재난현장에서 책임을 다하며 선배들의 뜻을 좇고 있다. 절대 부끄럽지 않은 후배가 되겠다는 각오를 다져본다. ‘고(故) 손진명’. 70년 만에 다시 새기는 그 이름 석 자가 유난히 벅차고 시린 6월이다.

이흥교 소방청장(사진=소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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