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의 반란]'강남스타일'과 '젠틀맨', 흥행을 가른 '이것'

'싼 티'와 '싼 것'의 차이..B급의 딜레마
  • 등록 2013-05-08 오전 11:32:55

    수정 2013-05-09 오전 10:46:06

대한민국에 B급 문화 바람을 몰고온 가수 싸이.(사진=이데일리 DB)
[이데일리 스타in 최은영 기자] 촌스러운, 유치한, 질이 낮은, 저렴한, 불량한, 야한. ‘B급 정서’를 수식하는 형용구다. 주류에 반하는 비주류 문화, 고급문화의 반대개념인 저급문화, 대중문화가 아닌 소수문화, 상위문화 아래 하위문화, 시류에 편승하지 않는 저항문화 등이 B급 정서를 대변한다.

‘B급 정서’의 대표주자는 역시 싸이다. 싸이도 자신을 ‘B급 가수’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의 기준에서 같은 B급이라고 내놓은 노래 두 곡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말춤’을 추며 “갈 때까지 가보자!” 목놓아 외칠 땐(‘강남스타일’) 보이지 않던 안티가 생겨났다. 논란에 불을 지핀 건 다분히 선정적인 뮤직비디오였다. 인간말종을 뜻하는 영어 욕설 ‘마더 퍼커(mother fucker)’를 연상케 하는 ‘젠틀맨’의 노랫말(마더 파더 젠틀맨)과 뮤직비디오에 특별 출연한 가인이 포장마차에서 하얀 소스를 듬뿍 바른 어묵 바를 입에 문 장면 등이 문제가 됐다.

한쪽에서는 유머러스하다고 하고, 또 한쪽에서는 저급하다고 비난한다. 정희준 동아대 교수는 “선정성이 포르노그라피의 수준”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시장의 반응 역시 갈렸다. 초반 뜨겁게 반응하던 빌보드 순위, 음원 판매량, 유튜브 조회 수 모두 내림세로 돌아섰다.

포장지만 허름한 것, 즉 ‘싼 티’ 나는 콘텐츠는 수긍해도 알맹이까지 보잘것없는, ‘싸구려 콘텐츠’은 외면받기 십상이다. 이것이 바로 B급 정서의 딜레마다.

가수 싸이의 글로벌 히트곡 ‘강남스타일’(사진 위)과 ‘젠틀맨’ 뮤직비디오.
B급 정서가 한국 대중문화에 어느 순간 갑자기 파고든 것은 아니다. 뒤로는 B급 정서를 즐기면서도 겉으로는 B급을 폄하하고 스스로를 고급스러운 듯 포장하려는 게 대중의 심리다. 케이블채널, 종합편성채널 등 방송 환경의 변화와 인터넷 등의 활성화로 이제는 드러내놓고 B급 정서를 즐기게 됐다.

2000년대 들어 케이블TV PP(프로그램 공급자)들이 자체제작을 시작하면서 본격화됐다. 지상파보다 적은 예산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데다 심의규정도 완화된 수준에서 적용돼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B급 정서를 활용했다. 정형돈과 데프콘의 형돈이와 대준이 등 ‘개가수(개그맨+가수)’, 성적 코드가 녹아든 유머가 가득찬 케이블채널 ‘SNL코리아’의 인기도 B급 정서에 대한 대중의 호응도를 대변한다. 붕어빵 모양의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하다 얼어붙어 아이스크림이 됐다는 ‘붕어빵 싸만코’ 외에 ‘남자라면’, ‘월드오브탱크’ 등 웃기다 못해 황당한 설정으로 ‘약 빨고 만든’ CF로 불리는 콘텐츠도 관심을 받고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SNL코리아’는 지나칠 정도로 노골적인 면이 있지만 현재 40대 전후 세대는 성장기에 미군방송 AFKN에서 오리지널 ‘SNL’을 시청한 사람들이 많아 거부감이 덜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B급 정서의 힘은 허술해 보이는 이면에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솔직하다 못해 때론 적나라하지만 그 속에 풍자와 해학이 녹아있는 고급 속살에서 나온다. 이 같은 방식으로 근엄하지만 허세가 가득한 고급, 즉 주류 문화를 조롱해왔다. ‘강남스타일’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의 모습에 전 세계인이 공감하고 매료돼서다.

한국에선 과거 ‘괴짜 예술가’로 불렸으나 지금은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로 추앙받는 백남준, 지난해 ‘피에타’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 등이 시대를 앞서 선구자적인 실험을 한 대표적 B급 정서의 아티스트로 평가 받는다. 김기덕 감독은 ‘사마리아’ ‘빈집’ ‘아리랑’ 등의 영화로 세계 3대 영화제(베를린·베니스·칸)를 석권한 데 이어 자신의 18번째 작품인 ‘피에타’로 한국 감독 최초로 최고상까지 거머쥐었다.

문제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 콘텐츠가 대부분 B급 정서를 내세우고 있다는 데 있다. 한국 문화의 대부분이 ‘자극적’, ‘선정적’, ‘저예산’ 등으로 오인될 소지가 크다. ‘피에타’의 주연배우 조민수는 “김기덕 감독이 지금과 같은 제작방식(저예산)을 언제까지 고집할 것인가 하는 부분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고 진심 어린 마음을 내비쳤다. 정덕현 문화 평론가는 “다양한 문화 정서가 공존하는 상황에서 외국인들도 B급 정서를 많은 것 중 하나로 생각할 것”이라며 “B급 정서는 풍자와 해학, 그리고 크리에이티브의 힘이 더해질 때 고급 정서를 넘어선다”고 말했다.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영화 ‘피에타’로 황금사자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사진=이데일리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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