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 186곳 더 지으면 '박물관·미술관이 진흥'?

  • 등록 2019-07-08 오전 12:45:00

    수정 2019-07-08 오전 11:51:44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한 가지 묻고 시작하자. 대한민국에 박물관과 미술관이 몇 곳인지 아는 분? 지난해 통계에 따르면 1124군데다. 박물관이 873곳, 미술관이 251곳. 국·공립은 물론 사립·대학까지 모두 센 것이다. 서울·경기지역에 압도적으로 몰려 있다. 이 고질적인 문제는 비단 박물관·미술관의 사정만은 아니니 일단 넘어가자. 그나마 박물관의 경우는 좀 나은데. 전국에 퍼져 있는 문화재·유물 등을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기왕에 질문을 했으니 하나만 더. 지난해 박물관·미술관에 한 번이라도 다녀온 분? 100명 중 16.5명. 이용률이 16.5%란다. 그렇게들 못 가본 이유라면? 모르긴 몰라도 ‘먹고사는 일이 바빠’ ‘딱히 발길 끄는 전시가 없어서’ 등등이 나올 거다. 그중에 이것도 있으려나. “박물관·미술관이 부족해 못 가본 겁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미술·전시부문에 중장기계획이란 것을 또 내놨다. 지난해 봄 ‘미술진흥 중장기계획(2018∼2022)’에 이은 ‘박물관·미술관 진흥 중장기계획(2019∼2023)’이란 거다. 2017년 12월부터 정책세미나를 하고, 연구추진을 하고, 정책토론회를 하고, 전문가·관계자 자문회의를 하고, 그 장황한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다. 어떻게? 요즘 유행하는 가상·증강현실을 이용한 ‘스마트 박물관·미술관’을 구축하고, 전시·프로그램을 실시간 확인하는 지역문화통합시스템도 만들고. 특히 눈에 띄는 건 박물관·미술관을 186곳 더 짓겠다는 내용이다.

186곳이라. 뭐 좋다. 그런데 그 근거라는 게 계속 신경을 긁는다. 한번 들어나 보자. 지난 5년간(2013∼2018) 박물관·미술관이 23% 증가했더란다. 계속 늘어나는 추세는 분명한데. 1곳당 이용인구수를 봤더니 4만 5000명. 좀 많다. OECD 주요국가 수준에 못 미치니. 그래서 2023년까지 좀 따라잡아야겠다. 3만 9000명 정도가 좋겠다. 역산을 해보니 박물관은 1013곳, 미술관은 297곳이 필요하겠다. 부족한 186곳을 더 짓자. 그러면 이용률도 16.5%에서 30%로 두 배쯤 늘어날 거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은 거다. 달랑 숫자놀음으로 ‘진흥’을 재는 행태도 속 터지고, OECD가 왜 여기서 튀어나와야 하며, 현재 간판을 달고 있는 1124곳의 박물관·미술관이 어떤 상황인지 알고서들 하는 얘기인가. 몇 군데가 제대로 가고 있으며 몇 군데가 개점휴업 상태인지, 양쪽을 가르는 원인은 뭔지를 파악하는 게 출발점일 텐데. 그저 지어놓기만 하면 관람객이 저절로 몰려드나. 문체부가 비전이란 타이틀로 뽑은 대로 ‘문화로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박물관·미술관’이 가능하겠는가 말이다. 솔직히 가장 측정하기 어려운 것이 ‘문화’고, ‘삶’이며, ‘풍요롭게’다. 그럴듯하게 숫자로 포장한 뒤 5년이 지나 “이봐라. 우린 했다” 하면 상황이 종료되나.

진흥계획에는 186곳이나 되는 박물관·미술관을 정작 어떤 콘텐츠로 채울지, 어찌 끌고 나갈지에 대한 내용은 아예 없다. 게다가 고려대상은 국·공립뿐이다. 통계에만 슬쩍 포함했던 사립·대학에는 이래라저래라 할 형편도 못된다. 만약 국·공립 수를 넘어서는 사립 박물관·미술관(국립 466, 사립 539)이 처한 경영난 등의 고충을 한 번이라도 들어봤다면 이런 결론은 더더욱 낼 수 없었을 거다. 왜? 그 답이 건물 짓는 게 아니라는 것이 단박에 드러나니. 그러니 세미나·연구·자문회의 등을 다 거쳤다는 진흥계획이란 게 그 어려움은 들으려고도 안 했거나, 듣고도 무시한 처사라고 볼밖에.

중장기계획에 들어선다는 건 이제부터 대놓고 돈을 쓰겠다는 얘기다. 명목뿐인 국민을 위해 진짜 국민의 돈을 쓴다? 뭔가 단단히 잘못 판단한 거 아닌가. “전담기관을 만들고, 운영·관리를 내실화하고, 전문인력을 늘린다”는 정부정책이라면 매번 비슷하게 걸리는 말 베끼기도 이제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나.

국민인 우리는 뙤약볕이든 빗속이든 한두 시간을 기다려도 찾을 곳은 찾는다.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이 봄·가을로 여는 전시를 보기 위해 섰던 긴 줄을 아직도 기억하지 않나. 현장과 따로 노는 그들만의 문화정책, 장난이라도 정말 너무 심한 장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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