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글로벌 공급망 조정, 지속될까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 등록 2021-09-17 오전 6:00:00

    수정 2021-09-17 오후 1:19:35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취임한 지 불과 한 달이 지난 2월 24일, 바이든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반도체, 대용량 배터리, 희토류, 의약품의 4가지 품목에 대한 공급망을 100일 내에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6월 8일에 공개된 최종보고서의 내용에 관해서는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서 대략적인 내용이 밝혀진 바, 한마디로 말해서 반도체를 제외한 세 가지 품목에 대해서는 특정국가나 지역 의존도가 커서 공급망 안정성이 낮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고서는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미국 내 생산과 연구개발(R&D) 역량 강화, 교육과 고용을 촉진하는 시장 개발, 핵심품목의 생산을 촉진하는 정부의 역할 강화, 국제통상규범 이행 촉진, 동맹과 협력 강화, 산업계와 함께 공급부족상태 해결 등 다양한 제안을 했다.

핵심 품목에 대한 공급망 조사는 두말할 것도 없이 공급망이 취약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의도적 행위에는 배경과 맥락이 있는바, 미국이 주도하고 유럽연합(EU)과 중국이 서로 다른 이유로 적극 화답하는 공급망 조정의 배경에는 지난 몇 년간 증폭되어 온 미중 갈등이 있다. 게다가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급작스런 한 국가의 공급망 붕괴가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눈으로 확인했다.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특히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지난 20년간 중국의 부상이 매우 빠르고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중국이 공정한 국제규범을 준수하지 않고 있다고 믿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과 글로벌경제 위기 대처에 힘을 쏟고 있는 사이 중국이 크게 성장해, 이제 미중이 대립하는 분야가 단순히 통상의 영역을 넘어서 첨단 기술, 나아가 민주주의와 가치의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다. 미국은 이 과정에서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하던 가치 사슬을 공급망 조정을 통해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저생산비와 효율성을 추구하던 글로벌 가치 사슬의 구축을 유보하고, 다소 비효율적이더라도 리쇼어링과 동맹을 포함하는 니어쇼어링으로 대응하는 공급망 조정이 정말 일어나고, 중장기적으로도 지속가능할 것인가. 이에 대한 필자의 판단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결국에는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국가간 갈등에 의한 공급망 조정은 과거에도 세계사에서 큰 영향을 미친 바 있다. 12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최전성기를 구가한 베네치아는 동방과 서유럽 간에 중계 무역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베네치아의 횡포에 지친 서유럽 국가들은 15세기 말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동방으로 가는 새로운 공급 방식을 개척했다. 이 경로가 훨씬 돈이 많이 들고 위험했지만 새로운 공급망은 기존 질서를 근본부터 흔들기에 충분했다.

또 다른 예로 남미가 원산지인 고무나무는 동남아로 이식돼 19세기 거대한 플랜테이션 산업으로 발전했고, 바타비야를 중심으로 한 동남아 식민지는 천연고무의 세계적 공급지로 부상했다. 20세기 들어와 전쟁으로 천연고무의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합성고무 제조기술이 급격히 발전했다. 이 과정에서 동남아 천연고무 생산지의 독점적 권력은 무너졌다.

효율적이지도 않은 공급망 재조정이 오래 갈 수 있을 것인가.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는 분명 비효율적이다. 그래도 베네치아의 횡포를 감안한다면 더 싸고 자유로운 대안임에는 틀림없다. 물론 베네치아도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 있지는 않아서 보다 효율적인 기존 공급망 정비와 공급가격 조정으로 맞섰다. 1571년 레판토해전은 오랫동안 지속돼 온 무슬림 오스만과 지중해 기독교 세력 간의 제해권 다툼에서 후자의 승리를 결정지었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지중해를 통과하는 기존 공급망의 효율적 변용을 가져왔다. 나중에는 수에즈에 운하도 만들어 매우 훌륭한 제3의 공급망이 가동된다.

최근 배터리 소재 제조 과정에서 코발트와 니켈의 함량이 더 적은 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편향적인 기술 발전의 결과이다. 과학과 기술은 비례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전략적 자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 주어진 공급망 환경에서 비용절감형 기술의 발전이 가속화된다. 인위적인 공급망 조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안정화될 것이다. 기나긴 변화의 여정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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