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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정철우 기자] 넥센 투수 고원준(20)은 올시즌 최고 히트 상품 중 하나다. 신인급 투수 중 가장 눈에 띄는 활약으로 단박에 팀의 중심 투수로 떠올랐다.
그러나 16일 목동 SK전서는 올시즌 가장 부진한 투구로 무너졌다. 5.1이닝 6피안타 4사사구 6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그 사이 고원준과 SK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고원준의 16일 투구 내용을 살펴보면 신인, 그리고 선발 투수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들여다 볼 수 있다.
▲선발 등판 일정의 난해함
김시진 넥센 감독은 16일 SK전을 앞두고 한가지 화두를 던졌다. 고원준이 4일 휴식 후 등판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김 감독은 "고원준이 그동안 대부분 5일 이상 휴식 후 등판했다. 4일 휴식 후 등판은 2번째다. 등판 간격 변화가 투구내용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제 힘이 좀 떨어질 때가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고원준은 7차례 선발 등판 중 4일 휴식 후 등판은 이날을 포함해 2번뿐이었다. 나머지 5번은 5일 이상 쉰 뒤 마운드에 올랐다.
4일은 통상 여겨지는 선발 투수 휴식일의 마지노선이다. 그동안 고원준은 하루 이상 시간이 더 주어지며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셈이다. 16일 경기는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패턴으로 마운드에 서야 했다.
반드시 오래 쉬는 것 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그 기간 동안 어떻게 준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김 감독은 "번사이드 같은 경우 4일 휴식 후 등판이 오히려 효과적인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결국 좋은 선발 투수가 되려면 등판 간격과 상관 없이 꾸준하게 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투수가 좋아하는 일정만 맞춰줄 순 없기 때문이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고원준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앞으로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상대의 분석
SK는 분석에 능한 팀이다. 좀처럼 같은 투수에게 연속으로 당하지 않는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7.1이닝 동안 1개의 안타를 때려내는데 그쳤던 고원준을 상대로 5.1이닝 동안 6개의 안타를 뽑아냈다.
특히 3회 집중 4안타로 3점을 만들어 낸 것이 결정적이었다.
승부수는 고원준의 빠른 계열 변화구였다. 고원준은 커브,슬라이더,포크볼,싱커 등 4가지 변화구를 던진다.
이 중 최고 장기는 최저 85km까지 나오는 슬로 커브다. 타자 입장에선 이 커브에 타이밍을 맞춰놓고 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직구와 60km까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SK는 이보다는 빠른 계열의 변화구에 초점을 맞췄다. 4회 뽑아낸 4개의 안타 중 3개가 슬라이더,싱커 등 직구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공을 공략해 만들어낸 것이었다. 3회까지 슬로커브에 손을 낸 것은 단 한번에 불과했다.
안타 구성은 직구 2개(홈런 1개 포함) 슬라이더,싱커 3개, 슬로 커브 1개 등으로 나타났다.
SK 나름의 고원준 공략법을 만들고 나름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고원준의 슬로 커브는 일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직구와 같은 폼에서 다양한 속도차이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타자를 속이기 딱 좋은 구종이다.
더 큰 장점은 제구가 좋다는 점이다. 스피드만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곳에 집어넣을 수 있는 컨트롤까지 갖췄다. 타자에겐 공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좀처럼 커브의 제구가 이뤄지지 않았다. 5회 1사까지 고원준이 던진 슬로 커브는 모두 23개. 이 중 스트라이크(타자 헛스윙 포함)는 10개에 불과했다.
그나마 6회 두명의 타자에게 연속 3개의 슬로커브가 스트라이크(이 중 1개는 2루타)존에 들어갔던 것이다. 5회까지는 7-13, 거의 두배 차이가 났다. 전체적은 스트라이크-볼 비율이 50-44였던 점을 감안하면 커브의 제구력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고원준의 슬로커브는 타자의 스윙을 유도해내거나 순간적으로 스트라이크 존에 떨어질 때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날 고원준의 커브 제구력은 이전과 달랐다. 반대로 가장 공략하기 어려운 구종에 대한 부담을 던 SK 타자들은 한결 편한 마음으로 공략이 가능했다.
김시진 넥센 감독은 고원준이 최고 주가를 올릴때에도 "언젠가 고비가 올 것"이라고 말해왔다.
이유는 이랬다. "어떤 투수도 1년 내내 좋을 수 없다. 관건은 좋지 않았을 때 어떻게 효과적으로 버텨내느냐에 달려 있다. 투구 패턴을 바꾼 다거나 타자에 대한 분석을 더 철저히 해야 이겨낼 수 있다. 고원준은 이제 그걸 몸으로 배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