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교북동에 위치한 48가구 규모의 동아아파트에는 커다란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다. 이 아파트는 돈의문뉴타운 사업으로 ‘경희궁 자이’가 들어선 후 일조권 침해에 시달린다며 지난해 말 이 현수막을 내걸었다. 동아아파트의 높이는 11층에 불과하지만 이 아파트 바로 옆 경희궁 자이는 19층 높이에 달한다. 따라서 동아아파트 저층의 경우 하루 종일 경희궁 자이의 그림자에 가려진다는 게 입주민들의 주장이다.
최근 서울 도심권 주택 재건축 사업으로 고층 아파트 준공이 잇따르면서 ‘일조권’ 분쟁도 덩달아 늘고 있다. 고층 아파트 인근 주민들은 햇볕을 쬘 수 없다며 고통을 토로하고 있다. 고층 재건축을 추진하는 조합원들 역시 일조권 민원 해결을 위한 부담금 증가에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일조권 따라 집값도 오르락 내리락
지난 2월 서울 송파구 가락동 동부센트레빌 아파트 54가구는 서울 고등법원에 가락시영아파트 재건축 단지(송파 헬리오시티)가 신축되면 일조권 침해가 발생한다며 공사 중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법원은 이를 일부 받아들였고 헬리오시티 503동의 3~4호 라인 13개층 공사는 중단됐다. 승소 후 동부센트레빌 전용 84㎡형 시세는 4월 말 기준 7억3000만~7억5000만원 선을 형성하고 있다. 지난해 5월 6억8000만~7억원에 거래되던 것과 견줘서는 상승했지만 같은 기간 가락동 전체 아파트값이 8%대로 상승한 것과 비교했을 때 평균을 밑도는 오름세다.
헬리오시티 역시 마찬가지다. 헬리오시티는 동부센트레빌에 보상금을 지급하고 공사를 재개할 전망이지만 보상금, 공사 지연으로 인한 사업비 등 금전적 부담도 지게 됐다. 인근 S공인 관계자는 “시세가 오름세인데다 조합비가 남아 있어 보상금을 지급하는 데 문제가 없다”면서도 “503동의 공사가 정지된 상황이다 보니 입주 시기(내년 말)에 제대로 입주할 수 있느냐고 묻는 조합원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늘어나는 고층 건립에 소송도 급증
환경부 산하 중앙 환경분쟁 조정위원회에 일조권을 이유로 조정과 중재 합의 등을 신청한 경우는 2011년 13건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4년 19건, 2016년 32건으로 급증했다. 최근 들어 30년이 넘은 4~5층짜리 저층 단지나 15층 안팎의 중층 아파트가 초고층으로 변하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일조권 분쟁 역시 앞으로 더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이승태 법무법인 도시와 사람 대표는 “재건축·재개발 조합이 수익성에만 매물돼 사업을 집행하다 보니 일조권 문제가 불거진다”며 “조합이 소송에서 패소하면 조합원 모두 더 큰 손해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조합이 건축 계획을 세울 때부터 주변 아파트 주민의 입장을 청취하고 인근 건물에 대한 일조권 침해 정도를 시뮬레이션하는 등 의견 수렴 절차가 필요하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건축법과 판례가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으니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며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앞으로도 계속 이뤄지는 만큼 오래된 법령을 일관성 있게 정비해 일조권 침해의 기준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