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여자가 들어오면 재수없다" 편견 딛고 임원까지

'거래소설립 63년만 첫 女간부' 채현주 신임상무 인터뷰
레버리지·인버스 ETF 제도 및 포괄공시 도입 '성과'
"최초 女임원 타이틀 부담…앞으론 여성승진 자연스러울 것"
코스닥시장서 첫 임원생활…"기업퇴출 기준 철저관리"
  • 등록 2020-01-21 오전 12:10:00

    수정 2020-01-21 오전 12:10:00

채현주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상무가 지난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사진=한국거래소)
[이데일리 이슬기 기자] 그녀에겐 걷는 길이 모두 역사였다. 여성 최초 부장서 이제는 한국거래소 63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간부까지. 좋아도 싫어도 짊어져야만 했던 ‘최초’라는 말의 무게를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상장지수펀드(ETF) 거래량의 70% 가까이 차지하는 레버리지·인버스 ETF와, ‘이건희 사망설’까지 공시하게 한 포괄주의 공시가 그녀의 손을 거쳐 탄생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닐 테다.

“‘여직원 배치했더니 영 안되겠더라’는 소리를 안 들으려고 열심히 했다”는 그녀. 지난 13일자로 첫 임원 생활을 시작한 채현주 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상무를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만났다.

현장발령 소원수리 10년만에 성취…굵직굵직한 성과 남겨

채 상무가 거래소에 처음 발을 들인 건 1991년의 일이다. 육각형 포스트에 빨간 재킷을 입은 거래소 직원이 앉아있으면 증권사에서 나온 시장 대리인이 손으로 쓴 종이 호가장을 넘기던 시절이다. 그러나 채 상무에게 육각형 포스트는 높은 벽과 같았다. “그땐 시장에 여자가 들어가면 재수없다고 하던 시절이었거든요”. 그 날선 말에 채 상무는 입사하고 꼬박 10년을 현장이 아닌 현장을 지원하는 파트에서 머물러야만 했다.

‘공시부’·‘상장부’·‘공시부’·‘상장부’…. 매 연말이 되면 채 상무는 인사설문지에 현장부서를 적어 넣었다. 소원수리가 된 건 2000년이 돼서의 일. 처음으로 공시부에 배치받은 때였다. 채 상무는 “여직원이 배치 안 됐던 부서에 내가 갔는데 일을 못하면 다음 여자 후배들은 배치조차 못 받을 것 아니냐”며 “잘해야 본전이고 그 이상을 해야 후배들이 편하게 갈 수 있다는 책임감에 어딜가든 항상 열심히 일 했다”고 회상했다.

그 각오는 굵직굵직한 성과로 실현됐다. ETF 전체 거래의 70% 가량을 차지하는 레버리지·인버스 ETF를 시장에 들여오려고 2009년 제도를 개선한 게 대표적 사례다. 또 금융당국이 중요하다고 열거한 것만 공시하도록 한 수동적인 공시 제도를, 기업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정보라면 무엇이든 제공하게 하는 적극적 공시제도(포괄공시)로 바꾼 것도 채 상무다.

채 상무는 “레버리지·인버스 ETF의 경우 당시 시장에 들여오려면 법에 담아야 했는데 ETF를 확대발전시키려고 마음먹고 그 작업을 다 마쳤다”며 “‘이건희 사망설’같은 것도 시장에선 이미 지라시 형태로 돌면서 주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투자자 보호를 위해선 기업이 관련 정보를 포괄공시하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포괄공시는 자리를 잡으면서 지난해 코스피 시장에서 전년비 27.4%나 공시 건수가 증가하기도 했다.

유리천장 여전한 증권가…“변화는 시작되고 있다”

일각에선 거래소를 두고 ‘여자가 다니기 좋은 직장’이라고들 얘기한다. 복지 등 근무환경이 좋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63년 만에야 여성 간부가 나온 것에 대해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다.

채 상무는 “여자들이 다니기 좋은 직장이라는 말은 뒤집어 생각해보면 남자들도 다니기 좋은 직장이라는 얘기”라며 “그 의미는 그냥 똑같이 살아선 올라갈 수 없다는 얘기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채 상무는 “다행히 좋은 상사를 만나서 성별과 관계없이 가치를 인정받고 평가받을 수 있었다”며 “그게 에너지가 되고 동기부여가 돼서 몸이 힘들더라도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실제 거래소를 비롯한 증권가에서 유리천장은 여전하다. 2018년 말 박정림 KB증권 대표이사가 증권업계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로 올라섰지만 증권가 여성 임원은 여전히 전체의 5%도 넘기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이같은 분위기가 슬슬 변하고 있다는 게 채 상무의 생각이다.

채 상무는 “예전엔 여자도 적게 뽑았고 중간에 많이들 그만두면서 승진을 시키고 싶어도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라며 “남성 중심 조직에서 여성이 배제되고 소외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있어 어울리려 노력했지만 지금 세대는 그럴 필요도 없고 시대와 맞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젠 자연스럽게 여성들이 올라오게 될 것으로 예상하며 여성 첫 거래소 임원으로 조명받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멋쩍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편 채 상무는 코스닥 시장에서 첫 임원 생활을 시작한다. 코스닥 시장 관련 업무를 하는 것은 처음이다. 게다가 상장이 아닌 퇴출관련 업무를 맡게 되면서 각오도 남다르다.

채 상무는 “코스닥 진입 문턱을 낮춰놓다 보니 시장이 혼탁해지는 문제가 있어 퇴출 관련 기준들을 철저히 관리하면서 혁신기업이 지속성장할 수 있도록 관리할 것”이라며 “기업 퇴출 기준을 다듬고 심사하는 상장관리부엔 팀을 하나 더 신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채 상무는 “화려한 업무는 아니지만 맡은 바 최선을 다하려 한다”고 웃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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