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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맛보기] 불편한 진실 “왜 대통령은 모두 영남인가”

87년 대선 이후 역대 대통령 김대중 제외하고 모두 영남 출신
보수진영, 이회창 제외하고 영남후보 내세워 대선패배 없었다
차기 대선 유력후보 문재인·홍준표·유승민·안철수 모두 영남 출신
세대·지역 고른 지지 문재인, 패권주의 강화 vs 지역주의 해소
  • 등록 2017-03-27 오전 5:00:00

    수정 2017-04-28 오후 4:43:45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4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대규모 출마선언식 대신 3가지 버전으로 제작된 출마선언 영상을 SNS에 공개했다.(사진=뉴시스)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불편한 진실을 하나 이야기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정치가 지역주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전제하면 호남 출신 대통령의 탄생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2012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 때까지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거의 모두 영남 출신입니다.

박정희(경북 구미) 18년에서 전두환(경남 합천) 7년까지. 87년 민주화 이후 5년 단임제 하에서도 영남 대통령의 시대는 계속됩니다. 87년 대선 노태우(대구), 92년 대선 김영삼(경남 거제), 2002년 대선 노무현(경남 김해), 2007년 대선 이명박(경북 포항), 2012년 대선 박근혜(대구)까지 역대 대선의 승자는 대부분 영남 출신입니다. 대통령 출신지역만 보면 대한민국은 사실상 영남공화국입니다.

영남 대통령 유일한 예외 김대중…충청 출신 이회창 97년·2002년 패배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바로 김대중입니다. 97년 대선 승리는 기적입니다. 물론 정치인 김대중의 능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합니다. 탁월한 지적 능력, 대중을 사로잡는 언변과 유머감각, 시대를 내다보는 혜안, 앞서가지 않고 대중과 보조를 맞추는 현실 감각 등등. 대통령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그것만으로는 97년 대선승리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단군 이래 최대 국난이라던 IMF 외환위기 사태 △호남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뛰어넘은 DJP(김대중+김종필) 연대 △이인제의 독자출마에 따른 영남표의 분열이라는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더 중요한 포인트는 김대중의 97년 대선 라이벌인 이회창이 영남 출신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회창의 고향은 충남 예산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제 고향은 황해도 서흥). 만일 이회창이 영남 출신이었다면 이인제의 독자출마에 따른 영남표 분산의 효과도 적었을 것이고 김대중 대통령은 없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비영남 보수후보였던 이회창은 2002년 대선에서 또 패배합니다. 대선승리의 영광은 영남 출신인 노무현이 가져갔습니다.

주요 정당 유력 주자 모두 영남 출신…5.9 장미대선 승자도 영남 대통령

다시 말해 87년 대선 이후 보수진영이 영남 출신을 대선후보로 내세웠을 경우 패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두 번의 예외는 97년과 2002년 대선입니다. 묘하게도 그 때는 충청 출신의 이회창이 보수진영의 대선후보로 나섰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묘한 것은 주요 정당의 대선 경선에서 승리 가능성이 높은 유력 대선후보들은 하나같이 영남 출신입니다. 민주당 문재인(경남 거제) 자유한국당 홍준표(경남 창녕) 국민의당 안철수(부산) 바른정당 유승민(대구) 등 모두 영남입니다. 정의당 심상정(경기 파주)의 대선 승리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5월 9일 장미대선의 승자 역시 영남 출신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한국 정치의 기본 뼈대는 영호남 정치입니다. 설령 대선에서 패배하더라도 각각 영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제1야당 생활을 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그만큼 영호남은 각각의 지역에서 표의 응집력이 강력합니다. 2004년 17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이 탄핵역풍으로 거의 전멸 위기에 내몰린 상황에서도 121석을 얻으며 기사회생한 것은 영남권 압승 덕분입니다. 한나라당은 전체 68석 중 무려 60석을 얻었습니다. 민주당 계열의 정당이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총선은 2007년 대선에서 531만여표의 참패를 당한 이후 4개월 뒤에 치러진 18대 총선이었습니다. 당시 통합민주당은 호남권 의석 전체 31석 중 25석을 얻었습니다. 나머지 6석 역시 한나라당이 아닌 무소속의 몫이었습니다. 호남을 발판으로 부활을 노릴 수 있었습니다.

대선 승리의 원리는 간단합니다. 단 한 표라도 더 많은 표를 얻은 사람이 승리합니다. 영남 지역구 국회의원은 호남의 두 배 정도입니다. 이는 영남 인구가 두 배 가량 많다는 의미입니다. 지역주의 투표 성향으로 영호남 지역에서 각각 특정후보를 향한 몰표가 이어진다고 전제하면 대선이라는 마라톤에서 영남 후보는 호남 후보보다 항상 5km 정도 앞서서 출발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A군, B군, C군, D군 등 농촌지역 4개군이 하나로 묶인 국회의원 선거구에서는 대체적으로 인구가 가장 많은 군 출신 후보들이 당선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대선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김대중의 4자필승론, 유시민의 게임의법칙 폐기 수준의 압도적 환경

87년 대선 당시 김대중의 ‘4자 필승론’이라는 게 게 있습니다. 이른바 1노3김 구도에서 김영삼·김대중 후보단일화 없이도 4자구도에서 김대중이 승리할 수 있다는 이론적 기반입니다. 노태우(경북) 김영삼(경남) 김대중(호남) 김종필(충청)의 지역기반을 인정하더라도 김대중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승리하면 대통령은 문제없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실패했습니다. 김대중은 서울에서만 1위를 기록했을 뿐 인천과 경기에서는 노태우, 김영삼에 이어 3위를 기록했습니다.

97년 대선을 앞두고 유시민은 ‘게임의 법칙’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비호남 유권자들의 반(反)김대중 정서를 전제로 김대중이 대선에 나서면 92년 대선의 개정판이 되고 김대중이 아닌 자격을 갖춘 제3의 후보를 내세운다면 승부를 미리 알 수 없는 선거판이 될 것이라는 게 핵심입니다. 쉽게 말해 DJ가 또 대선에 나선다면 DJP연대 여부와 관계없이 대선에 진다는 뜻입니다. 제3의 후보를 내세우는 게 오히려 정권교체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는 의미입니다. 책이 나온 시점이 97년 4월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유시민은 IMF 사태와 이인제의 독자출마를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과연 IMF 사태와 이인제의 독자출마 없이 김대중이 승리할 수 있었을까라는 점은 여전히 의문입니다.

87년 대선의 4자 필승론이나 97년 대선의 게임의 법칙 모두 야권의 곤궁한 처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영남 보수 우위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호남 또는 야권 성향의 후보의 대선승리가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5월 9일 치러지는 장미대선은 정반대의 환경입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보수단일후보에 합의해 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우파 단일후보 4자구도가 만들어지더라도 천지개벽이 없는 한 정권교체는 거의 기정사실입니다. 2012년 대선 패배의 멍에를 뒤집어썼던 문재인이 또 한 번 도전에 나섰습니다. 안철수, 반기문, 이재명, 안희정이 한때 문재인을 거세게 추격했지만 그는 안정적인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97년 김대중이 처했던 어려움과는 정반대의 환경입니다. 차기대선은 김대중이 내걸었던 4자필승론이나 유시민이 우려했던 게임의 법칙을 야권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문재인, 영남 패권의 부산대통령 vs 지역주의 해소 첫 대통령

50% 안팎을 넘나드는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 30%대 중후반으로 대세론을 구가하는 문재인의 차기 지지율,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전망 등을 고려할 때 차기 대선에 가장 유리한 고지에 올라서 있는 사람은 문재인입니다.

만일 특정지역과 특정세대의 압도적인 지지만을 바탕으로 대통령이 되면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은 부채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집권 이후 지지층을 고려하다 보면 전직 대통령들이 범했던 과오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역대 정권이 국민통합을 내세우고도 영남편중 또는 호남편중 인사라는 비판을 받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문재인의 반대자들이 우려하는 대로 친노·친문·영남 패권주의가 현실화되면 그의 통치 역시 실패할 수 있습니다. 부산대통령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각종 여론조사 내용을 살펴보면 매우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문재인은 △ 민주당의 정치적 기반인 호남 △본인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울산·경남(PK) △라이벌 안희정의 텃밭인 충남 △보수의 심장부인 대구·경북(TK) △역대 대선 최대 승부처인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에서 모두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세대별 지지율 역시 40대 이하는 압도적입니다.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50대와 60대 이상에서도 안희정과 1·2위를 다투고 있습니다.

여론조사 결과가 대선까지 이어진다면 문재인은 특정지역과 세대만의 대통령이 아닙니다. 전국 모든 지역과 모든 연령대에서 1위 득표를 기록하는, 87년 이후 사상 첫 대통령이 될 수 있습니다. 호남 기반의 영남 대통령이었던 참여정부와는 질적으로 다른 출발선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노무현의 말대로 농부가 밭을 탓하지 않아도 되는 정치환경이 조성될 수 있습니다. 바로 지역주의 해소의 첫걸음입니다. 그래야만 ‘호남 출신 대통령 불가론’과 같은 말도 안되는 정치적 담론도 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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