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3년 전인 2017년 3월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탄핵심판 사건 결정문 낭독을 시작하자 모두가 숨을 죽였다. 오전 11시21분쯤 이 권한대행이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주문을 선고했다. 8대 0, 재판관 전원 일치 결정이었다. 2016년 12월9일 탄핵소추안이 헌재에 접수된 뒤 석 달간 숨가쁘게 진행된 탄핵심판 사건은 헌정 사상 최초의 현직 대통령 파면으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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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소추위원 측 대리인단을 이끌었던 황정근(59·사법연수원 15기) 법무법인 소백 대표변호사는 9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도 법 아래 있다는 교훈을 우리 사회가 얻게 됐다”며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도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면 탄핵되고 파면된다는 걸 알리면서 역사의 경종을 울렸다”고 평가했다. 다만 “탄핵 이후 권력구조 개헌이 이뤄졌어야 하는데 정치권이 손을 놓은 게 아쉽다”고 말했다.
불행한 역사가 반복돼서는 안 되지만, 만일을 대비해 국회법과 헌재법을 보완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황 변호사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조사 절차가 전제되지 않고 본회의에서 바로 의결하는 게 적절하진 않다”면서 “고위 공직자의 파면 여부를 가리는 게 탄핵심판인데 법사위에서 사실 관계를 확정하지 않은 채 검찰 발표로 의결하는 건 사실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사전에 논쟁을 피하기 위해 피청구인 측이 부동의한 증거 채택 여부도 법 또는 적어도 헌재 규칙에서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황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국회 소추위원 측 대리인단 총괄팀장을 맡게 된 계기는.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권성동 위원장으로부터 요청을 받았다. 친분이 있는 사이는 아니었고 각계 의견을 두루 들으면서 적임자를 물색했다고 들었다. 정치적 민감성이나 국가의 비용 문제를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대형 로펌에서 하긴 어렵고, 개인 변호사가 컨트롤 하기엔 사건이 거대했다. 법관 출신이면서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10년 넘게 근무하며 팀 플레이를 해 본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한다.재판이 끝날 때까지 실무를 총괄하게 됐지만, 원래는 헌법재판관이나 대법관을 지내신 원로 법조인 가운데 총괄팀장 위의 대리인단장을 모시려는 계획이 있었다.
-탄핵소추안 의결 이후 선고까지 약 3개월 간 탄핵심판이 진행됐다. 주안점을 뒀던 부분과 가장 어려웠던 점은.
△가장 주안점을 뒀던 부분은 `재판이 신속하게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재판 중에는 대통령의 직무집행권한이 정지되기 때문에 국정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피청구인 측 대리인단이 무더기로 증인을 신청한다든지 온갖 지연책을 쓸 때 그걸 하나 하나 막아야 하는데 스트레스를 좀 받았다. 상대방의 소송 지연 전략에 대응해야 하는데 예측이 쉽지 았았다. 변론이 마무리 될 때 쯤에는 탄핵심판 주심이었던 강일원 재판관 기피 신청까지 하지 않았나. 대통령 탄핵을 논하는 헌재 재판정에서 피청구인 측 대리인단이 막말을 한 건 경악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지막 변론 때는 “어떤 변론을 해도 좋은데 다 기록으로 남으니 표현은 가려가면서 하자”고 했다.
-재판 과정에서 느낀 제도상 미비점이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2번의 탄핵심판에서 국회 법사위의 사실관계 조사 절차가 없어도 탄핵소추가 적법하다고 봐 확립된 판례가 되긴 했지만, 법사위 조사 절차가 전제되지 않고 본회의에서 바로 의결하는 게 적절하진 않다고 본다. 국회법 제130조 1항에 `본회의는 의결로 법사위에 회부해 조사하게 할 수 있다`고 돼 있는데 `할 수 있다`가 아니라 `조사해야 한다`로 개정돼야 한다. 물론 공소장에 검찰이 조사한 결론이 담겨 있긴 하지만 탄핵심판은 고위 공직자의 파면 여부를 가리는 재판이지 않나. 법사위에서 사실관계를 확정한 다음 해야지 검찰에서 발표했다고 의결하는 건 사실 위험하다.
탄핵심판이 시작된 뒤 관련 학술대회가 있었는데 송기춘 전북대 로스쿨 교수가 이 조항을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만일 피청구인 측에서 헌재에 헌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면 재판이 상당히 지연될 수밖에 없었는데 우려했던 주장은 나오지 않았다. 피청구인 측에서 수사기록상 관련자들의 진술에 동의하지 않았을 때 증거로 채택할 수 있는지 여부도 헌재법 또는 헌재 규칙에서 정해야 한다. 탄핵심판이 형사절차를 준용한다고 볼 경우 조서를 부동의 했을 때 증인들을 다 불러야 한다는 입장과 공문서니 부를 필요 없다는 입장으로 나뉘는데 헌재는 중간 입장을 취했다. 이건 결정문에도 나오지 않을 뿐더러 객관적 합리적 기준이라고 볼 수도 없다. 훗날 탄핵 사건이 있으면 형사 절차가 다 선행이 될 텐데 명확한 기준이 없으면 계속 논쟁이 벌어지게 된다. 탄핵소추 의결로 직무집행이 정지되는 부분도 개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직무집행 정지로 국정공백이 발생하잖나. 빨리 진행한다고 해도 석 달씩이나 걸렸는데 탄핵 소추 후 다음 대통령을 뽑을 때까지 5개월의 공백이 생겼다.
△탄핵심판에서 안창호 재판관이 보충의견으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지적했었다. 지난 1987년 헌법 개정 후 30년 이상 지났고 현직 대통령이 파면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탄핵 이후에 권력구조 개헌이 이뤄졌어야 하는데 정치권이 손을 놓은 게 아쉽다. 대통령의 엄청난 권한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한다. 탄핵심판은 법의 테두리 내에서 해결이 된, 위대한 민주주의의 성과다. 한 사람을 파면하고 그친 게 아니라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도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면 탄핵되고 파면된다는 걸 알리면서 역사의 경종을 울렸다. 최후 변론문에도 `이 결정이 역사의 기록과 국민의 기억 속에 남을 텐데 그건 결국 이런 일이 절대로 없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어떤 고위 공직자, 정치인이든 이 교훈을 잊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