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경 수험생들 "대림동 논란 상처...차라리 성별 기준 없앴으면"

대림동 여경 논란에 女 공시생도 좌절
남녀 모두 "체력검사 개선 필요"
전문가들 "여경이 사건 본질 아냐...체력검정 개선은 동의"
  • 등록 2019-05-22 오전 12:10:32

    수정 2019-05-22 오전 8:08:47

지난 15일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공개돼 논란이 된 '대림동 경찰관 폭행' 영상 화면 캡쳐.


[이데일리 김보영 기자·공태영 인턴기자]

"저도 그렇고 제 주변에 경찰공무원을 꿈꾸는 여자 친구들은 남자 애들 못지 않게 정말 피나게 노력하고 있거든요. 이번 사건으로 '역시 여경은 안돼'란 인식이 더 강화되는 것 같아서 힘이 빠져요. 열심히 준비하는 여경 준비생들까지 함께 부정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

2년째 경찰공무원을 준비 중인 공무원 시험 준비생 김선영(가명·25·여)씨는 술 취한 남성을 제압하던 여성 경찰관의 영상이 논란을 얻은 뒤로 인터넷상의 기사와 커뮤니티 게시글, 댓글을 보지 않는다. 김씨는 "준비생이지만 취업 난이도가 오르는 걸 감수해서라도 여경 체력검사 선발 기준을 강화했으면 좋겠다. 더 이상 비난받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 구로구에서 술 취한 남성을 제압하던 여성 경찰관의 대응이 미흡했다는 논란이 일자 쇄도하자 경찰 측이 해명자료와 함께 전체 영상까지 공개했지만 해당 여경을 향한 비난과 지적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급기야 논란이 '여경 선발을 폐지, 축소해야 한다'는 무용론으로까지 확대되자 경찰 조직 안팎에서 이참에 여성 경찰의 체력검정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고개를 들고 있다.

스냅타임은 경찰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들에게 대림동 여경 대처 논란에 관한 생각을 들어봤다. 해당 여경의 대처 방식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지만 경찰 역량 증진을 위한 체력검사 등 현행 여경 선발 기준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대체로 같았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국민청원까지...수험생도 여경 대처 의견 분분

앞서 지난 15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술 취한 남성을 제압하는 경찰관의 영상이 게시돼 화제와 동시에 논란을 일으켰다. 이 1분 59초짜리 영상에서는 만취한 중년 남성 2명이 남녀 경찰 2명 앞에서 난동을 부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해당 사건은 지난 13일 오후 9시 50분 구로구의 한 식당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상에는 중년 남성 한 명이 남성 경찰의 뺨을 때리고 또다른 남성 장모씨가 여성 경찰인 A경장을 밀치는 장면이 찍혔다. 이 영상의 편집본이 '대림동 경찰 폭행'이란 제목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A경장의 대처가 '남성분 도와달라'며 시민에게 도움을 청하고 혼자 힘으로 수갑을 못 채우는 등 소극적이었다는 비판 여론이 일었다.

관할서인 구로경찰서가 17일 전체 영상을 공개하고 "여경이 남성을 제압하고 체포하는 등 적극 대응했다"며 해명자료를 냈지만 논란은 좀체 수그러들지 않는 모양새다. '여자들은 진급이 쉽고 힘든 업무가 없는 내근직이나 맡으며 편히 생활하려고 여경을 준비한다'나 '여경은 쓸모가 없다. 오히려 동료 경찰들에게 피해만 준다' 등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이 수백건에 달하고 일간베스트저장소 등 남초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여경' 대신 '치안조무사'란 표현을 사용하자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최근에는 여경 선발 비중을 대폭 축소해달라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글까지 등장했다.

경찰공무원시험 준비생들 사이에서는 여경의 대처 방식을 둔 평가가 엇갈렸다. 수험생 김현석(가명·27)씨는 "미란다 원칙 고지나 동료 경찰이 뺨을 맞을 당시 주취자를 제압하는 타이밍은 좋았다. 기본적으로 남녀의 신체적 차이가 있다는 점도 사실"이라면서도 "그럼에도 도움을 청한 대상이 시민이었든 교통경찰이었든 '남자분 나와주세요'라고 무작정 소리를 친 것, 본인이 먼저 직접 수갑을 채우려고 하지 않은 점 등은 미흡했다"고 말했다.

반면 다른 수험생 강지민(가명·24·여)씨는 "무릎으로 주취자를 제압해 움직이게 못한 상태에서 손이 부족하면 충분히 시민이나 교통경찰 등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고 본다"며 "어설프게 혼자 검거하려다가 범인을 놓치는 것보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지 않나. 똑같은 행동을 남자 경찰이 했어도 이런 평가를 받았을까"라고 반문했다.

女 수험생 "차라리 체력검사 기준 높여달라"

사실 여경의 사건·사고 대응을 둔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9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부산의 한 교통사고 현장에서 여경 4명의 대처 장면이 공개돼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당시 커뮤니티에서는 현장에 있던 경찰들 대신 일반 시민이 운전자를 구조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경찰 측에서 "출동한 여경들이 견인 차량을 부르고 부상자를 119에 인계해 사고 처리에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이 한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지난해 7월에는 이성은 경찰청 성평등 정책담당관이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여성 경찰의 채용이 체력의 한계로 경찰력을 약화시키지 않을까란 인터뷰 질문에 "현재 평가 종목인 100m 달리기와 팔굽혀펴기 등이 경찰 업무에 정말 필요한 역량인지 살펴봐야 한다. 힘쓰는 일이 필요한 직무는 일부에 불과하다"라고 한 발언이 반발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 사건 이후 이 담당관의 해임을 요구하는 국민청원 게시글은 11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이렇게 여성 경찰의 업무 역량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다보니 '여경 무용론'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체력검사 등 선발 기준을 강화해야한다는 주장이 안팎에서 제기된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지난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동양권 여경과 비교했을 때 한국 여경의 체력검사만 크게 부실하다"며 "한국 여경이 신뢰를 회복하려면 체력 검사 기준부터 아시아권의 보편적 수준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한국 여경은 팔굽혀펴기 과락이 무릎 대고 팔굽혀펴기 방식으로 10회"라며 "같은 동양권의 일본 후쿠오카 여경은 정자세로 15회 이상을 해야만 합격한다. 싱가포르는 연령대별 기준이 다르지만 정자세로 22세는 15회 이상, 22~24세는 14회 이상, 25~27세는 13회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경찰공무원시험 준비생들 사이에서도 여경의 체력검사 기준을 남성과 동등한 수준으로 상향하거나 현행보다 좀 더 강화해야 한다는 데 남녀 간 이견이 없었다.

정진철(가명·29)씨는 "남녀 사이에 신체적 차이가 있으니 남녀 기준을 기계적으로 동일하게 둘 수 없다는 사실에는 동의하나 경찰 및 소방, 교정 공무원들은 직업적 특수성에 따라 일반 시민 이상의 체력이 요구된다고 본다. 현행 여경의 체력검사 기준은 직업적 특수성에 따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박민지(가명·26·여)씨는 "사명감 없이 공무원 생활이 주는 안정성만 믿고 경찰 시험에 응시하는 수험생도 적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근데 이건 여경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라며 "그렇다면 체력검사 등 신체적 역량 통과 기준을 아예 높여 그런 친구들이 합격할 가능성을 줄이면 되지 않겠나. 그렇게 여경이 미덥지 않다면 더 열심히 준비할테니 남성과 같은 기준으로 올렸으면 한다. 그런 걸 감수해서라도 열심히 준비할 자신 있다"고 말했다.

폭 민갑룡 경찰청장. (사진=경찰청)


전문가 "여경 무용론 본질 아냐...체력 기준은 개선돼야"

실제로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경찰 채용 과정에서 연령별로 체력기준에 차등을 두는 경우는 있으나 여성 지원자는 무릎을 대고 팔굽혀펴기를 하게 하는 등 성별로 차등을 두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영국은 아예 차이를 두지 않는다.

전문가들도 대림동 사건이 여경의 대처 방식과 자질 논란에만 치우치는 게 본질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도 여경의 체력 검정 절차 개선은 충분히 검토해 보완해야 할 사안이 맞다고 인정한다.

이금형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전문가 입장에서 대림동 사건 영상 속 여경이 얼마나 잘 대처했는지 여부만 보고 판단하자면 무릎으로 충분히 주취자를 제압한 상태에서 주변 시민에게 도움을 청한 게 잘못이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정말 근무를 잘했다"고 평가하면서도 "그러나 이 사건은 여경의 대처에 초점을 맞출 사안이 아니다. 오히려 주취자에게 뺨을 맞고 수모를 당하는 등 국가를 지키는 공권력이 침해되고 있음에도 개선되지 않고 방치되고 있다는 점에 본질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여경의 역량 및 대처 논란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게 아니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 경찰 조직 안팎에서도 끊임없이 제기됐던 문제였음에도 지식 기반 사회로의 변화, 치안 과정에서 여성 경찰에 대한 수요와 필요성이 높아지는 추세이기 때문에 오히려 여경 비중을 계속 늘리려는 움직임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여경의 선발 기준, 체력검사 기준 등을 상향해야 한다는 지적은 남녀를 떠나 경찰 조직의 치안 수준, 역량 강화를 위해 충분히 검토해 개선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도 덧붙였다.

서울여대 여성연구소 관계자 역시 "남성 대 여성 대결 구도로 사안을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로 극단적 판단과 여론으로 치닫고 있다. 아마 똑같은 행위를 남성 경찰이 했다면 남경을 없애야 한다는 의견 대신 침해되는 공권력이 먼저 문제로 제기되지 않았을까"라면서도 "남녀 아주 동일하게는 아니라도 경찰 선발 기준을 성별 차등을 두지 않고 비슷하게 확립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한다. 본인 및 동료 경찰, 시민 안전을 위해서라도 개선되어야 할 부분은 맞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민갑룡 경찰청장은 21일 기자간담회에서 "(체력검정기준에)개선이 필요하다는 용역결과를 받아 2021학년도 과정부터 경찰대 간부후보생의 체력검정 기준을 개선키로 했다"며 "이를 순경 공채 등 전체로 확대하는 건 또다른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선진국에 비해 기준이 약하다는 평가가 있기 때문에 그 수준에 맞게 체력 기준을 높여나갈 것"이라며 "다만 인권적 관점에서 시민보다 지나치게 월등한 기준을 제시해서는 안된다는 의견들도 있어 적절한 조합점을 찾는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스냅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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