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 칼럼] 강경화 외교장관의 존재감

  • 등록 2019-06-07 오전 6:00:00

    수정 2019-06-07 오전 6:00:00

강경화 외교장관이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직책상 원래 업무가 많기도 하지만 헝가리 유람선 침몰사고가 발생하고 지난 일주일 동안은 더욱 바빠진 것 같다. 황급히 부다페스트로 떠나 현장 지휘를 하고 돌아온 벼락치기 출장부터가 그러하다. 귀국해서도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출장보고와 국무회의 및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가 이어졌다. 이 와중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초청한 오찬모임에 참석하기도 했다. 어제는 다시 슬로바키아 출장길에 올랐다.

이처럼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안쓰러울 정도지만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본연의 역할에 비춰본다면 어딘지 공허하다는 생각을 감추기 어렵다. 우리 해외여행객들이 다뉴브강 사고로 사망·실종된 사태를 가볍게 처리해도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더욱이 세월호 사태의 쓰라린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 해도 한반도 주변에 닥쳐오는 격동적인 변화 요인을 감안한다면 사안의 중대성과 우선순위에 따라 움직여야 했다. 그것이 국민들이 기대하는 외교장관의 본분이다.

당장 눈앞에 펼쳐지는 미국과 중국의 전방위 다툼이 심상치 않다. 종착점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면서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발단이 된 무역마찰은 남중국해 주도권과 톈안먼사태 공방, 여행 자제령으로 번져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화웨이 장비 사용과 관련한 양측의 노골적인 압력이 우리 기업들에게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서로 자기편에 서도록 양자택일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외교부에서는 마땅한 답변이 나오지 않고 있다. 우리가 미·중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그리 많지 않다는 애매한 처지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이미 중국의 사드보복으로 현지에 진출했던 기업들이 불매운동의 직격탄을 맞은 데다 유커(遊客)에 대한 금족령이 내려져 여행업계가 곤경에 처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다고 마냥 미적대며 결정을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강 장관이 아무리 바쁘게 돌아다녀도 국가적 이해가 걸린 문제를 제쳐놓은 듯이 보인다면 그 움직임에서 무게감을 느끼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강 장관의 업무 장악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가 외교부 내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것도 맥락은 비슷하다. 중대한 의전 실책과 기강해이 사례가 벌써 여러 차례나 이어졌으며 해외 공관장들의 비리 사실도 드러나고 있다. 여기에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이 유출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정치권에서 강 장관에 대한 경질론까지 제기되는 이유를 이해할 만하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우리 외교의 기본 축을 지탱해 온 우방 외교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한·미 공조가 깨지는 조짐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양측의 중요 인사들이 만날 때마다 공조관계를 강조하는 모습은 역설적인 현실이다. 일본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과거사로 얽혀 있기 때문에 어차피 원활한 관계는 어렵다고 해도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다가오고 있는데도 아직 한·일 정상회담 개최 여부가 불확실한 실정이다. 강 장관 혼자만의 책임으로 돌릴 일은 아니지만 이런 흐름을 바로잡기 위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평가가 그렇게 후한 것 같지 않다.

이러한 분위기는 강 장관 스스로 초래한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외교정책의 마지막 방향은 청와대가 결정하는 것이라 해도 그 과정에서 외교부 나름대로의 역할과 책임을 소홀히 했던 것은 아닌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요즘은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 강 장관을 대신해서 주요 현안들을 챙기고 있다는 소문까지 전해진다. 국민들이 강 장관에 기대했던 것은 자신의 힘으로 유엔사무총장 정책특보까지 올랐던 실력 때문이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면 존재감 회복 노력부터 보여줘야 할 것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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