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안쓰러울 정도지만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본연의 역할에 비춰본다면 어딘지 공허하다는 생각을 감추기 어렵다. 우리 해외여행객들이 다뉴브강 사고로 사망·실종된 사태를 가볍게 처리해도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더욱이 세월호 사태의 쓰라린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 해도 한반도 주변에 닥쳐오는 격동적인 변화 요인을 감안한다면 사안의 중대성과 우선순위에 따라 움직여야 했다. 그것이 국민들이 기대하는 외교장관의 본분이다.
당장 눈앞에 펼쳐지는 미국과 중국의 전방위 다툼이 심상치 않다. 종착점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면서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발단이 된 무역마찰은 남중국해 주도권과 톈안먼사태 공방, 여행 자제령으로 번져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화웨이 장비 사용과 관련한 양측의 노골적인 압력이 우리 기업들에게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서로 자기편에 서도록 양자택일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강 장관의 업무 장악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가 외교부 내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것도 맥락은 비슷하다. 중대한 의전 실책과 기강해이 사례가 벌써 여러 차례나 이어졌으며 해외 공관장들의 비리 사실도 드러나고 있다. 여기에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이 유출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정치권에서 강 장관에 대한 경질론까지 제기되는 이유를 이해할 만하다.
이러한 분위기는 강 장관 스스로 초래한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외교정책의 마지막 방향은 청와대가 결정하는 것이라 해도 그 과정에서 외교부 나름대로의 역할과 책임을 소홀히 했던 것은 아닌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요즘은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 강 장관을 대신해서 주요 현안들을 챙기고 있다는 소문까지 전해진다. 국민들이 강 장관에 기대했던 것은 자신의 힘으로 유엔사무총장 정책특보까지 올랐던 실력 때문이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면 존재감 회복 노력부터 보여줘야 할 것이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