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거리응원 마저 품지 못한 광화문광장

애국당 불법천막 한달, 제 기능 잃어가는 광화문광장
"단호하게 대응" 외쳤던 박원순 서울시장 `눈치 보기`
광화문광장 둘러싼 정치적 셈법, 강제철거에 걸림돌
제대로 비워야 살아나는 광장의 가치…시민 광장 돼야
  • 등록 2019-06-16 오전 9:44:16

    수정 2019-06-16 오전 9:44:16

지난달 10일 광화문광장에 대한애국당이 불법으로 설치한 천막 모습. 9일 35명의 당원이 천막을 지키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무효’ 등을 주장했다. (사진=김보겸 기자)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광장(廣場)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게 거리에 만들어 놓은 넓은 빈터` 또는 `공공의 목적을 위해 여러 갈래 길이 모일 수 있도록 넓게 만든 마당` 정도로 해석된다. 한 마디로 넓고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곳이다. 최초의 광장이 그랬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중심에 있던 아고라는 인류 첫 광장이었고 거기에선 1년에 40여차례나 시민들이 모여 민회를 열고 나랏일을 함께 의논하고 결정했다. 아고라는 아테네 민주정치의 상징이었고, 그래서 광장은 민주사회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그런 광장의 의미에 가장 부합하는 우리나라 대표 광장이라면 단연 첫 손에 꼽히는 광화문광장이 몸살을 앓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 등을 요구하는 대한애국당의 천막이 광장 한쪽을 불법 점거한지 벌써 한 달을 훌쩍 넘기면서 광장으로서의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광화문광장에서 개최하겠다며 신고를 마친 10여건의 집회가 불법천막의 알박기 탓에 장소를 옮겨야만 했다. 누구나 열린 공간에서 자신들의 주의·주장을 알리고 찬반 어느 쪽과도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광장의 역할이라면 지금은 일방의 몽니를 불편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급기야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최하는 국제대회에서 역사상 첫 준우승이라는 업적을 이룬 우리 20세이하(U-20) 월드컵 축구팀의 결승전이 열린 16일 새벽 광화문광장에서 진행하려던 거리응원 마저 장소 제약, 애국당과의 충돌 가능성으로 인해 외진 곳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누구나 아다시피 광화문광장은 지난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오롯이 기억하고 있는 `한국축구의 성지`다. 특히 이번 U-20 축구팀의 선전이 오랜만에 우리 국민 모두가 얼싸안고 한 마음으로 가슴 졸이며 응원하고 기뻐할 수 있도록 해준 낭보였다는 점에서 시민사회 구성원 모두가 어우러질 수 있는 거리응원은 광화문광장의 설립 취지에 가장 부합할 수 있는 행사이기도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애초 애국당이 기습적으로 광장에 천막을 설치하자 소셜미디어를 통해 “불법으로 광장을 점거하고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는 행위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며 큰 소리를 쳤다. 그러나 세 차례 계고장에도 버티기로 일관하는 애국당 측에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보수진영이 반발했던 세월호 기억공간은 남겨두면서 애국당 천막만 불허한다는 형평성 논란이 내내 따라 다니는데다 강제철거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생길 경우 정치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 박 시장의 셈법을 복잡하게 했을 수 있다.

올초 서울시 설계공모 이후 지금 광화문광장은 그 면모를 새롭게 바꾸는 단장을 준비하고 있다. 주변 도로를 줄이고 세종대왕상을 이전함으로써 지금보다 3~4배나 넓어지는 광화문광장은 활용도가 더 높아질 전망이다. 이 작업을 주도했던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도 “광화문광장을 제대로 비워서 광장 본연의 가치를 찾고자 한다”고 대원칙을 천명한 바 있다. 어떤 것은 본디 비어 있을 때에만 진정 쓸모있는 것이 있다. 비어 있다고 함부로 채우려 하지 말아야할 것이 있다. 우리에게 광장이 그런 존재다. 비어 있어서 위안과 휴식을 주고 필요할 때엔 자유롭게 서로의 견해를 외치고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시민의 공간으로서 광장이 돌아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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