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 view]반도체 '빅사이클론' 맹신의 결과

이종우 이코노미스트
  • 등록 2021-09-29 오전 6:00:00

    수정 2021-09-29 오전 8:08:21

[이종우 이코노미스트] IT(정보통신) 버블이 본격적으로 터진 건 2000년 4월이다. 우리나라 IT의 선봉인 삼성전자도 그 때부터 주가가 하락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IT주가가 폭락하는 와중에도 삼성전자 주가는 그해 7월 13일 7880원까지 올라갔다. 전체 시장이 40%나 떨어지는 와중에도 석 달간 주가가 계속 상승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당연히 반도체에 대한 낙관론이 만연했다. 인터넷과 핸드폰이 본격 보급되면서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데, 지금이 도입 초기인 걸 감안하면 수요 증가가 몇 년간 더 이어질 거란 얘기였다. 이익도 뒷받침됐다. 2000년 3분기 영업이익이 2조 1770억 원으로 1999년 3분기에 이어 두 번째로 분기 이익이 2조를 넘었다.

6월 미국에서 두 장짜리 반도체 보고서가 나왔다. 반도체는 진폭이 큰 사이클 산업인데 지금이 가장 좋은 상태이므로 앞으로 고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삼성전자를 직접 겨냥했다기보다 반도체 산업 전체를 대상으로 한 보고서였다. 이 의견을 놓고 말이 많았다. 세상이 바뀐 걸 생각지도 않은 유치한 분석이라는 얘기가 대부분이었다.

주가는 7월 13일을 정점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하락 속도가 얼마나 빨랐던지 석 달 사이에 70%가 떨어졌다. 영업이익이 2000년 4분기에 1조 4610억으로 줄었다가 2001년 하반기에는 1000억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

반도체를 놓고 말이 많다. 몇 번의 계기가 있었다. 첫 번째 우려는 ‘빅 사이클’ 기대가 멀어지면서 제기됐다. 4차 산업혁명으로 서버 수요가 급증하는 상태에서 코로나19로 비대면 세상까지 왔으니 반도체를 더 오래 그리고 더 많이 쓰게 될 거라 믿었지만 당장 하반기를 장담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두 번째는 외국인 매도다. 외국인이 8월 한 달 동안 6조5000억원어치의 삼성전자를 내다 팔았다. SK하이닉스까지 합치면 반도체 양사의 순매도액이 8조를 넘는다. 8월 이전에도 외국인이 반도체 주식을 팔고 있었던 걸 감안하면 허투루 넘어갈 일이 아니다.

외국인이 반도체주식을 내다 파는 건 업황을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반기에 반도체 가격 상승이 둔화될 가능성이 높다.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DDR4 8Gb 반도체 가격이 1분기 3달러에서 2분기에는 3.8달러로 뛰었다. 상승률이 27%에 달했는데 3분기는 4달러를 겨우 넘는 수준에 그치고, 내년 상반기에는 가격이 반대로 떨어질 걸로 점쳐지고 있다.

반도체 가격 상승이 2분기를 정점으로 둔화되는 건 가격 저항 때문이다. 공급이 부족하면 가격 협상력이 생산업체로 넘어간다. 수요기업들이 다급해져 생산업체의 의지에 따라주기 때문이다. 올해 2분기 반도체 시장이 그런 형태였다. 지금은 가격 상승으로 중국 기업을 중심으로 가격에 대한 저항이 커진 상태다. 중국의 오포, 비보, 샤오미 같은 스마트폰 업체들은 10~12주 동안 쓸 수 있는 반도체를 가지고 있는 걸로 알려졌다. 인터넷 기업 역시 8~10주 동안 쓸 수 있는 서버용 반도체를 확보하고 있다. 정상 수준인 4~6주보다 월등히 많은 양이다. 이미 많은 물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굳이 높은 가격에 추가로 반도체를 매수할 이유가 없다. 가격 결정권이 수요 쪽으로 넘어간 만큼 당분간 큰 폭의 반도체 가격 상승을 기대하기 힘들다.

반도체는 경기 변동에 민감한 산업이다. 앞으로 IT경기가 예상만큼 좋지 않다면 반도체 가격 상승이 더 더뎌질 수 있다. 이번 반도체주가 하락과 외국인 매도를 통해 분명해진 사실이 하나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세상이 반도체 경기를 크게 끌어올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시장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것과 다른 형태다. 세상사를 전망하다 보면 시장에 퍼져 있는 얘기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걸 자주 목격한다. 이번 반도체 경기 논쟁도 출발점은 ‘빅 사이클’을 의심 없이 받아들인 데에서 시작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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