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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우리말]①“편한 외국어, 그냥 쓰면 안되나요?”

직장인 절반 "회의서 외국어 사용"
젊은층 일부 대체어 필요성 공감 못해
쉬운 우리말 사용해야 하는 이유
언어는 소통과 배려이자 곧 인권
소통수단 넘어 알 권리 보장해야
  • 등록 2022-05-17 오전 6:10:00

    수정 2022-05-17 오후 9:37:08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한류 열풍이 ‘한글’로 이어지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한국 가요(K팝)를 듣는 것을 넘어 한글을 배우려는 외국인이 늘고 있는 것이다. 고무적인 현실에도 외국어 홍수와 온갖 줄임말, 혐오 표현으로 우리 국어 환경은 몹시 어지럽다. 무슨 뜻인지 모를 외국어의 범람은 세대 갈등을 부추기고 알 권리를 막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말을 얼마나 알고, 잘 쓰고 있을까. 이데일리의 연재 기획 ‘반갑다 우리말’은 이런 질문에서 출발했다. 이데일리는 문화체육관광부·㈔국어문화원연합회·세종국어문화원과 함께 외국어 남용 실태를 짚고, 이를 쉬운 우리말로 개선하기 위한 기획 기사를 총 12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출근길 ‘스크린도어’가 열리면 지하철을 탄다. 회사에 도착하면 바로 ‘클라이언트’와의 ‘미팅’이 있다. 클라이언트의 ‘니즈’를 파악하고 ‘네고’를 하는데 일단 상황을 더 지켜보기로 하고 ‘홀드’하기로 했다. 과장은 ‘팔로업’을 잘하라고 당부한다.”

익숙한 이 장면은 보통 직장인의 일상 업무 일부다. 여기 등장하는 외국어 표현들은 평소 직장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업무 용어들이다. 실제로 한 취업정보업체에서 직장인 546명을 대상으로 ‘회의석상에서의 외국어·외래어 사용’에 대해 설문조사 한 결과, 직장인 51.28%는 ‘외국어·외래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외래어를 자주 쓰는 이유로는 ‘마땅히 대체할 말이 없어서’(30.17%)가 가장 많았고, ‘전문적인 느낌이 들어서’(20.69%), ‘더 강하게 표현할 수 있어서’(18.10%), ‘다른 사람들이 쓰니까 습관적으로’(12.93%), ‘미디어에서 쉽게 접하기 때문’(6.03%) 순으로 나타났다.

10~20대 젊은 층 사이에서의 외국어 남용 사례는 더욱 심각하다. 이미 굳혀져 익숙하고 편한 외래어 표현을 굳이 우리말로 바꿀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어단체 및 언어학계에서는 외래어나 신조어의 이 같은 남용이 자칫 우리 사회의 불공정과 차별, 배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은 쉬운 우리말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로 ‘소통’과 ‘인권 문제’, 그리고 ‘의미 전달의 정확성’을 꼽았다. 단지 언어(말)가 의사소통의 수단을 넘어서서 국민의 권리, 즉 인권을 실현하는 연장선상에 있다는 설명이다.

김슬옹 원장은 “언어라는 게 소통과 배려다. 쉬운 말은 소통을 더욱 잘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서 언어는 사람들의 삶과 직결되는 만큼 국민 생활의 질을 좌우하기도 한다고 했다.

세종국어문화원에 따르면 언어는 곧 인권이다. 김 원장은 “사람다운 어떤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주어지는 지식, 정보 등이 평등해야 하는데, 국민의 안전과 보건, 나아가 생명과 권리에 영향을 미치는 말(공공언어)이 알아듣기 어려울 때 국민은 위험에 노출되고, 알 권리를 침해당한다. 외국어와 한자 능력에 따라 차별당할 위험에 처한다”고 말했다.

또한 어려운 말은 정책과 사업 내용을 알리는 데에도 장벽이 돼 일의 효율을 떨어뜨리고 전 사회적인 비용의 낭비를 부른다고 지적했다. ㈔국어문화원연합회가 현대경제연구원에 의뢰해 연구한 ‘공공언어 개선의 정책 효과 분석’(2021년)에 따르면 공공언어를 개선하면 연간 3375억원의 경제 효과가 나타나고, 시간 비용 절감 효과는 민원 서식 1952억원, 정책 용어 753억원, 약관 및 계약서 791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원 서식에 쓰인 어려운 용어 때문에 우리 국민이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만 보면 2010년 약 170억원에서 2021년 약 1952억원으로 11.5배 늘어난 것이다. 때로는 배려하기 위해 선택한 ‘홈리스’(걸인)나 ‘실버’(노인)라는 외국어 차용이 되레 불편한 것을 감추고 차별을 덮어 또 다른 배제를 낳을 수 있다는 진단이다.

국민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공공언어, 국민의 정치 참여를 보장해주는 공론장의 언어를 다듬어야 하는 이유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 국어문화원연합회가 벌이고 있는 ‘쉬운 우리말 쓰기’ 확산 운동도 국민이 정보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김 원장은 “유튜브나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우리말인 ‘순화어’보다 외국어나 신조어를 자주 사용하면서 정보 소외층이나 세대 간 언어의 격차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며 “어려운 말을 사용하면 그 맥락과 단락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필수적인 정보를 알지 못하게 된다. 외국어 때문에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해선 안 된다.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우리말을 써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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