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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으로 떠나는 100년 전 덕수궁으로의 시간여행

'덕수궁 프로젝트 2021:상상의 정원'
근대제국 꿈 좌절된 고종 삶 그린 영상 등
현대미술·조경·만화가 등 전문가 참여
  • 등록 2021-09-14 오전 6:00:00

    수정 2021-09-17 오전 7:32:23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1897년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서 나온 뒤 거처로 이용한 궁궐이 덕수궁이다. 조선 초기 성종의 형 월산대군의 집터였던 덕수궁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궁궐로서 역할을 했다. 1919년 고종이 함녕전에서 승하하기까지 나라와 왕실의 크고 작은 사건이 덕수궁에서 일어났다. 석조전을 비롯해 덕수궁 곳곳에 세워진 서양식 건축물과 기하학적으로 꾸며진 서양식 정원은 근대기 덕수궁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처럼 격동의 역사 속에서 덕수궁에 살았던 인물들은 정원을 거닐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 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신혜우의 ‘면면상처_식물학자의 시선’(2021), 혼합재료(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정원’을 주제로 한 ‘덕수궁 프로젝트 2021:상상의 정원’이 그것이다. 덕수궁 정문인 대안문에 들어서서 짧은 금천교를 건너면 미디어아티스트 이예승이 설치한 QR이 나타난다. 스마트폰에 인식을 하면 덕수궁 정원과 관련된 이미지가 눈앞에 펼쳐지며 과거 덕수궁에 대한 상상력을 한껏 끌어올린다. 즉조당과 준명당 앞 정원에 설치된 십장생 중 하나인 사슴, 폐목을 잘라 만든 조선 여성들의 조각상 등이 만들어내는 덕수궁의 색다른 풍경은 마치 100여년 전으로 시간여행에 빠져드는 것만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덕수궁 프로젝트’는 궁궐 안에 현대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기획으로 2012년, 2017년, 2019년에 이어 네번째로 개최되는 것이다. 이번 ‘덕수궁 프로젝트’에는 현대미술가뿐만 아니라 조경가, 만화가, 식물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작가들은 수개월간 덕수궁을 드나들며 오랜 세월 동안 덕수궁과 함께해 온 식물과 정원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영상, 조각, 설치, 전통공예, 조경, 만화영상, 식물세밀화 등의 작품 10점을 덕수궁 곳곳에서 전시한다.

함녕전에서는 근대적인 대한제국을 꿈꿨으나 외세에 의해 꿈이 좌절될 수밖에 없었던 고종의 삶을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애니메이터 이용배와 조경학자 성종상이 제작한 애니메이션 ‘몽유원림’은 고종이 겪은 현실과 그가 꿈꿨지만 직접 가보진 못한 이상적 정원을 담았다. 평소 입장할 수 없는 함녕전 안을 전시 기간동안만 특별 개방해, 관람객은 고립된 삶을 살았던 고종이 바라봤던 덕수궁 정원의 모습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다.

이용배·성종상의 ‘몽유원림’(2021), 애니메이션(사진=국립현대미술관)
식물학자이자 식물세밀화가인 신혜우는 대한제국 황실 전속 식물학자가 존재했다면 어떤 공간에서 연구를 했을지 상상력을 발휘했다. 우리나라의 식물학은 일제강점기 나카이 다케노신 도쿄대 교수 등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들어왔다. 작가는 함녕전 행각에 전시된 ‘면면상처 : 식물학자의 시선’에 가상의 조선 식물학자 공간을 꾸몄다. 올해 봄부터 덕수궁에서 발견되는 식물을 대상으로 직접 채집과 조사, 관찰, 기록한 식물들을 표본과 그림, 글 등으로 표현했다. 대한제국이 망한 뒤 온 나라에 퍼져 ‘나라가 망할 때 돋아난 풀’로 불린 거대한 망초는 아픈 역사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권혜원 작가는 덕수궁 정원을 오랫동안 가꿔온 정원사들과 공존해온 새, 나무 등 자연의 대화를 보여준다. ‘나무를 상상하는 방법’에서 이들은 각자의 관점에서 덕수궁 정원이 어떻게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는지 설명한다. 작품이 설치된 중화전 행각 기둥의 재료인 금강소나무와 행각 주위의 나무들이 나누는 대화는 사람의 기억을 뛰어넘는 자연이 기억하는 역사를 전하기도 한다. 박혜성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문화재인 덕수궁을 존중·보존하면서 어떻게 현대미술과 어우러질까 고민이 많았다”며 “산책하듯 덕수궁을 거닐며 작품을 느긋하게 감상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시는 11월 28일까지.

김명범의 ‘원’(2021), 스테인리스 스틸과 혼합재료, 37x510x380cm(사진=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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