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한의학과를 졸업한 뒤 함소아한의원을 창업하고 한방제약회사까지 세운 최혁용 대표는 한의사 겸 사업가로서 탄탄대로를 달리던 중 돌연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행을 선택했다. 해외 진출 과정에서 우리나라 보건의료 정책의 한계를 실감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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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의 본질이 법과 제도의 문제라고 판단한 그는 한의대 졸업 20년만에 인하대 로스쿨에 입학했다. 그렇게 그는 2017년 40대후반의 늦은 나이에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그는 로스쿨 재학 중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실무실습을 받은 인연으로 현재 태평양 헬스케어팀에 소속돼 활동하고 있다. 최 변호사는 “한의사, 사업가 등 역할을 해봤기 때문에 의뢰인을 만나도 말씀이 낯설지 않고 의뢰인 입장이 거의 제 입장과 같다”며 “한의학, 보건정책학, 법학 등 다양한 학문을 섭렵한 것에서 오는 컨버전스(통합·융합·복합)의 유리함도 저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美·中·日 보면…의료일원화, 보건의료 문제 해법될 것”
잘 나가던 한의사를 변호사로 변신하게 만든 우리 보건의료 제도의 문제점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의료 공급의 문제, 1차의료(건강을 위해 가장 먼저 대하는 보건의료) 부재의 문제를 꼽았다. 그리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의료일원화’라고 주장했다.
최 변호사는 “우리나라에 한의대와 의대가 있듯이 중국에는 중의대와 서의대가 있다”며 “각각 중의사면허, 서의사면허를 취득하지만 면허의 범위는 똑같다”고 말했다. 각 면허의 전문성이 있을 뿐 배타성은 없다는 뜻이다. 하루 1만명 이상이 내원한다는 중국 최대 한방병원인 광안문병원은 중의학기법을 활용한 백내장수술로 유명하다. 또한 중국 서의사들이 가장 많이 처방하는 10대 의약품 목록 중 절반을 한약재가 차지하고 있다고 최 변호사는 설명했다.
미국과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에는 추나의학과 유사한 전통의학을 공부하는 정골의대(DO스쿨)를 졸업하고 응급의학과나 뇌신경외과 같은 분야로 레지던트 지원을 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대통령의 주치의인 숀 콘리가 바로 DO스쿨 출신 정골의사(Doctor of Osteopathic Medicine)다.
약 80개 의대가 있는 일본은 의사가 진료 과정에서 한약·침 등을 모두 사용한다. 의료보험 적용도 받는다. 최 변호사는 “일본 의사들이 가장 많이 처방하는 한약이 대건중탕인데 수술 후 장 유착방지를 목적으로 쓴다”며 “의료가 이원화된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의사와 한의사를 합치는 의료일원화를 통해 의료인력 부족 문제와 1차의료 부재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며 “국민 75%가 만성병으로 사망하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취약한 1차의료 분야를 확충·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교육통합이 우선…“관련 연구와 강의 꾸준히 할 것”
다만 의료일원화 이슈를 두고 한의학계와 의학계 모두 일부 반대의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최 변호사는 의료일원화에 앞서 우선 한의학과 의학간 교육과정을 통합해나가는 것부터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본인이 원하고 일정 자격을 갖추고 있다면 복수전공의 기회를 줘서 의사면허시험과 한의사면허시험을 모두 응시할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이다.
그는 변호사 자격을 갖춘 뒤 대한한의사협회장까지 지냈다. 당시 2만5000명 한의사들을 이끌면서 보건의료 시스템 개선을 위해 앞장섰다. 최 변호사는 “교육통합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모두 동의하고 합의한 바 있다”며 “최종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지만 방향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를 이룬 셈”이라고 설명했다.
최 변호사는 최근 감염병 전담 요양병원의 손실보상 관련 업무를 맡았다. 감염병의 국가적 대응과 민간자원의 활용, 이에 대한 보상 체계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합리적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