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호 작가, "유해진 독백, '이끼' 최고의 장면"(인터뷰)

  • 등록 2010-07-26 오전 11:51:58

    수정 2010-07-26 오후 12:32:12

▲ 윤태호 작가

[이데일리 SPN 장서윤 기자] "영화가 흥행에 탄력받으면서 만화책도 다시 잘 나가고 있어요. 근데 출판사에서 빨리 찍어줘야 하는데 속도가 영 느려 걱정인데요"(웃음)

25일로 200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 '이끼'의 원작 만화가인 윤태호(41) 작가는 요즘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영화가 개봉하면서 난생 처음 배우들과 무대인사에 동참하는가 하면 여기저기서 몰려드는 인터뷰 일정도 만만치 않다.

여기에 서울 서교동 상상마당에서 매주 1회씩 진행하는 예비 만화가·작가들을 위한 스토리텔링 수업도 병행하고 있어 그는 요즘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랄 정도다.

"늘 혼자 작업하는 만화가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영화 작업에 참여한 건 큰 고마움으로 남아 있어요. 다른 세계를 슬쩍 엿본 데 대한 흥미로움이 크게 남았죠" 만화 속 주인공 류해국처럼 유난히 빛나는 눈빛과 우렁찬 목소리를 지닌 그는 첫 영화 작업의 소감을 이렇게 표현한다.

폐쇄적인 농촌 마을에 들어온 청년이 아버지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을 파헤치면서 비밀을 간직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하나 둘씩 밝혀지는 내용을 담은 원작 '이끼'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탁월한 심리묘사와 한국 사회 권력의 작동기제를 날카롭게 비판한 시선 등으로 2년간의 연재기간 동안 무려 3600만 클릭 수를 기록하는 등 큰 인기를 모은 작품이다.

연재중 영화화가 결정됐을 때도 20여개에 이르는 영화 제작사에서 접촉을 했을 정도로 원작에 대한 인기가 높았다. 그만큼 영화 개봉 후 원작 팬들의 설전이 이어지고 있다.

윤 작가는 "작품에 대한 건설적인 비판은 곱씹어볼 만 하지만 때로 지나칠 정도로 비난을 퍼붓는 이들에게는 섭섭하다"며 "캐스팅 때도 그랬고, 영화를 제작한 이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줬으면…"이라는 당부를 들려주기도 했다.

▲ 윤태호
원작에는 없었던 영화 속 몇몇 장면의 대사를 강우석·정지우 감독과 공동 작업을 통해 직접 만들어내기도 한 윤 작가는 영화 작업을 "만화만 그릴 때는 알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해 본 기회"라고 평가한다.

예를 들어 큰 틀 속에서 명확한 결론은 짓지 않은 채 그림을 그려나가는 자신의 작업 스타일과 달리 상업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한 계획 하에 이뤄지는 점이 가장 달랐다고.

"만화가 단어 하나만으로 미묘한 뉘앙스가 형성이 된다면 영화는 좀더 확실해야 현장에서 오차가 없다"는 것. 실제로 만화와 크게 달라진 영화 엔딩 신의 경우 "고심 끝에 대사를 써서 촬영장에 가져갔는데 내가 너무 늦게 써 가서 촬영이 이미 끝나있더라"라며 웃음지었다.

이후에도 자신의 작품이 영화화된다면 '고마운 일'이겠지만 시나리오를 직접 쓰는 등 적극적인 작업은 못할 것 같다고. 윤 작가는 "나는 영화적 정확함보다는 애매모호함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귀띔했다.

그러나 첫 영화 작업을 통해 얻은 것도 많다. 특히 정재영 박해일 김상호 유해진 유선 등 쟁쟁한 연기파 배우들과 작업해 본 일은 큰 자양분으로 남았다.

영화 속에서 가장 달라진 캐릭터 중 하나인 이영지(유선)와 김덕천(유해진)에도 큰 애정이 솟는다. 마을에서 유일한 여성 캐릭터인 영지는 원작에서는 희생적인 인물이지만 영화 속에서는 보다 진취적인 분위기가 가미됐다.

윤 작가는 "만화 속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분이 더해져 재탄생된 것 같다"며 "영화 속 캐릭터가 만화 속 인물에 수혈을 해줬달까"라며 웃음짓는다.

그가 꼽는 '이끼' 속 명장면을 물어보자 고심 끝에 "종반부 이장의 비리를 신들린 듯 쏟아내는 김덕천(유해진)의 독백 장면"을 꼽는다. "원작과 달리 순수한 분위기의 캐릭터를 유지한 가운데 어떻게 그런 연기를 할 수 있는지 감탄스러웠다"는 것.
▲ 윤태호 작가



또, 박검사 역의 유준상이나 이영지 역의 유선이 만화와 몇몇 장면을 고스란히 재현한 부분에서도 전율에 가까운 감정이 느껴줬다고.

아쉬운 점은 없을까. 그는 "아쉽다기보다 영화와 만화라는 매체의 차이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라고 설명한다. "대사 속 단어 하나로 뉘앙스적 차이를 어필할 수 있는 만화와 달리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짜임새가 보다 확실한 표현으로 치밀하게 기획돼야 하는 점을 충분히 인지했다"고.

충무로 대표적인 '카리스마 감독'으로 불리는 강우석 감독과의 작업은 섬세한 면이 많았다.

윤 작가는 "강우석 감독님은 모든 이들의 의견을 경청한 후 고심 끝에 판단을 내리고서 실행하는 스타일"이라며 "흔히 생각하듯 '강하다'라기보다 섬세한 면이 많으셔서 다양한 타입의 영화인들이 강 감독님과 함께 작업하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라며 웃음지었다.

'이끼'의 흥행세는 계속될 듯 하지만 이제 그는 양영순, 강풀, 박철권 등 최근 가장 주목받는 만화 작가들과 의기투합한 회사 '누룩미디어'의 소속 만화가로 다시 돌아갈 참이다. 그는 "무대 인사는 딱 한번 했는데 그날 낮에 약까지 먹어야 했을 정도로 떨리고 긴장돼서 못 하겠더라"라며 손을 내두른다.

그가 준비중인 신작은 바둑을 소재로 한 샐러리맨의 성공담. 전작인 '이끼'보다는 훨씬 밝은 작품이 될 것 같다.

"한국 직장인들 참 열심히 살지 않나. 근데 어느 순간 회사 안에서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지 못한 채 회사라는 거대 집단 속으로 숨어들어가는 듯한 느낌이다. 바둑계를 떠나 샐러리맨에 도전하는 평범한 남성의 이야기를 통해 이 시대 '성공'이라는 테마를 다시 정립해보고 싶다"

아직 제목을 정하지 못했다는 그의 신작도 벌써부터 30-40대 직장인을 비롯한 다양한 독자층의 구미를 당기고 있다.
 
(사진=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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