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진단] 초연결시대, 암호화폐의 현재와 미래

탈중앙… 암호화폐는 초연결시대 산물
신뢰 확산, 기술발달로 화폐 속성 강화
현실· 가상세계… 법정·암호화폐 공존
기존 중앙은행, 금융권 기득권엔 균열
각국 중앙은행 암호화폐 발행 주목
편협된 인식 벗고 혁신의 싹 키워야
  • 등록 2018-01-30 오전 5:30:00

    수정 2018-03-18 오전 10:23:32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전문기자] 화폐는 믿음이다. 신뢰를 투영한다. 금, 은, 청동, 종이, 컴퓨터 액정의 아라비아 숫자까지 모두 돈이 될 수 있는 건 거래 당사자들간에 신용이 있기 때문이다. 화폐의 등장은 이 같은 믿음의 집단적 확산과정이다.

화폐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양태만 달라질 뿐이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초연결시대로 접어드는 패러다임의 전환기. 새로운 시대는 그에 부합하는 새로운 화폐를 요구한다. 5000년 화폐의 역사를 돌아보면 지금 떠오르고 있는 암호화폐(Cryptocurreny)는 혁신의 전환기에 태동한 미래의 화폐일지 모른다. 물론 그 유용성은 여전히 검증단계다

암호화폐, 초연결시대의 산물

비트코인(Bitcoin)과 각종 알트코인(Altcoin). 암호화폐는 이미 2000여개에 달한다. 지금도 실리콘밸리 등 전 세계 어디에선가 더욱 효율적이고 안전한 암호화폐가 대중 앞에 선 보일 준비를 하고 있을 터이다.

21세기 암호화폐의 무질서한 난립은 19세기초 미국 달러화의 혼돈을 연상케 한다. 법정화폐를 발행하는 중앙은행 없이 연방정부 허가에 따라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달러화를 발행하던 시기다. 남북전쟁 직전인 1859년에만 대략 1만여종의 달러화가 유통됐다.

달러화의 양산은 자유방임시대(Laissez-faire)를 배경으로 한다. 암호화폐의 경쟁적 난립은 초연결시대(Hyper-connected era)의 산물이다. 탈중앙, 자유, 분산, 분권…. 두 시대의 기본정신은 유사하다.

초연결시대는 여기에 개방과 공조, 조화와 협업을 특징으로 한다. 통신기술과 스마트폰의 발달, 그에 따라 구축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모두 하나로 연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시대다.

초연결시대 화폐의 부상은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적 혁신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블록체인은 상호신뢰를 보증하는 기술적 장치, 암호화된 금전거래를 인증한다. 중앙은행이나 금융기관이 아닌 전 세계 인터넷 네트워크에 모든 거래내역이 분산 저장 운영되는 분산형 데이터베이스다. 인터넷이 전자화폐를, 블록체인이 암호화폐를 낳았다.

암호화폐의 등장은 기존 화폐체제의 불신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기축 통화인 달러화의 위기가 고조된 2009년 1월, 최초의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이 등장한 건 우연이 아니다. 기존 화폐체제에 대한 신뢰저하, 그에 따른 새로운 질서의 모색. 초연결시대라는 시대적 배경과 블록체인 기술의 혁신성이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패러다임의 전환을 야기하고 있다.

암호화폐의 명과 암

암호화폐엔 중앙 집권적 통제장치가 없다. 거래 내역이 네트워트 사용자 모두에게 분산된다. 탈중앙, 분산, 분배의 신념이 공유되고 확산된다. 아날로그 시대의 금속이나 종이화폐, 디지털 시대의 전자화폐는 모두 중앙에 허브가 있다. 초연결시대 암호화폐와 기존 화폐들간 가장 큰 차이점이다.

암호화폐는 이제 맹아기다. 그래도 이미 일부 영역에선 기존 화폐기능을 대체한다. 암호화폐를 통한 해외 자금거래는 점차 확산되고 있는 모습이다. 기존 화폐와 달리 환율 리스크나 자본통제 등에 따른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외환통제국 중국이 암호화폐 거래를 금지할 수밖에 없는 건 이 때문이다.

블록체인의 신뢰성은 코인 형식의 인센티브로 강화된다. 블록체인의 기술적 발전은 암호화폐 수요를 늘린다. 블록체인의 기술적 변용을 등에 업고 암호화폐는 신뢰성과 투명성, 편리성을 무기로 점차 기반을 확대하고 있다.

물론 갈길은 멀다. 중앙은행의 법정화폐 발행이라는 기존 시각에서 보면 암호화폐의 분산체제는 다양한 정책적 논란을 야기한다.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대표적이다. 비트코인만 해도 공급량에 제약(채굴량 제한)이 있다. 2145년까지 2100만개의 비트코인만 생성되도록 설계됐다. 코인을 임의로 늘릴 수 없으니 가격 변동성도 확대된다. 이미 국내 시장은 전 세계에서 가장 심한 널뛰기장, 투기장으로 변했다.

이 때문에 화폐발행권을 독점해온 중앙은행이나 기존 은행들의 기득권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통화정책 수단의 제약으로 거시경제 관리는 꼬일 가능성이 높다. 암호화폐 등장은 기존 화폐체제의 변화 뿐 아니라 경제 금융 생태계 전반에 급격한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다.

정부의 가상화폐 대책이 혼선을 야기하면서 투자자들의 혼란도 가중되고 있다. 한 시민이 서울 중구의 한 가상화폐 거래소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갈팡질팡 정부 대책…혁신의 싹 짓밟는다

정부의 대응은 갈팡질팡이다. 투기광풍을 잡겠다며 메스를 들이댔지만 투자자들의 강력 반발에 슬그머니 물러섰다. 눈 앞의 부작용 해소에만 급급할 뿐 신기술, 혁신의 장을 마련하는 일엔 관심 없어 보인다. 무분별한 늑장대응이 버블을 증폭하고 혁신의 싹을 자르고 있다.

암호화폐는 익명성을 띠고 있다. 자금세탁, 불법해외송금, 마약 무기 밀매, 불법단체지원, 탈세, 뇌물 등 악용 소지가 많다. 투기버블도 심하다. 그러나 암호화폐 거래의 이 같은 부작용을 해소하는 일과 혁신의 물꼬를 트는 일은 별개의 문제다.

2014년 독일에 이어 지난해 일본이 암호화폐를 거래통화로 인정했다. 암호화폐를 달러처럼 ‘불태환 화폐(중앙은행이 가치를 보장하는 화폐)’로 규정했다. 미국의 각 주도 점진적으로 암호화폐를 제도권내로 편입하고 있다.

중국 러시아 등 유독 권위주의 체제의 국가들에서 거래소 폐쇄를 강행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탈중앙, 분산과 분배라는 암호화폐의 본질적 특성과 이들 정치체제는 양립하기 어렵기 때문일 터이다.

화폐의 진화…암호화폐는 법정화폐 보완 가능성

암호화폐의 미래는 안개속이다. “미래 금융시스템을 대체할 잠재력”(라가르드 IMF 총재) 이라는 낙관론과 “신기루”(워렌 버핏)라는 비관론이 공존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국제결제은행(BIS)이 일부 중앙은행들에 암호화폐의 직접 발행을 권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웨덴 중앙은행 릭스뱅크가 e-Krona(가칭)라는 암호화폐 발행을, 잉글랜드 은행은 파운드화에 연동된 암호화폐 도입을 각각 검토하고 있다. 중앙은행의 암호화폐는 법정통화로서 효력을 내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끈다.

암호화폐를 둘러싼 대부분의 논란은 투기버블과 기술적 한계에 대한 우려에서 나온다. 그러나 신기술 도입과정에서 일정 버블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2000년대 초 닷컴 버블붕괴로 정보기술(IT)기업의 혁신성이 도마에 올랐지만 그 속에서도 아마존·구글 같은 신생 기업들이 성장하며 IT생태계를 구축했다.

암호화폐, 블록체인 기술이 아직은 초기단계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해킹, 보안, 처리속도 등 각종 부작용은 점차 해소될 가능성이 높다. 비트코인만해도 처리 용량 제약, 그에 따른 속도 지연으로 복제코인이 등장하는 등 산적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이더리움(Ethereum)의 등장에서 보듯 기술적으로 진일보한 암호화폐는 계속 나타난다. P2P(Peer to Peer) 네트워크로 구현된 화폐의 본질적 특성이다.

화폐는 진화한다. 암호화폐는 계속 변형, 발전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극히 일부 암호화폐만이 살아남겠지만 이 과정에서 화폐로서의 속성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가 병존하듯 법정화폐와 암호화폐도 공존 가능성이 높다. 법정화폐를 완벽히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기존 화폐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쪽으로 점차 전진해 나갈 것이다.

모든 혁신은 제도권 진입과정에서 진통을 겪는다. 눈 앞에 보이는 투기 잡겠다고 혁신의 싹을 짓밟는 우를 범해선 안 될 일이다. 암호화폐의 운명은 결국 초기 도입과정에서 정부와 사회구성원이 얼마나 포용적인 자세로 이를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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