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묘수·꼼수·무리수·덜컥수·자충수

  • 등록 2019-05-20 오전 5:31:00

    수정 2019-05-20 오전 5:31:00

[신세철 경제칼럼니스트·전 금융감독원 조사연구 국장] 바둑에서 최선의 수를 찾으려면 청심과욕(淸心寡慾) 즉 ‘마음을 깨끗이 하고 욕심을 적게 내라’고 하였다. “묘수 세 번 두면 바둑 진다”라는 격언은 묘수를 내야만 할 정도로 형세가 불리하다는 뜻이지만, 묘수를 반복하다 보면 자칫 꼼수나 무리수가 되고 결국 스스로의 함정을 파는 자충수(自充手)가 된다는 뜻이다. 세상살이에서 변법
또는 변칙을 쓰다가는 제 꾀에 넘어가 일도 그르치고 자신도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심한 방책은 묘수처럼 보여도 꼼수가 되고 결국에는 자충수가 되어 혼란을 초래한다. 경제에는 특별한 묘수가 있을 수 없는데 묘기나 재주를 부리다가는 낭비와 비효율로 낭패 당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을 절망으로 이끈 경제 재난들은 대부분 욕심 사나운 권력이 경제현실을 무시하고 묘수를 내려다가 초래한 재앙이었다. 몇 가지 쉬운 예를 들어보자.

주식시장 12·12사태는 주가지수가 정권에 대한 인기도라고 착각한 권력이 주가를 끌어올리려 중앙은행 발권력까지 동원하는 기상천외한 묘수 아닌 무리수가 주식시장 자금조달기능을 파괴한 사태다. 1989년 4월 1007을 기록한 코스피 지수가 860까지 밀리자 돈을 퍼부어 주가를 끌어올리려 했지만 투자자의 신뢰를 잃어버린 시장은 1992년 8월 467까지 추락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는 ‘국민소득 1만 달러 달성’이라는 허울에 매달려 얼마 없는 외화를 바닥까지 긁어내서 외환시장에 내다 팔며 환율을 억누르려다 오히려 폭등시킨 자충수였다. 대외신인도가 땅에 떨어져 갈팡질팡하던 정부는 갑자기 “금융기관 대외부채를 정부가 보증한다”는 덜컥수로 환율을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게 만들었다. 나라는 지불불능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벤처기업 육성이라는 허울로 코스닥 주가를 올리려 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거품이 한계를 넘었는데도, 경제관료가 나서서 “코스닥 시장이 저평가되었다”며 주가를 더 타오르게 부채질하는 꼼수를 부렸다. 내재가치와 크게 괴리된 코스닥 주가는 버티지 못하고 2001년 초 바위에 부딪히는 물거품처럼 부서져 최고수준의 1/12 이하로 추락했다. 수많은 투자자들이 피눈물을 흘렸다.

경기를 지나치게 부양하려는 과욕으로 ‘절약의 역설’을 외치며 카드 사용을 통한 과도소비를 유도하다 ‘2003 카드대란’ 사태를 촉발시켰다. 가계부실을 초래하고 소비수요기반을 흔들리게 하였다. 초단기로는 경기를 부추기는 묘수였는지 모르지만 결국 한국경제의 뇌관인 가계부채 사태 시발점이 되어 경제성장 동력을 훼손시키는 자충수로 변하였다.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격언은 경제순환에는 묘수가 없다는 의미다. 무릇 가계·기업·국가 경영이 성공하려면 경제흐름을 역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진리를 담고 있다. 현실을 무시한 대책은 무리수나 자충수로 변한다는 이야기다. 조금만 멀리 생각한다면, 오늘날 한국경제 위험과 불확실성의 진원지는 경기침체가 아니라 성장잠재력 추락이다.

경제현실에 버거운 ‘소득주도성장’이 의지나 구호와 반대로 성장잠재력을 잠식시키는 자충수가 될까 두렵다. 기업이 이윤추구동기로 재화와 용역을 ‘더 싸게, 더 좋게, 더 빨리’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일자리가 생겨야 성장잠재력이 확충된다. 나랏돈을 화수분이라 착각하고 생산 없는 일자리를 무수히 만들어내면 성장잠재력은 퇴락할 수밖에 없다. 위기는 날벼락처럼 오지 않고 곪고 곪은 문제들이 쌓였다가 터지는 것이다.

묘수가 자주 등장하는 조직이나 사회에서는 어느덧 불신풍조까지 생겨난다. 사람들의 마음을 반죽하려는 ‘립 서비스’나 연출은 과거에는 묘수로 통했는지 모른다. 정보의 전파속도가 빛처럼 빠른 사회에서는 자칫하다 헛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꼼수나 자충수로 변할 수 있음을 깨우쳐야 한다. 거기서 비롯되는 심리위축은 경제순환에 장애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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