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 칼럼] ‘코로나 전쟁’ 이길 수 있을까

  • 등록 2020-03-20 오전 5:00:00

    수정 2020-03-20 오전 5:00:00

알베르 카뮈는 ‘페스트’에서 평범했던 도시가 전염병으로 순식간에 무너지는 극한 상황을 보여준다. 탈출구가 막힌 공간에서 고통과 죽음이 이어지는 비극적인 모습을 실존주의 시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위기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통해 절망과 공포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희망의 의지를 강조한다. 주인공을 내세워 “인간에게는 경멸할 것보다 찬양해야 할 게 더 많다는 것을 배웠다”고 읊조리는 끝 부분의 대사가 하나의 결론이라면 결론이다.

그 자신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 태어나 빈곤한 환경에서 자라난 처지였다. 노동자였던 부친은 1차 대전 중 전사했고,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대학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폐결핵으로 학업을 포기했을 만큼 불운을 겪기도 했다. 이처럼 역경을 견뎌낸 만큼 제2차 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7년 운명에 맞서 싸우는 인간의 모습을 소설로 발표함으로써 전후 정서적 혼란 상태에 빠져 있던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소설의 무대를 옮겨온다면 지금이 훨씬 더 심각하다. 눈앞에 시시각각 벌어지는 상황으로 감각적인 반응이 더욱 날카로울 것이라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다. 알제리의 해안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구성과 달리 지금은 세계적인 재앙으로 확대되는 중이다. ‘팬데믹’ 선포에 따라 각국의 국경이 폐쇄됐고 도쿄올림픽도 무산 위기에 처하게 됐다.

세계대전이 끝나고도 몇 차례의 중대한 고비를 맞기는 했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지구촌의 일상이 순탄할 것으로 여겨지던 터였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폭염과 허리케인, 그리고 지진과 해일이 빈번해지는 가운데서도 낙관적인 전망은 확대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다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인류 미래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상황이다. 각국에서 사망자가 속출하는 등 재난영화에서나 등장할 만한 장면들이 속출하고 있다. 연일 곤두박질치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모습에서도 위기 인식이 드러난다.

우리 주변으로 눈길을 돌려봐도 마찬가지다. 사태 초기에 코로나 발원지인 중국에 대한 입국통제를 늦추고도 뒤늦게 모든 입국자에 대해 특별입국절차를 적용하게 됐다는 것부터가 난맥상이다. 마스크의 수급상황도 파악하지 못한 채 혼선을 빚다가 ‘5부제’ 조치까지 취하게 됐다. 부작용을 걱정하면서도 일단 위기를 넘기고 보자며 온갖 경제 처방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 방역활동이 안정 기반을 확보한 단계에서 경제 살리기로 관심이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노력은 노력대로 쏟아 붓고도 효과를 제대로 거둘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이다. 어제만 해도 50조원 규모의 특단 금융조치로 시중 자금난을 해소해 주겠다는 방안이 발표됐지만 반응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분위기다. 기업을 살리겠다면 경영여건을 크게 훼손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주52시간제의 부작용부터 되돌려놔야 한다. 탈원전 정책으로 멀쩡하던 기업을 흔들어댄 것도 정책 오류다. 기업들의 고충 요인부터 풀어줄 필요가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구성원들이 지향해야 되는 가치관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무너져 버렸다는 사실이다.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당위성에서만 의견일치를 이룰 뿐 이념에 따른 정파·계파·집단별 속셈은 천차만별이다. 내달로 다가온 총선을 앞두고 정당별로 이뤄지는 공천 과정을 지켜보면서 실망감을 감출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을 앞서서 이끌어가야 하는 정치 지도자들부터 믿음을 주지 못하는 현실이다.

소설 속에서도 전염병에 대응하는 온갖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부조리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위기극복 노력이 금방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결국 카뮈의 지적대로 자기 생각만 하는 사람들에게 교훈을 깨쳐주려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재앙을 던진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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