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 칼럼] ‘6·25전란 70주년’의 현실

  • 등록 2020-06-26 오전 5:00:00

    수정 2020-06-26 오전 5:00:00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되면서 한반도가 다시 긴장관계에 빠져들었다. 남북 화해의 상징이라던 연락사무소 청사가 벽돌더미로 폭삭 주저앉는 데는 불과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청와대와 평양 노동당 중앙위원회 사이의 직통전화도 그대로 끊겨졌음은 물론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판문점과 평양에서 두 차례나 남북 정상회담이 열려 상호 이해와 협력을 다짐했던 약속이 북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파기된 것이다.

비무장지대(DMZ)에서 진행되던 북한군의 무력도발 예행 과정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긴급 지시로 보류됨으로써 그나마 한숨을 돌린 정도다. 여동생인 김여정을 전면에 내세워 군사행동도 불사하겠다며 강경 분위기를 띄우더니 마치 선심 쓰듯이 급류의 방향을 틀어버린 것이다. 그러고도 정경두 국방장관에게 “경박하고 우매한 행동을 자중하라”는 경고가 날아들고 있으니,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엄포가 아직 완전히 가라앉은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이미 우리는 북한 도발에 의한 동족상잔의 참상을 겪은 바 있다. 소련과 중공을 끌어들여 한 핏줄을 나눈 동족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눈 것이 그들이다. 그렇게 시작된 6·25전란으로 국토가 잿더미로 변했고, 피붙이를 잃은 가족들의 절규가 허공에 메아리쳤다. 국민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경제를 일으켜 세운 지금에도 비극의 기억은 여전하다. 세월이 흘렀어도 북녘을 바라보며 눈물과 한숨으로 지새는 이산가족들은 과연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가. 이들의 상봉 기회를 막은 데다 편지교환조차 허용하지 않는 게 또한 저들의 얄팍한 아량이다.

굳이 7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두 차례에 걸친 연평해전과 천안함 폭침사건이 말해주듯이 간헐적인 도발이 자행되고 있다. 연평도의 민간지역에 대해서도 서슴없이 포격이 퍼부어졌다. 불과 10년 전에 벌어진 아비규환의 기억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대표단을 보낸다고 할 때부터 그들의 진정성에 질문을 던졌어야만 했다. 웃으면서 악수를 나눈다고 해서 속마음까지 헤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끝내 협박의 언사를 퍼부으며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처사도 마찬가지다.

거듭 핵무기 포기를 약속하고도 지키지 않는 태도에서도 북한의 속셈을 확인하게 된다. ‘선대의 유지’라는 허울을 앞세웠으나 결국은 시간을 벌려는 술책이었을 뿐이다. 지금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를 향해 핵보유국으로 인정해 달라며 버젓이 주장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 역대 정부가 방조자 역할을 했던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갖은 조롱과 험담에 한마디 대꾸도 못하는 판국이니만큼 자식들 세대에 이르러서는 핵무기에 볼모로 잡히는 결과가 되지나 않을까 정말 걱정이다.

6·25에 대한 역사적 경각심도 상당히 허물어져 버렸다. 정치 지도자들부터가 6·25에 대해서만큼은 애써 외면하는 듯하다. 임시정부나 위안부 문제, 광주민주화운동, 세월호사건 등에 대해서는 서로 경쟁하듯 관심을 보이면서도 6·25는 거의 뒷전이다. 국민적 공감대에 부합하기 어려운 종전선언 주장이 되풀이되는 것도 이해하기 쉽지 않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 문제를 제쳐놓은 것이나 대북전단을 막으려는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심지어 나라를 지키다 국립묘지에 묻힌 경우에 대해서도 친일행적을 들어 묘를 파내야 한다는 얘기까지 들려온다.

이런 여건에서 국가 안보가 제대로 지켜질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국민들의 막대한 세금이 들어간 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됐는데도 남북군사합의 파기가 아니라는 단순 문구적인 해명에 국민들은 고개를 돌리고 있다. 북한이 도발해올 경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국방부의 경고가 이미 신뢰를 잃어버린 이유다. 6·25의 기억이 자꾸 잊혀져 가는 현실이 순국선열들에게 부끄럽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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