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은행이 제 역할을 잊으면 벌어지는 일

'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의 저자
  • 등록 2023-03-27 오전 6:15:00

    수정 2023-03-27 오전 6:15:00

[신세철 경제칼럼니스트]세계화에 따른 분업화 이점이 커져가다가 탈세계화로 방향이 급변하면서 세계경제는 새로운 불확실성이 대두되는 국면이 도래하고 있다. 미 연준(Fed)은 지난 3월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정도 올린다는 선제 안내를 시장에 보냈지만 SVB은행, CS은행 사태 같은 금융불안이 벌어지자 0.25%포인트 올리는데 그쳤다. 금융 정책방향과 시장반응이 엇갈리는 현상이 나타나면 금융부문과 실물부문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꼬여가는 비정상의 전조증상이라고 할 수 있다. 어디서부터 비롯됐는지 확실치 않지만 경제사회에 불안한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는 신호 아닐까.

실리콘밸리은행(SVB)은 예금이 늘어나도 자금수요자인 벤처기업에게 대출해주기보다는 (장기)국채와 주택저당채권 같은 장기자산을 2021년 말 최근까지 무려 1280억 달러(총자산대비 55%)나 쌓아놓았다. 세계경제가 장기간 ‘초저금리 타성’에 젖어 있을 때, 물가상승으로 금리가 크게 오르자 인플레이션 현상이 일시적이라 오판하고 불원간 금리가 하락하리라고 오판하고 장기채 매입에 집중했다. 예상과 달리 인플레이션이 수그러들지 않고 끈질기게 이어지자 Fed는 4연속 자이언트 스텝으로 기준금리를 대폭 인상했다. 예상했던 금리 하락이 오리려 더 상승하면서 채권시장에서 거두려던 매매차익은 꿈이 되고 현실은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다.

SVB의 파산은 빠른 시간 내에 큰돈을 챙기려는 욕심 때문에 예금은행 본연의 자세인 금융중개기능의 건전성을 외면한 쓰라린 대가였다. 자금공급자는 대개 가계여서 현금대신 보유할 금융자산의 수익성이 안정되고 유동성은 높아야 신속한 대체투자가 가능하다. 자금수요자는 주로 기업으로 자금을 공장건설 같은 용도에 장기 사용하지만 경기변동에 따라 자산의 가치변동이 심하고 유동성은 제약된다. 이렇듯 성격이 다른 두 부문을 연결하는 금융중개기능이 효율적으로 발달해야 경제적 적응능력이 커지며 생산성도 향상된다. 실생활에 필요한 아무것도 만들지 못하는 금융회사는 사기업이면서 금융중개라는 공공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사회적 책임이 크다.

SVB의 중개기능 훼손 사태는 금리인상 기조가 지속되면서 예금을 반환하기 위해 장기채권을, 금리인하 기회를 기다리지 못하고, 헐 값으로 팔아야만 했기에 발생한 손실 때문이다. 게다가 보유한 장기채권의 평가손실이 막대하다는 소문이 시장에 떠돌다 뱅크런 사태가 순간에 표면화됐다. 금융중개기능이 부실하고 자산관리 원칙이 없으면 합리적 판단을 하지 못하여 쓸데없는 낙관론과 비관론이 교차된다. 금융상품의 가치와 가격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다가는 시장의 흐름을 거꾸로 읽게 된다. 이익을 크게 내려는 욕심을 부리면 가치와 가격의 괴리를 증폭시켜 불안감을 일으켜 장기화되다보면 금융위기로 치닫게 된다.

SVB의 예금인출 사태는 스마트폰 뱅크런으로 전광석화처럼 전파되어 시장에 떠돌았던 불안의식이 일순간에 실체화되는 모습을 나타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이 신속하게 모든 금융기관 예금을 보장하겠다는 선언은 언뜻 섣부르고 무책임한 대응 같이 비쳐지기도 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촉발시킨 리먼브라더스 사태에 대한 뿌리치지 못할 트라우마 때문인지 모른다. 어쩌면, 문제가 심각하면 심각했지 간단치 않다는 메시지를 세계 금융시장에 보냈는지 모를 일이다.

금융시장에서 가치와 가격의 괴리현상이 발생하더라도 시차를 두고 가격은 결국 가치에 수렴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시장 쏠림현상이 지나치면 원상회복이 장기화되고 보유자산이 한쪽으로 집중되다보면 기다릴 시간 여유를 갖지 못해 예기치 못할 사태가 돌발하게 마련이다. 대공황 같은 세계경제위기 원인을 되돌아보면, 금융중개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못해 금융부문이 실물부문 변화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불불능사태가 번지면 국민세금을 퍼부어야 하는 금융회사에 대한 금융중개기능 관리·감독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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