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은행(SVB)은 예금이 늘어나도 자금수요자인 벤처기업에게 대출해주기보다는 (장기)국채와 주택저당채권 같은 장기자산을 2021년 말 최근까지 무려 1280억 달러(총자산대비 55%)나 쌓아놓았다. 세계경제가 장기간 ‘초저금리 타성’에 젖어 있을 때, 물가상승으로 금리가 크게 오르자 인플레이션 현상이 일시적이라 오판하고 불원간 금리가 하락하리라고 오판하고 장기채 매입에 집중했다. 예상과 달리 인플레이션이 수그러들지 않고 끈질기게 이어지자 Fed는 4연속 자이언트 스텝으로 기준금리를 대폭 인상했다. 예상했던 금리 하락이 오리려 더 상승하면서 채권시장에서 거두려던 매매차익은 꿈이 되고 현실은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다.
SVB의 파산은 빠른 시간 내에 큰돈을 챙기려는 욕심 때문에 예금은행 본연의 자세인 금융중개기능의 건전성을 외면한 쓰라린 대가였다. 자금공급자는 대개 가계여서 현금대신 보유할 금융자산의 수익성이 안정되고 유동성은 높아야 신속한 대체투자가 가능하다. 자금수요자는 주로 기업으로 자금을 공장건설 같은 용도에 장기 사용하지만 경기변동에 따라 자산의 가치변동이 심하고 유동성은 제약된다. 이렇듯 성격이 다른 두 부문을 연결하는 금융중개기능이 효율적으로 발달해야 경제적 적응능력이 커지며 생산성도 향상된다. 실생활에 필요한 아무것도 만들지 못하는 금융회사는 사기업이면서 금융중개라는 공공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사회적 책임이 크다.
금융시장에서 가치와 가격의 괴리현상이 발생하더라도 시차를 두고 가격은 결국 가치에 수렴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시장 쏠림현상이 지나치면 원상회복이 장기화되고 보유자산이 한쪽으로 집중되다보면 기다릴 시간 여유를 갖지 못해 예기치 못할 사태가 돌발하게 마련이다. 대공황 같은 세계경제위기 원인을 되돌아보면, 금융중개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못해 금융부문이 실물부문 변화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불불능사태가 번지면 국민세금을 퍼부어야 하는 금융회사에 대한 금융중개기능 관리·감독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