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 재발 막으려면

  • 등록 2018-01-29 오전 6:00:00

    수정 2018-01-29 오전 6:00:00

[이데일리 이슬기 기자] 지난해 10월 서울지방경찰청이 ‘실종수사체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중학생 딸의 친구를 살해한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에서 초동수사의 문제점이 드러나자 경찰이 부랴부랴 만든 대응책이다. 경찰은 서울 31개 경찰서에 실종수사 전담팀을 신설해 실종사건 발생시 초동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야심 차게 만들어진 실종팀이건만 실종팀 경찰들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다. 업무부담은 상당한데 실적을 쌓을 수는 없는 실종팀의 성격 때문이다. 서울 모 경찰서 실종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경찰은 “하루에 실종신고는 평균 5~6건에 많으면 10건까지도 들어오는데 범죄에 연루된 실종 건은 0건에 수렴한다”며 “범죄 연루 실종건이 일어나 범인을 검거하지 않는 이상 결국 검거실적은 ‘0’이 되니 승진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실종자들은 몇 시간이 지나면 자진 귀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등학생 자녀는 엄마에게 혼날까 봐 휴대전화를 끈 채 PC방에서 게임을 하다가 집에 돌아가고, 술에 취해 사라진 여자친구는 배터리가 방전된 핸드폰을 들고 길을 헤매다 집으로 돌아간다. 실종자가 자진 귀가 한 것은 천만다행인 일이지만 이런 경우 실종팀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게 된다. 경찰수사로 사건이 종결된 게 아니라 실종자가 제 발로 돌아감으로써 ‘저절로’ 종결됐다고 보는 까닭이다.

그러나 실종팀 경찰들은 실종자가 자진 귀가할 때까지 적어도 6~7시간은 실종자가 있을 만한 장소를 모두 뒤지는 등 고된 발품을 팔아야 한다. 만의 하나라도 납치 등 범죄에 연루됐을 수 있기 때문에 방심은 허용되지 않는다.

인근에 있는 수십, 수백 개의 CCTV를 1초 단위로 모두 돌려보고 주민과 실종자의 지인들을 상대로 탐문수색에 들어간다. 그럼에도 경찰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실종자가 집에 돌아가서 다행이라고 느끼는 안도감과 간혹 실종자를 먼저 찾았을 때 느끼는 보람이 전부다. 경찰청에서도 실종전담팀에 배치할 경찰을 찾는 데에도 꽤 고생했다는 후문이다. 아무리 열정이 넘쳐도 고생만 하고 보상은 기대할 수 없는 팀에서 언제까지나 초심처럼 수사하긴 어렵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실종 수사는 다시 느슨해질 것이고 그 빈틈을 타 제2, 제3의 이영학 사건이 독버섯처럼 발생할 것이다.

제 2의 이영학 사건을 막으려면 실종 수사에 대한 내부 평가를 강화함으로써 일할 동기를 부여하는 게 우선이다. 그래야 베테랑 경찰도 실종팀 일을 기꺼이 맡겠다고 나설 것이며 수사의 전문성도 높아질 것이다. 이대로 실종팀이 뒷방신세가 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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