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 칼럼] ‘문빠’들의 행진, 누가 말릴 것인가

  • 등록 2020-02-21 오전 5:00:00

    수정 2020-02-21 오전 5:00:00

굳이 따지자면 침체된 경기가 문제였다. 가뜩이나 불경기에 신종 코로나까지 겹친 탓이다. 장사가 그럭저럭 굴러가기만 했어도 반찬가게 아주머니에게서 ‘거지같다’는 표현이 불쑥 튀어나왔을까. 문재인 대통령이 “요즘 어떠시냐”고 물어보자 “거지같아요. 너무 장사가 안 된다”라고 답변한 것이다. “울게 생겼어요”라고도 했다. 문 대통령이 최근 충남 아산의 중국 우한 교민 임시생활 시설을 찾은 길에 근처 전통시장을 들렀을 때 있었던 짤막한 대화 장면이다.

그보다 며칠뒤 문 대통령이 남대문시장을 방문했을 때도 대화 내용은 거의 비슷했다. 상인들은 “경기가 너무 안 좋다”며 “살려 달라”고까지 하소연했다. 매출이 절반이나 줄어들었다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문 대통령 일행을 외면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 정세균 국무총리로 인한 해프닝까지 추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상인들을 위로한다면서 “요새 손님이 적으니까 편하겠다. 그동안 벌어놓은 돈으로 버텨 달라”고 말했다는 그 독특한 화법 말이다.

그런데도 유독 그 반찬가게 주인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이른바 ‘문빠’(문 대통령 지지자)들이 댓글 공세를 퍼부으며 신상털이까지 나섰다고 한다. 높으신 분의 면전에서 불경스런 표현을 썼다는 이유에서다. 당사자로서는 솔직하게 답변했다가 졸지에 뭇매를 맞게 됐으니 “사람 만나는 게 무섭다”고 진저리칠 만하다. 악의가 포함된 답변도 아니었다. 결국 문 대통령이 강민석 대변인을 통해 상황 정리에 나섰으나 뒤끝이 개운치 않기는 여전하다.

이번 논란이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의 칼럼 사태에 연이어 벌어졌다는 자체에서 심각성이 드러난다. ‘민주당만 빼고’라는 칼럼을 신문에 기고했다가 여당 지지자들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고 말았다. 더불어민주당에 의한 고발조치가 여론의 반발에 떠밀려 취하된 단계에서 임 교수를 다시 고소한 것도 그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거지같다’는 표현을 들어 시골 도시의 반찬가게 주인을 비난하는 성토가 이어진 것이다.

이런 사례가 처음은 아니다. 과거 민주당 경선 때 안희정·이재명 후보에게 쏟아졌던 비난 문자도 바로 그것이다. 본인들이 질려 버린 것은 물론 당 안팎에서도 “국정원 댓글부대와 동일선”이라거나 “히틀러 추종자가 연상된다”는 등의 비판이 제기됐을 정도다. 오죽하면 “문빠는 환자다. 치료가 필요하다”는 지적까지 나왔을까. 그러나 당시 문 대통령이 “경쟁하다 보면 있을 수 있는 양념”이라고 감쌌으니, 집권을 이룬 마당에 이들의 위세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들의 목소리가 인터넷 댓글로 표명되는 것만은 아니다.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와 대규모 시위대를 이루기도 한다. 지난해는 조국 전 법무장관의 가족비리가 차례로 드러나는 가운데 서초동으로 몰려들어 오히려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내세우며 역공을 펼치기도 했다. 수사를 지휘하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퇴진을 요구한 것은 물론이다. “조 전 장관에 대해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는 문 대통령의 입장이 바뀌지 않는 한 이들의 태도도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도 또 다른 사태가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진다. 민주당 내에서 조 전 장관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보였던 금태섭 의원의 총선 공천이 불투명해진 것이다. 경쟁자로 뛰어든 김남국 변호사가 조 전 장관 지지자였다는 사실이 우연의 일치라고 볼 수는 없다. 역시 극렬 지지자들이 나서 ‘금태섭 제명’을 요구하며 민주당 게시판을 도배하고 있는 모습이다. 마치 국정의 열쇠를 쥔 듯한 기세다. 자기들도 ‘표현의 자유’를 누려야겠다고 내세운다면 할 말이 없지만 일방적인 힘의 논리로 상대방을 억누르려 든다면 폭력이나 다름없다. 집권당조차 눈치를 보는 ‘문빠’들의 행진을 막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파국을 초래하게 될 뿐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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