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때문에 최근 유럽연합(EU)이 꺼내 든 탄소국경조정제도(CBMA), 일명 ‘탄소국경세’는 뼈아플 수밖에 없다. 탄소국경세가 도입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산업부문 탄소배출량은 1위인 우리나라의 부담이 가장 클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예상됐던 일임에도 별다른 준비를 하지 못한 채 위기를 고스란히 맞게 됐기 때문이다.
CBMA는 탄소배출량이 EU 내 규정 기준보다 많으면 탄소배출권을 구매해야 하는 방식이다. 세금은 아니지만 일종의 관세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해 탄소국경세라 불리고 있다.
국내에서는 탄소 배출량이 많은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업계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고, 국내 탄소 배출의 17%를 차지하는 철강업계의 타격이 가장 클 것으로 보인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회계법인 EY한영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 철강업계는 EU 수출액의 약 12%를 탄소국경세로 부담해야 할 정도다.
이에 정부는 철강, 알루미늄 등 피해가 예상되는 기업에 대해 세제를 감면해주거나 낮은 이자로 대출을 해주는 등 금융 지원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아직 시간이 있는 만큼 한국의 탄소배출권거래제(ETS) 등을 내세운 외교적 대응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EU가 우선 2023년부터 2025년까지를 시범 기간으로 두고 탄소배출량을 신고하도록 하고 2026년부터는 탄소비용을 부담하도록 할 계획인 만큼 그 사이 외교 역량을 동원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 같은 정부의 반응을 두고 ‘안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EU에 이어 미국도 탄소국경세 카드를 꺼내 들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이 때문에 탄소국경세가 새로운 무역장벽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는다. 이미 ‘녹색 무역장벽’, ‘친환경 무역장벽’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정부가 할 일은 탄소국경세 유예기간 중 EU와 협상을 잘 끝내거나 기업의 세금을 줄여주는 것이 아니다. 중장기적으로 국내 기업들이 저탄소 생산을 확대할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하고 선제적으로 기후에 대응하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특히 탄소 중립 등 기후 정책은 정권과 상관없이 연속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후악당의 오명을 쓰고도 탄소국경세라는 청구서를 받아드는 이 경험을 되풀이하지는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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