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녹취록 방송과 탐사저널리즘의 본령

  • 등록 2022-01-25 오전 6:15:00

    수정 2022-01-25 오전 6:15:00

[김한규 서울변호사회장]지난 16일 저녁 MBC 시사 프로그램「스트레이트」에 채널을 고정했다. 그동안 베일에 싸였던 국민의 힘 윤석열 후보 배우자인 김건희씨가 인터넷 매체인 서울의 소리 기자와 대화를 나눈 녹음파일이 공개되기 때문이었다.

김씨가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은 윤 후보가 검찰총장에 임명되어 청와대에 갔을 때 찍힌 사진 속에서였다. 윤 후보가 대통령 후보로 등장하면서 김씨에 대한 경력 부풀리기 등 온갖 의혹이 제기되었을 때도 그는 잠시 사과를 하기 위해 등장했을 뿐이었다. 시청자들은 그동안 궁금했던 사안에 대해 「스트레이트」가 해소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분명히 있었다.

드디어「스트레이트」가 시작되었다. 방송 전에 이미 찌라시를 통해 김씨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일부 공개가 되었다. 따라서「스트레이트」가 과연 녹음파일을 어떤 방식으로 방송에 녹여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가 정말로 궁금했다. 그러나 방송은 김씨와 몰래 녹음한 기자의 목소리 몇 번 듣고 허무하게 끝났다. 그 순간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취재도 없는 녹음파일만 듣다 보니 유튜브 방송을 듣는 느낌이 들었다.

이후 MBC는 당초 23일에도 「스트레이트」에서 녹음파일 방송을 이어간다고 했지만 이를 취소하고「뉴스데스크」에서 21일 김씨가 운영하는 사무실이 선거캠프였다는 의혹, 22일 김씨가 관상을 보는 등 무속과 관련된 발언을 했다는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기자는 김씨와 작년 7월부터 12월까지 5달 동안 모두 53회에 걸쳐 7시간 45분에 달하는 대화를 몰래 녹음해서 MBC에 전달했다. 공개된 녹음파일에는 기자가 김씨에게‘누나’라고 호칭하고 있다. 아마도 대화의 90% 이상이 사적 대화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MBC가 아주 쎈 내용이 있으면 벌써 공개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자는 작정하고 김씨의 환심을 얻은 후 대화를 유도하고 녹음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고발사주’같은 윤후보와 관련된 각종 의혹에 대해 김씨에게 물어보았을 가능성이 높지만 원하는 답변이 나오지 않아 보도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친분을 유도하고 몰래 녹음한, 그것도 대화의 대부분이 사적 내용인 녹음파일을 공개하는 것은 취재윤리에 반하지만 김씨가 대선후보의 배우자이므로 공적 인물에 해당하고, 그의 견해는 공적 관심 사안에 해당하므로 서울의 소리가 유튜브에서 트는 것은 알권리 차원에서 허용된다고 본다. 그러나 직접 김씨를 취재한 것이 아니라 녹음파일을 전달받은 것에 불과한 MBC는 공적 가치가 있는 사안에 대해 충분한 검증과 취재 후 방송하는 것이 맞다. MBC는 대표적인 공영방송이며, 전파는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MBC가 보도한 내용은 취재윤리에 반한 녹음파일을 전달받은 것을 극복할 정도의 월등한 공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김씨 말은 모두 진실인가? 사적 대화 속에 있기 마련인 허세나 과장에 대한 충분한 검증과 취재도 눈에 띄지 않는다. 무속과 관련해서는 여야 간 무속이니 역학이니 하며 서로 관련이 있다고 정쟁에 빠졌고, 김씨가 캠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취재가 뒤따르지 않았다.

2000년대 대표 탐사 프로그램이었던 PD수첩 제작진들의 인터뷰 모음집인 ‘진실의 목격자들’에서 최진용 당시 CP는 “탐사저널리즘은 권력에 대한 감시견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제보의 진실성과 제보 동기의 순수성”을 우선 따져보고, “제보 내용에 입각해서 현장 조사를 하고, 주변을 알아보고, 몇 번이고 확인을 한 다음에 제작에 착수한다. 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대단히 위험한 프로그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이번 방송을 한 제작진은 과연 이 같은 지침을 준수했는지, 특히 몰래 녹음한 녹음파일 제공 동기를 의심한 적은 없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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