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외세에 휘둘린 노동개혁

  • 등록 2019-07-24 오전 5:00:00

    수정 2019-07-24 오전 5:00:00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이달 초 유럽연합(EU)이 한-EU 자유무역협정(FTA) 후속 조치의 하나인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하여 우리 정부의 비준 노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전문가 패널 소집’을 우리 정부에 요청하였다.

ILO 핵심협약 비준에 관한 노사정 협의가 지지부진하자 정부는 노사정 합의를 바탕으로 입법한 후 비준하려던 당초 계획을 바꾸어 비준과 입법을 동시에 추진하기로 하였으나 비준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본 것이다.

비준과 입법을 같이 추진한다는 정부 방침에 대해 경영계는 노사정 합의 없이 비준을 추진한다고 강력히 반발하였으나, 어느 정도 시일이 경과하여도 진전이 없자 면피용 행정이라고 노동계도 비난하고 있으니 정부는 노사, 그리고 EU 등 모든 당사자로부터 비판을 받는 상황으로 몰렸다.

1987년 민주화로 노조활동이 활발해진 후 주요 노동관계법 개정의 추이를 보면 우리 노사 자체보다는 외부 동인에 법이 개정된 경우가 많았고 근본적인 개혁이 없이 노사 간의 주고받기 식 협상에 의해 노동관계법이 개정되면서 후유증도 상당하였다.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OECD 회원국으로서 노동기본권 보장이 미흡하다는 OECD의 지적이 있어서 복수노조 허용 등 노동관계법이 대폭 개정되었다.

복수노조 허용으로 민주노총과 전교조가 1999년 합법화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나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전임자에 대한 사용자의 금지’ 관련 조항은 3번 시행이 유예되었다. 2010년 7월 법이 시행되기까지 우리 정부는 굴욕적이지만(?) OECD의 이행 점검을 받았다.

노동기본권 보장과 함께 정리해고제 등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를 위한 제도 도입도 같이 추진했는데, OECD에 약속한 시한은 다가오고 노사 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자 과반수 의석을 가지고 있던 당시 여당이 야당의 참석이 없이 국회에서 관련법들을 기습 통과시켰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동맹 파업과 야당의 반발로 1997년 초 정리해고제 시행을 2년 미루는 것으로 관련법이 몇 달 만에 개정되었다. 1997년 말 외환위기로 우리 경제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로 들어가면서 IMF 권고로 정리해고제도는 당초보다 1년 앞당겨 시행되었다.

외부의 개입이나 요구 없이 우리 노사정이 주도적으로 도입한 대표적인 법들이 2006년의 비정규직관련 법, 2015년의 정년연장법 그리고 2018년의 주52시간제 법들인데, 부정적 효과도 같이 가지고 왔다. 충분한 준비 없이 시행되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격차 해소와 같은 구조적 문제의 근원적 해결에 필요한 노동개혁이 수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관련 법들은 기간제 근로자의 계속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는 등 노동시장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는데, 법 제정이후에도 임금근로자중 비정규직 비중은 줄지 않고 있고 비정규직 처우개선도 답보상태이다.

정년연장법은 정년연장에 따른 부작용을 완화시킬 수 있는 임금체계 개편을 정년연장의 조건으로 명시하지 않음으로써 세대 간 일자리 전쟁의 빌미가 되었다. 임금피크제 도입 등 임시방편적 조치가 이루어졌으나 그마저도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철회하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주52시간제법은 특례업종을 과도하게 축소하고 탄력근로제 확대는 2022년으로 연기함으로써 부작용이 많아 계도기간을 주는 등의 초지를 하였으나 충분하지 않았다. 법이 개정된 지 1년도 되지 않아 그 개정을 논의하고 있으나 진척이 더디다.

EU의 전문가 패널 소집 요청으로 우리는 다시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우리의 노동관계법을 바꾸는 것을 고민하는 상황이 되었다.

한-EU FTA 후속 조치로 ILO 핵심협약 비준을 검토하면서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노동관계법을 전반적으로 재설계하여야 한다. ILO 핵심협약 비준을 할 상황이 되지 않는데, EU에 떠밀려 비준을 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국익을 우선하여 EU의 요구에 당당하게 대응하여야 한다.

EU 회원국 중에는 노조원을 해고하기 위해 사고를 고의로 일으키는 사용자와 해고된 노조원을 복직시키라는 노조의 요구를 거부한 사용자를 노조가 1시간 이상 감금하는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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