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면의 사람이야기]주차단속만 잘해도 일자리가 생긴다

  • 등록 2020-03-05 오전 5:00:00

    수정 2020-03-05 오전 5:00:00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성균관대 특임교수]행정의 수준과 질서의 수준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운전을 하는 분은 아실 게다. 좁은 도로 가에 당당히 서 있는 차들로 여기가 도로인지 주차장인지 분간이 어려운 곳을 본 적이 있는가. 가끔 구청에서 주차단속을 나오긴 하지만 불법주정차 차량은 태초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 근절되지 않고 왕복 두 개 차로를 잡아먹고 있는 광경 말이다. 평일 낮 시간 유동인구가 가장 많을 때 강력한 단속으로 교통을
원활히 해주면 좋으련만, 마치 머피의 법칙처럼 꼭 필요하지 않은 시간인 주말 저녁 주택가 골목길에서 단속은 이루어진다.

사실 주차단속이 ‘제대로’만 이루어진다면 우리 사회가 누릴 수 있는 효용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동 시간의 절약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기회비용을 국가적으로 활용하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갖게 된다. 교통의 흐름이 빨라지고 물류비용이 줄어들며 도심 속 미세먼지 농도를 낮출 수 있다. 이는 직접적이고 눈에 보이는 효용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효과는 따로 있다. 고작 한 블록 이동하는데 신호를 세 번, 네 번 씩이나 받으며 늘어가는 운전자의 극심한 스트레스 지수를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는 국민의 정신건강을 증진하고 사회 전반의 범죄율을 떨어뜨릴 수 있다.

선진 주차문화가 자리 잡기까지 강력하고도 끈질긴 주차단속이 필요하겠지만 제대로만 이루어진다면 주차공간이 여의치 않은 곳에 갈 때는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될 것이고, 주차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자투리땅에 주차산업을 키울 수도 있을 것이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주차위반에 수십 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등 엄격한 주차단속 탓에 불법주차를 찾아보기 어렵다. 사회적 관행과 질서로 인식되는 덕분에 도심 골목 곳곳에 운영하는 소형 주차장은 엄연한 하나의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 내 주차장 임대사업 1위 기업인 파크24는 2018년 매출 2900억엔(3조 2000억원)을 기록했으며, 그 네트워크를 활용해 일찌감치 2009년에 쏘카와 같은 카셰어링 사업에 진입했다.

제대로 된 주차단속 하나만으로도 공유경제의 주요 산업을 탄생시킬 수 있는 것은 물론 연계해서 발생하는 일자리도 적지 않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경쟁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헬리콥터식 현금복지’ 사업에 기울이는 관심의 일부라도 행정 질서 개편에 쏟는다면 우후죽순 늘어나는 소모적인 일자리가 아닌 ‘노인도 참여할 수 있는’ 생산적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주차산업 생태계가 만들어지면 주차단속 및 행정 처리에 필요한 인원이나 주차장 설비를 만드는 일, 혹은 주차장 운영이나 주차장 관리를 위해 생기는 일자리가 그것이다.

난데없이 주차단속 얘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 주변에 이렇게 작은 것 하나하나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야 할 행정 수요가 그만큼 넘쳐난다는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공무원들은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사안에 대해 보여주기 식으로 잠깐 행동하는 척했다가 관심이 사그라지면 다시 과거의 관행으로 회귀하곤 했다. 무엇이 문제이고, 누구의 책임인가. 심지어는 전 국민 대상 감염 전염병 예방조차 이런 소리를 듣는다.(우린 메르스 사태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일대에서 서울시 교통지도과의 ‘발레파킹’(valet parking·주차대행) 등 불법 주·정차에 대한 특별 단속이 진행되던 중 과태료 부과에 항의하는 차량 소유주가 단속 직원과 동행한 경찰과 대화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국민들은 수십 년 째 관행이란 미명 하에 벌어지는 계곡과 해수욕장 상인들의 부당한 바가지요금에 분노해 왔고 각종 부실시공과 부당한 갑질을 참고 살고 있다. 양재지역 고속도로 만성정체는 연간 경제적 손실이 수천억원에 육박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이는 누구나 해결책을 알지만 강력하고도 끈질긴 행정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곧 해결될 듯 하다가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고 마는 좀비 같은 문제들이다.

생색나지 않는 근원적인 일은 왜 소홀히 할까. 소수의 이기심과 반칙과 특권을 위해 다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부당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행정집행이 필요하다. 오랜 시간을 들여 엄격한 법집행이 요구되는 사안들은 우리의 생활과 삶에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변화는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시키는 일만 하기에도 벅찬(혹은 시키는 일만 하는데 특화된) 공무원들의 일하는 방식, 여건과 환경을 바꿔야 하고 공익을 저해하는 소수의 기득권을 타파하기 위한 행정집행에 시민사회도 자발적 동의와 지지를 보내줘야만 한다. 여기에 지자체장을 비롯한 정치세력의 이익 편들기는 국민 누구에게도 해로운, 내일을 좀먹는 행위이다. 당장 원칙에 입각해 엄격한 주차단속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온갖 반발과 비판이 빗발칠 것이다. 차 가진 운전자들은 불편한 주차환경에 아우성칠 것이고 상인들은 생업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이고 사회 전체적인 수준이 선진국으로 돌입하기 원한다면 공권력이 공익을 외면한 채 사익에 따라 복무해서는 안 된다. 일부 운전자의 이기심으로 인해 주차장이 되어 버린 도로의 오늘은 그러한 현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이라 하겠다.

변화의 원칙은 작은 것부터 시작해 큰 것으로, 간헐적 집행이 아닌 지속적인 집행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정치인의 솔선수범은 필요충분조건이다. 내일과 혁신의 미래는 훌륭한 리더의 몫이다.

사회 전체의 ‘섬(SUM·합)’을 키워가야 한다. 좋은 축구팀은 역할 분담이 잘 되어있고 각각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뛰어난 한 두 사람의 개인기가 아닌, 팀 전체가 튼튼하게 받쳐주어야 한다. 그릇에 물을 담을 때 어느 한 쪽의 깊이만 얕으면 전체 담을 수 있는 물의 양도 적어질 수밖에 없다.

발 뻗을 곳을 만들어 주는 일(주차장 확충 여건)과 병행하며 그 과정에서 생기는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은 우리 사회가 선진국으로 가는데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작은 것부터 지금 시작하자. 그리고 끝까지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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