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 퇴계의 매화 사랑…"분매(盆梅)에 물을 주어라"

  • 등록 2021-05-18 오전 6:10:00

    수정 2021-05-19 오후 1:37:50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전 기획예산처 장관]퇴계선생의 매화 사랑은 이제 꽤 알려지고 있다.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기에 세상을 떠나기 전 “분매에 물을 주어라[令侍人灌盆梅]”라고 명하였을까.

퇴계가 이토록 정성을 기울여 매화를 사랑한 이유는 무엇일까? 매화의 청신한 향기와 수줍은 자태에서 풍겨나는 고결함이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너무나 흡사하여 분신처럼 여겼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육신은 떠나더라도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는 매화를 통해 오래오래 전해지리라 기대하였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필자는 퇴계의 매화 사랑에 관해 두 가지를 언급하려 한다. 하나는 매화의 고결함과 향기를 담은 퇴계의 시를 읊으며 지난해까지는 매우 부끄러웠다는 고백이다. 매화의 향기를 맡으려 아무리 바짝 다가가도 좀처럼 느낄 수 없어 아주 비감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올봄에는 바로 그곳에서 매화의 청향(淸香)을 여러 번 맡았다. 지금까지 어떤 향에서도 느끼지 못한 행복감이 밀려왔다. 내년 봄 매화향기가 뿜어 나오는 시기에 이 즐거움을 더 많은 분들과 함께 하려 한다. 다음은 분매와 관련된 잘못된 내용을 밝혀 보려 한다.

인터넷을 보니 분매(매화분)에 물을 주라 했다는 기록이 많지만 매화나무에 주었다는 기록도 보인다. 또 두향이란 여인이 선물한 것이라는 기록이 여러 곳에 보인다. 재작년에 이어 최근 두 번째 다녀온 퇴계 마지막 귀향길 걷기(4.15~28) 추진과정에서 확인한 내용을 공유하려 한다.

관련 기록을 보며 좀 더 살펴보자. 먼저 ‘물을 주어라’고 한 대상은 매화나무가 아니라 방에서 키우는 분재라는 사실이다. 기력이 극도로 쇠잔해진 퇴계가 한겨울 밖에 서 있을 매화나무를 언급하였을 리 없다. 그러면 퇴계는 당시로는 상당히 귀했을 분매를 어떻게 소장하게 되었을까?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1568년 7월, 68세의 퇴계는 노구를 이끌고 상경한다. 준비 없이 갑자기 왕위에 오른 17세의 소년 임금 선조가 간곡히 여러 차례 도와달라고 한 요청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어서였다. 그런데 서울에 머무는 동안 가까이서 모시던 김취려(金就礪)라는 제자가 노스승의 적적함을 달래드릴 겸 선물을 가져온다. 바로 이 분매다. 퇴계는 ‘신선 같은 매화[梅仙]가 쓸쓸한 나의 짝이 되어/객창 깨끗한 꿈길도 향기로웠네’라고 읊조리며 반겼다.

분매와 함께하며 서울에서 머무는 몇 달 동안 경연을 하고 〈성학십도〉를 지어 바친 퇴계는 임금과 조정을 위해 할 일은 다 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착한 사람으로 가득 찬 바른 사회를 이루어보려는 필생의 사업을 고향 도산에서 마무리하고픈 염원에서 귀향을 간청한다. 이듬해 1569년 3월 어렵사리 임금으로부터 고향을 다녀와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퇴계는 행장을 꾸린다. 그런 중에 아끼던 분매와 함께 가지 못해 ‘고향으로 돌아가며 데리고 가지 못해 서운하니/서울 티끌 속에서도 예쁜 모습 잘 간직하게나’라고 미안한 마음을 시로 담아 건넸다.

고향에 내려와서도 결코 잊을 수 없었던 퇴계는 이듬해 뜻밖에도 분매를 다시 마주하게 된다. 스승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취려가 도산으로 보낸 것이다. 퇴계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일만 겹의 붉은 먼지에서 벗어나/속세 밖으로 와서 늙은 나의 벗이 되었네/일을 좋아하는 그대가 나를 생각하지 않았다면/어찌 해마다 빙설 같은 얼굴을 볼 수 있었겠나’라고 시를 한 수 지었다. 꿈에 그리던 분매를 다시 만나 같이 지내게 된 기쁨과 이렇게 해준 제자에 대한 고마움을 듬뿍 느끼게 한다. 퇴계가 지은 그 많은 매화시 중에서 마지막으로 지은 매화 시다.

해마다 볼 수 있겠다는 바람과 달리 퇴계는 해를 넘기지 못하고 추운 겨울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때 퇴계는 분신처럼 생각해 온 분매에게 무슨 말이라도 한 마디는 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것이 바로 매화의 생명 연장을 바라는 마음에서 그에게 꼭 필요한 물을 주라는 것이었으리라. 450년 전 한 성현이 매화를 상대하면서 생의 마지막까지 남겨준 고귀한 정신세계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아직도 따뜻하게 다가온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성찰하고 사려하도록 이끄는 따뜻한 손길이 되고 있다. 우리도 내년 봄 매화 향기를 맡으며 그 길을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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