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정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2019년 ‘탈원전ㆍ탈석탄 정책의 문제점: 그 경제성과 지속가능성은’이라는 이슈 분석을 통해 탈원전 정책에 따른 우리 국민의 추가 비용 부담금액을 11조원으로 추산했다. 3년이 지난 현재 이 금액은 어떨까. 여전히 정부의 종합적인 추계는 나오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탈원전의 대가로 국민이 내야 할 비용이 이 정도 수준이거나 더 큰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 선임연구위원은 탈원전 계획에 따른 송배전 비용 변화는 포함하지 않아 전기 요금이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가 전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회ㆍ환경비용을 고려한다고 해도 원전이 지니는 경제성을 재생에너지가 역전하기가 상당기간 곤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따라서 현재 에너지 정책에 대한 재논의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탈원전 포함한 에너지 정책, 국가전략적 차원서 논의해야
에너지 정책은 국가전략적 차원에서 올바른 논의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종호 전 한국수력원자력 기술본부장(현 한수원 중앙연구원 시니어전문)이 작성한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한 전력공급 시나리오 분석’에 따르면 정부가 원자력발전소를 차례로 폐쇄하는 지금의 탈원전 정책을 고수하면 2050년까지 설비투자비가 1400조원 가까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최 선임연구위원은 “제로(zero) 원자력 발전을 이루지 못하면서 탈원전을 정책기조로 표방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부적절하다”며 “선언적인 탈원전ㆍ 탈석탄에서 벗어나 국제적인 에너지 경제의 변화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은 전략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에너지 정책기조의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원전이 탄소중립으로 가는 데 있어 ‘브릿지 에너지’ 역할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다만 원전이라는 에너지 특성과 탄소중립을 이행하기 위해 에너지 믹스를 적절히 반영해 종합적인 추진계획을 세워야지 무턱대고 원전을 포기하는 현 정책으로는 천문학적인 비용부담 등을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 정책이 시장 규모를 키우고 확산시키는 데만 집중하지 정작 장기적인 활용방안 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도 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탄소중립은 전력뿐 아니라 다른 에너지원에 대해서도 무탄소를 요구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자원 자체가 부족해 재생에너지 여건이 안 된다”며 “원자력발전소 없이는 기후온난화 대처가 불가능한 만큼 원자력에 대한 필요 이상의 공포는 많은 대가가 동반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단독운전이 불가능하다는 태양광과 풍력의 특성, 수요와 공급이 일치해야 한다는 전력의 특성을 고려하면 현재의 기술로는 원전 없는 탄소 제로는 불가능하다”며 “에너지 특성과 에너지 믹스(Energy Mix)를 이해하고 종합적으로 추진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탄소 제로로 가는 올바른 방향”이라고 지적했다.
꼬리 감춘 에너지정책 백년대계
탈원전에 따른 원전산업의 출구전략과 그에 따른 에너지 전환, 특히 분산에너지 전환일정을 정부가 이른 시일 내에 확정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정부는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을 통해 2040년까지 전체 발전량의 30%를 분산에너지로 채우겠다는 목표를 제시했고 지난해 말 발표한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분산형 전원에 대한 보상체계를 마련, 분산자원 활성화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지난 1일 에너지위원회에서 심의한 내용을 보면 분산에너지 로드맵은 사라지고 슬그머니 ‘분산에너지 활성화 추진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모습으로 바뀌었다. 올해 상반기까지 특별법을 제정하겠다는 의지는 사라지고 또다시 내년까지 법을 제정하겠다고 했다. 분산에너지 편익 지원제도를 위한 재원조달 방안과 예산확보 등 구체적인 방안은 전혀 없었다. 법 제정이 늦어짐은 물론 부수적으로 분산에너지 편익 지원제도 도입 역시 3년 후인 2024년으로 미뤄지는 등 중기계획으로 전환되고 말았다.
김대경 전 아시아개발은행(ADB) 선임에너지전문가는 “정부가 분산화 일정 등 에너지전환에 대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며 “로드맵에 따른 원전 산업의 단계별 출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