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위한 행진곡' 원작자 백기완 "이제 민중과 역사의 것"

금지된 9년…문재인 정부 제창곡 재지정
옥중 지은 '묏비나리' 詩, 노랫말 원작
스스로 달구질, 세상 을러대며 고문 견뎌
제창 금지는 5.18 정신 학살하려는 정권의 만행
정권 탄압에도 민주화 현장 어디서든 불려
"일상서 편하게 부를 수 있는 노래되길"
  • 등록 2017-05-15 오전 5:36:00

    수정 2017-05-15 오전 5:36:00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민주화운동기념식 제창곡으로 다시 지정된 12일 서울 대학로 통일문제연구소에서 만난 이 곡의 가사 원작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제창곡 재지정과 관련) 아주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이라고 말했다. 노랫말의 모태가 된 자신의 장편 시 ‘묏비나리’에 대해서는 “감옥 독방 찬 시멘트 바닥에 드러누워 있노라면 분하고 너무 약이 올랐다. 그때마다 ‘용기를 내라’고 스스로를 달구질하고 세상을 을러대던 나를 일으켜 세운 비나리였다”고 했다(사진=통일문제연구소).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아주 당연하고 바람직하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원작자로 알려진 재야운동가 백기완(85)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대답은 짧고 단호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 제창곡으로 다시 지정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 2년째부터 제창이 금지됐으니 무려 9년 만이다.

제창 부활 소식이 알려진 이날 이데일리가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통일문제연구소에서 백기완 소장을 만났다. 백 소장은 “그저 노래를 못 부르게 한 것이 아니라 5·18 정신을 학살하고자 하는 전두환-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만행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대통령이 제창을 지시한 것은 잘 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제 시작이다. 좀 더 두고 봐야 하지 않겠나. 하도 망쳐놔서 바로 잡아야 할 게 한두 가지 아닐 것”이라고 새 정부를 향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옥중서 스스로를 달구질 한 詩, 민중의 노래되다

‘임을 위한 행진곡’ 악보 원본(사진=5·18기념재단).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랫말의 모태가 된 ‘묏비나리’는 1979년 말 YWCA위장결혼식사건의 주모자로 붙잡혀간 백 소장이 모진 고생을 하며 서울 서대문구치소 옥중에서 1980년 12월 지은 15장의 장편 시(詩)다. 그에 따르면 ‘뫼’는 산을 뜻하고, ‘비나리’는 행복을 비는 말이자 민중의 자생적이요 자주적인 시문학 중 하나다.

당시 고문을 당해 허리는 망가졌고, 두 무릎은 퉁퉁 붓고 곪아 꿇을 수조차 없었다고 했다. 연필도 종이도 없어 뭘 적을 수도 없던 시절, 찬 시멘트 바닥에 드러누워 천장에 매달린 15촉 전구를 보고 있노라면 분하고 너무 약이 올랐다고 백 소장은 회상했다.

“그때마다 매일 주문처럼 외우고 또 외웠어. 나를 일으켜 세우는 비나리를 하는 거야. ‘너도 한때 씨름도 잘하고 술도 잘 먹었잖아. 너도 젊은 날이 있었어. 용기를 내 이 자식아’ 하고는 내가 나한테 달구질 하는 거야.”

이렇게 쓰여진 시들은 고문 후유증으로 한양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당시 몰래 라면봉지 같은 데 적어 후배들에 의해 밖으로 내보내졌다고 했다.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면서 지금까지 ‘민중의 애국가’ 오월 광주를 대표하는 한국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노래로 자리 잡았다.

“나만 달구는 게 아니라 아울러 세상을 을러대는 거지. ‘이것 봐. 기죽지 말어. 역사라는 것은 부정한 자들의 싸움이 역사야’하곤 천장을 보고 매일 읊었지.”

△“원작자라고 한 적 없어”…예술은 민중과 역사의 것

가사의 원작자인 백 소장은 이 노래에 대한 소유권도 저작권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더러 원작자라고 하는데 나는 단 한 번도 그렇게 말한 적 없어. 작품이라고 하는 것은 소유하는 건물과 달라. 자본주의적 관계가 아니지. 민중의 것이고 역사의 것이야.”

노래는 많이 불리지만 시의 존재를 모르는 이들이 더 많은데 서운하지 않냐는 질문에는 “개의치 않다. 자연스러운 예술의 흐름이다”며 웃었다. “작품은 예술이기 때문에 세상 밖으로 나오면 독자의 것, 노래를 부른 사람의 것이야.”

여전히 약자를 위한 집회 현장이라면 늘 맨 앞에 서는 백기완 소장. 지난해 11월 1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4차 촛불집회 현장에서도 백기완 소장은 제일선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사진=통일문제연구소).
‘임을 위한 행진곡’이 지금까지 불리는 힘은 무엇일까. 백 소장은 “광주항쟁이 지역적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민주주의 항쟁이었다는 방증”이라며 “광주에서 시작해 광주에서 끝난 게 아니라 지금도 민중이 이어 발전시키고 있다. 여기저기서 불리는 이유”라고 평했다.

△촛불시위도 매번 참석…역사 소재 장편 서사시 집필 중

그는 여전히 약자를 위한 집회 현장이라면 늘 맨 앞에 앉아 있다. 이번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도 참석할 계획이다.

“촛불집회 때도 단 한번 빠진 적이 없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늙은이라 뒷간(화장실)을 자주 가야하는데 전날이면 물을 안 먹었지. 개인적 사정이 유별났지만 어려움을 참으면서 촛불을 들었다. 왜곡하지 말고 참된 촛불정신이 사회적, 문화예술적으로 이어졌으면 좋겠어. 온몸이 촛불이 돼서 현장의 제일선에 설 거야.”

‘임을 위한 행진곡’에서 제일 좋아하는 구절은 ‘산 자여 따르라’다.“비록 초라하게 늙었지만 가만히 있지 않지. 조금이라도 편해지려 하면 부패해. 또 금방 잊는 거지. 예술창작의 기본은 긴장감이야. 정치도, 철학도 긴장감이 없으면 썩지.”

백 소장은 요즘 장편 서사시를 쓰고 있다고 했다. 비참한 역사적 사실이 소재다. 이달 말까지 마무리하는 게 목표다. 백 소장은 “이제 늙어서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아 걸레를 쥐어짜듯이 짜 낸다”고 말했다. 묏비나리를 쓸 당시를 떠올리며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맑은 샘이 넘치는 이런 상상의 세계를 내가 갖고 있었나? 반문하고 싶을 때가 있다”고 덧붙였다. 예술인들에게는 “블랙리스트로 인해 촛불도 들고 규탄시위도 나서더라. 그게 예술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때론 응원가로, 때론 노래방에서 불리는 것에 대해선 호탕하게 웃는다. “이 노래는 특정 개인의 것이 아니야. 노래라는 게 운동 시합하며 부를 수도 있고 술 먹다가도 부를 수 있어. 외로울 때 부를 수 있으면 더 좋고. 재미있게 봐주면 더 좋지. 하하.”

지난 4월 16일 오후 경기 안산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3주기 기억식에 참석한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 시절 문재인 대통령과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사진=뉴시스).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원작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2일 서울 대학로 통일문제연구소에서 기자와 만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사진=통일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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