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가 난 ESS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제조한 업체는 LG화학과 삼성SDI이다. ESS는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의 핵심 장비다. 신재생에너지는 기상 여건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남는 전력을 저장해 발전량이 적을 때 송전하는 ESS 설비가 필수적이다.
잇따른 ESS 화재에 중소 발전사업자들과 ESS 업체 등 ESS 산업생태계 전반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 6월 조사결과 발표 당시, 정부가 명확한 화재 원인을 내놓지 못한 탓이 크다. 배터리의 일부 제조 결함을 지적하면서도 배터리 보호 시스템, 운영 관리 미흡 등이 복합 작용한 것으로 발표했다. 배터리 업체들은 자체 결함을 부인하고 외부 요인으로 책임을 돌렸다.
신뢰 위기에 직면한 업계가 받아든 성적표는 처참하다. 지난달말 3분기 실적을 발표한 LG화학과 삼성SDI는 올 7월 이후 국내에서 ESS용 배터리를 판매한 게 없다고 밝혔다. 4분기 실적도 비슷할 전망이다. 한 중소 ESS업체 A사는 최근 5개월간 총 150억원 규모의 ESS 공급 계약을 취소당했다. 업계에서는 올해 ESS 시장이 전년 대비 4분의1 정도로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2년이 지났지만 성과는 신통치 않다. 신재생에너지 보급에 연연한 나머지, 산업생태계 조성은 소홀히 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당장은 산업 전반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ESS 화재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 정부가 국정감사 이후 민관합동으로 2차 조사위원회를 구성, 조사에 착수한 만큼, 이번에는 분명한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 이달말 발표에서도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에 연연해 어정쩡하게 봉합하려고 해서는 안될 것이다. 특정기업 배터리에 결함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 공개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물론 조사위의 화재원인 규명 작업에 협조해야 함은 당연하다. 선진국에 비해 부실한 것으로 확인된 ESS 설치 매뉴얼이나 운영 가이드, 안전 모니터링과 화재예방 체계 수립 등에 대한 의견도 적극 개진, 정부의 2차 대책에 반영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정부와 업계 모두 산업생태계 회복을 위해 지혜를 모을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