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위성을 위성이라 부르지 못하는 정치권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등록 2020-03-24 오전 5:00:00

    수정 2020-03-24 오전 5:00:00

천문학적으로 볼 때 위성이 행성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간단히 말하면 달이 지구로 변할 가능성은 0%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판에서는 위성이 행성이 되려는 시도가 있었다. 위성 정당인 미래한국당이 모 정당, 즉 행성 역할을 하는 미래통합당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사건’은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왜냐하면 정치란 권력적 현상이기 때문에 제도로 행위를 제어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권력의 법칙에 충실한 행위들이 튀어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도가 미비한 상태에서 여야 모두 위성정당을 만들었으니, 위성이 행성을 넘보는 일은 앞으로도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달을 보고 자꾸 행성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달이 지구의 위성임에도 자꾸 행성이라고 하면, 보는 이들이 상당히 당황스럽다. 달을 위성이 아닌 행성이라고 우기는 현상은 여야 모두에서 나타나지만, 특히 여당에게서 심하게 나타난다.

이런 웃지 못할 상황들의 근원에는 현재의 선거법이 있다. 현행 선거법에는 너무나 많은 하자가 있음이 확실하다. 예를 들어보자. 현행 선거법을 이른바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라고 부르고 있지만, 연동형 비례 대표제의 학문적 이름은 혼합형 비례대표제다. 혼합형 비례 대표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7개국 정도가 있는데, 대표적인 국가는 독일과 뉴질랜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실시하는 연동형 비례제는 이들 국가가 운영하는 제도와는 다르다. 이들 국가에서는 지역구 의석수와 비례대표 의석수가 50대 50에 근접한 수준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지역구 253석에 비례대표 47석, 그것도 연동형을 적용받는 의석은 30석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구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정당은 아무리 정당투표를 많이 받는다고 하더라도, 비례대표 의석 중 연동형이 적용되는 의석을 한 석도 차지할 수가 없다.

상황이 이러니, 지역구 의석을 다수 차지할 거대 정당들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정당의 구성 목적은 정권을 잡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해야하기 때문이다. 결국 거대 정당들이 위성정당들을 만들 수밖에 없게 만드는 제도가 바로 현행 선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식의 희한한 선거법을 만들어 놓고, 개정 선거법을 통과시키기 직전 민주당은 “선거법 개정은 또 하나의 ‘개혁’ 대 ‘반개혁’의 충돌 과정입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신설해서 민심을 제대로 의석에 반영하라는 것이 국민의 명령입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국민들이 지금 보다는 나은 모습의 국회와 정당을 기대했던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지금 이런 모습을 ‘개혁적’이라고 생각할 국민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정치권의 분열 양상만 더 심화하고 있다.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이 서로 싸웠고,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전문정당인 더불어시민당과 더불어민주당과 연합하려했던 정치개혁연합이 서로를 공격하고 있다. 같은 진영 내에서 조차 민망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싸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4+1이라는 희한한 임의 조직에 참여했던 민생당의 경우, 비례위성정당 참여를 놓고 당내 갈등 양상이 폭발 직전이다. 한마디로 더 이상 찢어지려야 찢어질 수 없을 만큼 갈가리 분열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정치권의 현실은, 개정 선거법 때문에 나타난 정치권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와중에 그나마 돋보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정당이 정의당이라고 생각한다. 정의당은 여권의 비례위성정당 참여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는 이념 정당의 참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진보의 생명은 명분과 도덕성인데, 정의당은 명분을 선택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희한한 선거법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물론 이런 비판을 가장 많이 받아야 하는 존재는 당연히 더불어민주당이다. 어쨌든 지금 우리나라의 모든 정당들은 정치란 권력적 현상이고 그렇기 때문에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존재,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국민들에게 몸으로 보여주고 있음은 확실하다. 아마도 이번 개정 선거법의 유일한 수확이란 이런 정치권의 모습 정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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