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천년 다리와 용의 숲에서 '생거진천' 비밀을 풀다

순수한 자연이 반기는곳 충북 진천
거대한 지네 닮은 '농다리'
고려 때부터 천년세월 버텨
용 한마리 한반도 감싼듯
미르숲, 초평호 힐링 그 자체
  • 등록 2021-05-07 오전 6:00:00

    수정 2021-05-07 오전 8:40:10

거대한 지네처럼 생겼다고 해서 ‘지네다리’라고도 불리는 충북 진천 ‘농다리’. 천년 세월을 묵묵히 버텨온 이 다리는 지나온 세월만큼 수많은 사연을 품고 있다.


[진천(충북)=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언제 어느 때라도 순수하고 아름다운 자연으로 맞아주는 곳, 충북 진천. 살아서는 진천에 머물고, 죽어서는 용인에 묻힌다는 뜻의 ‘생거진천(生居鎭川) 사후용인(死後龍仁)’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곳에는 천년 세월을 끄떡없이 버티고 있는 다리가 있다. 문백면 구곡리 굴티마을 앞 세금천을 가로지르는 ‘농다리’다. 중부 고속도로를 이용해본 사람이라면 ‘농다리’라는 입간판에 한 번쯤은 눈길을 줬을 법하다. 천년 세월을 묵묵히 버텨온 다리는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수많은 사연을 품고 있다. 이 ‘아주 오래된 추억’을 찾아 진천으로 향한다. 여기에 천년의 역사를 품은 미르숲과 신록으로 우거진 초평저수지까지. 바야흐로 꽃이 만발하는 계절, 싱그러운 봄 나들이 장소로 이만한 곳도 없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인 ‘농다리’


농다리 상류에 있는 섶다리와 인공폭포
◇천년의 세월을 이겨낸 돌다리가 있다?


천년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농다리’. 거대한 지네처럼 생겼다고 해서 ‘자네다리’라고도 한다. 제각기 다른 모양의 돌을 쌓아 만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다. 오랜 시간 동안 마을과 마을을 연결해 준 고마운 다리다.

들머리는 농다리 주차장. 이곳에서 농다리까지는 100여m 정도다. 미호천 위에 놓인 농다리는 93.6m에 달한다. 폭 3.6m. 높이 1.2m의 길쭉한 돌무더기 28개로 이뤄졌다. 돌 무더기는 각각 80cm 정도 떨어져 그 사이로 물이 흘러간다. 그 위로 중앙에 길쭉하고 평평한 돌을 놓아 건너뛰지 않고 자연스럽게 건너가도록 했다.

농다리는 석회 같은 접착제를 쓰지 않고 돌만으로 쌓았다. 큰 돌 사이 빈틈에 작은 돌을 단단하게 끼워 넣었고, 폭과 두께가 상단으로 갈수록 좁게 만들어 물의 영향을 덜 받게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농다리는 장마 때에도 유실되지 않고 천년 세월을 견디며 원형을 그대로 유지해왔다.

농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의 모습은 너나 할 것 없이 평화롭고 천진난만하다. 천년이란 세월의 무게 때문인지 엉성하게 쌓인 돌더미 교각 틈새로 흐르는 미호천을 바라보며 다리를 건너는 기분은 신비롭기만 하다. 중부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량들의 분주한 모습과 여유로운 농다리 풍경이 사뭇 대조적이다.

미호천은 800년전 고려시대 임연 장군이 매일 아침 세수를 하던 곳이다. 어김없이 마을 앞 미호천에 나온 임 장군은 젊은 부인이 개천을 건너가려는 것을 보고 용과 말을 타고 돌을 날라 다리를 놓아주었다고 한다. 또 다른 설화는 1500년을 훌쩍 거슬러 올라간다.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 장군이 고구려에 빼앗긴 낭비성을 되찾고 기념으로 이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김유신 장군이 태어난 고장이다 보니 김유신과 농다리를 함께 엮었지만 고려시대 세워진 다리라는 게 정설이다.

미르전망대에서 바라본 미르숲 ‘능암정’과 중부고속도로


천년설화 ‘용의 숲’이 깨어났다

초평저수지(초평호)에는 ‘용의 숲’이 있다. 하늘에서 보면 호수가 한반도 모양의 지형을 감싸안고 있는 모습. 마치 한 마리 용이 한반도를 휘감고 비상하는 듯하다. 초평호를 품은 미르숲은 그래서 붙은 이름이다.

미르숲의 시작은 ‘농다리’부터. 이 곳을 건너야 미르숲과 초평호를 볼 수 있다. 농다리를 건너면 펼쳐지는 미르숲은 총 면적이 108만㎡에 이른다. 생각의 숲, 붉은바위 숲, 기원의 숲, 거울의 숲, 약속의 숲, 요정의 숲 등 총 6개 주제별로 구성됐다. 각 지역마다 2~2.5㎞ 길이의 다양한 트레킹 코스가 있다.



미르숲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2012년부터. 현대모비스가 총 100억원을 투자해 진천군, 자연환경국민신탁과 함께 친환경 생태숲을 조성했다. 동식물의 다양성 증진과 생태환경 보존을 위해 동식물 서식지 복원에 많은 신경을 썼다. 숲을 조성하면서 마을에서 전해 내려오는 구전을 되살리는 작업도 이어졌다.

농다리와 성황당이 그런 곳이다. 초평호에 수몰된 화산리에는 큰 부자 마을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한 스님이 시주를 청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거절했다. 괘씸히 여긴 스님이 “앞 산을 깎아 길을 내면 더 큰 부자마을이 된다”고 하자 욕심 많은 마을 사람들은 산에 곡괭이질을 하고 파내기 시작했다. 그 곳에서는 피가 흘러나왔고 마을은 사라졌다.

이 일대 지형이 용 형상인데 곡괭이질을 한 부분이 용의 허리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사람들이 허리를 끊자 마을을 지켜주던 용이 죽었다는 얘기. 이후 용의 허리 부분은 ‘살고개’로 불렸고 사람들은 마을의 수호, 무병장수 등을 바라며 이곳에 돌을 쌓고, 성황당을 만들어 용을 기렸다고 한다.

신록으로 물든 두타산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는 초평호


농다리에서 초평저수지로 이어지는 ‘초롱길’

농다리에서 초평저수지로 이어지는 ‘초롱길’. 이름도 초평저수지와 농다리의 첫 글자를 땄다. 농다리의 예스러움과 초평저수지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농다리를 등 뒤에 두고 언덕길을 오른다. 성황당이 있는 용고개를 100m 앞두고 농암정 방향으로 난 산길. 200m 쯤 오르니 농암정이라는 편액이 붙은 2층 정자가 우뚝 서 있다. 정자에 오르자 산봉우리로 둘러싸인 초평저수지가 정답게 내려보인다. 붕긋붕긋 솟은 작은 산봉우리에 둘러싸인 호수는 산자락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다. 두타산을 비롯해 진천의 여러 산들도 병풍처럼 펼쳐져 호수풍경을 더욱 깊게 해준다.

야외음악당으로 향한다. 인공적인 소리라고는 전혀 들리지 않는 고요한 호수를 바라보며 펼쳐지는 음악회는 상상만 해도 멋지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호수는 좁고 길게 펼쳐져 강 같은 느낌을 준다. 잔잔한 호수에 산봉우리들이 조용히 자신의 몸체를 내려놓았다. 반영이 호수위에 같은 모양의 봉우리를 만들어 대칭모양의 그림이 그려진다. 초평호에 설치된 하얀색 하늘다리도 멀지 않은 거리에서 손짓을 한다. 텅 빈 야외음악당 객석에 앉아 있으니 새들이 숲속에서 연주를 해준다.

초롱길 하늘다리와 초평저수지에 비친 반영


길은 호반을 따라 이어진다. 길 위로 막 잎을 피운 연두색 신록이 어린아이처럼 예쁘다. 이맘 때 보는 신록은 어떤 화려한 꽃보다, 어느 우아한 단풍보다 예쁘다. 예쁜 연둣빛 신록에는 신비롭고 강인한 생명력이 스며 있다. 이런 길은 가슴을 열고 천천히 걸을 일이다.

하늘다리가 가까워졌다. 길이 93m에 이르는 흔들다리인 하얀색 하늘다리가 푸른 호수 위에서 돋보인다. 하늘다리를 건너니 길은 역시 호반으로 이어진다. 하늘다리를 지나서 만난 오솔길은 짧지만 매력적인 길이다. 포근한 흙길을 밟으며 걷다보면 호수 쪽으로 고개를 쭉 내민 바위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초롱길은 덱을 깔아 찻길과 구분을 해놓았다. 옆으로 찻길이 있지만 차량통행은 거의 없는 편. 바로 아래로는 초평저수지가 출렁인다. 호수 가운데에는 작은 섬도 있어 풍경화의 완성도를 높인다.

△가는길=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진천 인터체인지에서 좌회전해서 21번 국도로 갈아타면 진천읍이다. 진천읍 신성사거리에서 좌회전에 증평 방향으로 운전대를 잡고 달리다 보면 지석마을이 나타나는데 여기서 우회전해 들어가면 농다리를 볼 수 있다.

△주변볼거리=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 장군이 진천에서 태어난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진천에는 김유신 생가는 물론 탯줄을 잘라 관아 뒤 길상산 정상에 석축을 쌓아 만든 태실이 남아 있다. 이외에 정송강사, 송강 정철 묘와 신도비, 이상설 생가, 용화사 석불입상, 길상사, 연고리석비, 종박물관, 보탑사, 두타산, 백곡저수지, 역사테마공원, 왜가리 번식지, 베티성지 등이 있다.

초롱길에 핀 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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