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5년여 만에 가격 인상을 단행했던 한 소비재 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소비자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조심히 올렸고 당시에도 ‘쓴소리’를 들었지만 차라리 그때 올린 게 나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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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물가 상승세는 국민들에게 더욱 부담을 주고 있다.
지난 1일부터 전기요금은 킬로와트시(kwh) 당 7.4원, 민수용(주택용·일반용) 도시가스 요금은 메가줄(MJ·가스사용 열량 단위)당 2.7원 올랐다. 4인 가구 기준 전기요금은 월 2270원, 가스요금은 5400원가량 더 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와 국회의 움직임을 보면 기업의 이런 반응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최근 ‘뒤늦게’ 가격을 올린 기업은 정부로부터 일종의 ‘벌칙’을 받고 있다.
지난달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일각의 가격 인상 움직임은 민생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고 물가 안정 기조 안착을 저해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주 식품업계 임원들을 불러다 간담회를 열고 ‘가격인상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또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4일부터 열리는 국정감사에 쌀값 하락 및 식품 물가와 관련해 CJ제일제당 부사장 및 오리온농협·농심 미분·오뚜기 대표이사 등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물가 인상을 둘러싸고 정부 여당도 질타를 받고 있으니 기업인들을 불러다 혼쭐내는 ‘액션’이 벌어지지 않을까”라고 우려했다.
현재 물가 인상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상반기 유가 급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 곡물가격 상승, ‘초 강달러 현상’에 수입 원부자재 상승 등 여러 가지가 맞물렸다.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지만 전문가들은 일부 품목은 충분히 정부가 대응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식료품, 소비재별로 리스트를 만들고 재고와 가격 추이를 확인해 상승 징후가 높은 품목은 선매입이 가능했지만 대응이 미비했다는 것이다.
물가고공행진은 소비자뿐만 아니라 정부, 기업 모두에게 비상이다. 현상의 원인과 대책을 합리적으로 판단해 대응하는 것이 맞다. 단순히 ‘기업이 가격을 올려 정부 물가 안정 정책을 방해한다’는 식의 논리는 문제 해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