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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폭탄 발언의 주인공은 포브스가 선정한 일본 최고의 부자이자 세계 3위 의류 업체 수장인 야나이 타다시 패스트리테일링 창업자 겸 회장이다. 패스트리테일링이라고 하면 고개를 갸웃거릴 사람도 있겠지만, 한·일 갈등으로 불매운동의 중심에 선 유니클로가 바로 이 회사의 자회사이다. 그는 지난 9일 닛케이비지니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 대해서 반감을 갖는 것은 일본인이 열등해진 증거”라고 일침했다.
야나이 회장은 인터뷰 내내 일본이 더 이상 선진국이 아니라 중위국(中位國)이 됐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했다. 야나이 회장을 인터뷰한 닛케이비지니스는 “야나이 회장은 인터뷰 서두에서부터 노여움에 가득 찬 표정으로 일본의 현재를 말했다”라고 부언했다. 첫 마디는 무려 “일본은 최악이다”이다.
“일본은 최악, 30년간 정체”
야나이 회장이 보는 일본은 30년 동안 하나도 성장하지 않은 나라다. 국민의 소득은 하나도 늘지 않고 기업은 아직도 제조업이 우선이다. 사물인터넷(IoT)나 인공지능(AI), 로보틱스가 중요하다고 해도 본격적으로 도전하는 기업은 없다.
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일본인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가마솥 안의 개구리’처럼 물이 서서히 끓어오르는 것도 모르는 채 있다가 죽어버릴지도 모르는 것이 야나이 회장이 보는 현재의 일본이다.
야나이 회장은 “서점에 가면 ‘일본이 최고다’라는 책밖에 없어서 나는 언제나 기분이 나빠진다”며 “‘일본이 최고였다’면 모를까, 지금 일본의 어디가 최고냐”라고 반문했다.
위기는 찾아오는데 아무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불만을 표하지 못한다. 모두가 치켜세우는 아베노믹스 역시 그가 보기에는 실패한 정책이다. 야나이 회장은 “모두들 성공했다고 하지만, 성공한 것은 주가뿐”이라며 “주가라는 것은 나랏돈을 쓰면 당연히 오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개헌 역시 야나이 회장이 보기에는 모순적인 일이다. 보통국가, 정상국가를 내세우면서 미국의 속국을 자처하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멋대로 말한 말을 아베 총리는 굴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야나이 회장은 “현재의 일본은 자립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미국의 그림자 속에서 살면서 스스로는 자립적이라고 생각하는 꼴”이라며 “헌법보다 일·미 지위협정을 개정하라”고 주문했다.
정경유착(政經癒着)을 넘어 정경일체(政經一體)라고 비판받는 일본 사회의 풍토에 비춰봤을 때 야나이 회장의 발언은 이례적이고 도발적이다. 아버지의 잡화점을 물려받아 세계 3위의 글로벌 패션회사로 성장시킨 그의 성과가 있기에 할 수 있는 발언이기도 하다.
야나이 회장은 “나는 이 나라에 질려있지만, 절망하지 않는다”며 “국가가 망하면 기업과 개인도 미래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본 대개혁 필요…공무원 정치인 줄여야”
그는 일본은 ‘대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세출을 절반으로 깎아 공무원을 줄이고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참의원과 중의원은 차라리 하나로 합치는 게 낫다. 국회의원이나 시의원 등 정치인들도 대대적으로 줄이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일본’에서 벗어나 ‘세계’,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그는 “요즘 세상에 신입사원 일괄채용이라는 것을 하는 곳은 일본밖에 없다”며 “전 세계 기업이 지금 인재 전쟁에 나서는데 일본만 뒤처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대기업은 일 년에 한 번 정해진 기간에 졸업 예정자들을 대상으로 일제히 채용을 하는 관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일본인들만 채용한다는 전제가 담겨있는 아주 폐쇄적인 채용방식이라는 설명이다. 야나이 회장은 “지금 일본 정부는 단순노동자만 외국인으로 채용하려고 하고 있다”며 “더욱 채용문을 외국인에게 넓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일본의 취업 문을 외국인에게 개방하지 않는 일본 정책의 근간에는 “기술은 아직 일본이 최고”라는 현실을 모르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야나이 회장은 글로벌화라는 것은 방일 관광객이 느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과 함께 일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수한 외국인을 채용하기 위해서는 인사나 보수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라며 “AI나 로보틱스 등에 우수한 인재를 찾기 위해서는 실리콘밸리, 중국에서 찾아야 하는데 그때 필요한 것은 연공서열이 아닌 투명성이 있는 공명정대한 제도”라고 강조했다.
야나이 회장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을 때 “총리의 취미를 외교에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